27일 법무부에 따르면 현재 제조물책임법, 하도급거래공정화법, 신용정보보호법 등 여러 개별법률에 분산돼 있던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일반법인 상법 조항으로 편입되면서 모든 상사 법률관계에 적용된다. 기업이 이윤 획득을 위해 악의적으로 위법행위를 했거나 고의·중과실로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손해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 이 대상에는 언론사도 포함된다.
'악의적'이라는 표현은 법률용어의 하나로 '어떤 사정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것처럼 법률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해로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판매를 했다면 '악의적 위법행위'로 볼 수 있다. 언론의 경우라면 '가짜뉴스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보도하는 행위'를 예로 들 수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강행규정이기 때문에 계약으로 책임을 배제하거나 제한하더라도 효력이 없다. 아울러 손배 책임을 규정한 다른 법률에 우선해 상법을 적용토록 했다.
기업이 징벌적 배상책임을 벗어나려면 상행위가 아님을 입증하거나 '악의'가 아니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이 개정안은 28일 입법예고된다. 국회 상정과 상임위 심사, 상임본회의 의결절차 등이 남아 있다.
같은 날 입법예고하는 집단소송법은 주가조작·허위공시 등 증권 관련 소송에만 적용하던 집단소송제를 모든 산업 분야로 확대하는 게 핵심이다.
두 제도는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100대 국정과제'다. 법무부는 "효율적인 피해구제·예방이 이뤄지고, 기업 책임경영 수준이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점유한 자가 약자에게 손해를 끼치면서까지 이익을 취하는 행위를 막을 수 있다는 견해도 상당하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가 결합했을 때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입법이라는 주장이다. 현재도 기업을 상대로 피해자들을 모집해 대규모 소송을 제기하는 이른바 '기획소송'이 적지 않은데, 앞으로는 아예 전문적으로 기획소송을 하는 곳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징벌적 손해배상액까지 부과된다면 기업경영이 크게 악화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우려다. 과도한 소송 리스크는 물론 기업의 존망을 위협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외에는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기업이 문을 닫은 사례도 적지 않다.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본부장은 "징벌적 손배제를 도입하면서 징벌 대상이 아님을 기업에 입증하라는 것은 가혹하다"고 지적했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실장도 "지금은 경영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는 제도를 성급히 도입할 때가 아니다"고 강조하며 "징벌적 손배제 도입 등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