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에서 일하고 있는 A씨는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을 보면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는 행동에 짜증이 밀려온다. 스마트폰을 켜니 인근 한 콜센터 사무실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다는 안전 안내 문자가 와있다.
A씨는 "코로나19 초창기에는 이른 시일에 끝날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제는 방역 훼방을 놓는 이들로 인해 종식 국면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코로나19 관련 소식을 보면 우울하기보다 화부터 난다"고 한 톤 높여 말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 연구팀(코로나19 기획 연구단)이 지난달 25~28일 진행한 '코로나19와 사회적 건강'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뉴스에서 어떤 감정을 가장 크게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불안'이라고 답한 비율이 47.5%로 가장 높았고, 분노(25.3%)와 공포(15.2%)가 뒤를 이었다. 8월 초 같은 설문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에서는 분노와 공포가 각각 11.5%, 5.4%로, 모두 2배 이상 높아졌다.
코로나 블루(우울)를 넘어 극심한 분노를 표출하는 코로나 앵그리로 번지는 모양새다. 선택한 감정을 느낀 이유나 계기를 묻는 개방형 질문에서 '분노'를 선택한 응답자들은 "집단 이기심", "8·15 집회", "정부의 안일한 대책" 등을 꼽았고, '공포'라고 응답한 이들은 "확진자 증가", "경제적 불안" 등을 언급했다.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크게 높아졌다. '자신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다'는 질문에 '그렇다'는 답변은 생활 방역 전환 이후인 6월 초순에 9% 수준으로 약간 상승했다가 8월 첫째 주 6.2%로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으나 이번 조사에서 27.9%로 높아졌다.
연구팀은 8월 첫째 주와 마지막 주 조사 결과의 위험 인식 지표에 큰 차이가 나는 것에 대해 "수도권 중심의 감염 확산 사태가 2월의 1차 대유행 때보다 사회 구성원들의 위험 인식을 높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유 교수는 "코로나 사태가 7개월을 훌쩍 넘기며 국민 거의 모두가 일상의 자유로움이 제약을 받고 박탈되는 경험을 했다"며 "이런 경험들이 누적되면 정신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학자들의 경고가 있는 만큼 실질적인 심리 방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는 서울대 보건대학원 '코로나19 기획 연구단'이 개발한 문항을 여론조사 전문기관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만 18세 이상 전국의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