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우성(48)이 눈물을 보였다. 지난 7월 23일 진행된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 시사회에서였다. 배우 데뷔 26년 차. 매해 꾸준히 작품을 내놓고 시사회를 통해 취재진과 만나왔던 정우성이 눈물을 보인 건 처음이었다. 장내가 술렁거릴 만한 일이었다.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이하 '강철비2')은 남북미 정상회담 중 북의 쿠데타로 북 핵잠수함에 납치된 세 정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난 2017년 개봉한 '강철비'의 속편으로 전작이 남북이 한반도 문제에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상상력에서 출발해 북핵 문제 해결 방안 등을 이야기하는 리얼리티로 맺는다면, '강철비2'는 분단 당사자인 남과 북이 한반도 문제에 결정권이 없으며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아래 놓인 종속변수라는 설정으로 시작해 통일에 대한 염원으로 마무리한다.
전작에서 북한 정예요원 엄철우를 연기한 정우성은 2편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한경재 역을 맡았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 냉전의 섬이 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고민하는 인물이다. 북한 정예 요원에서 남한 대통령으로 '캐릭터 진영'이 바뀐 건 시간이 흘러도 한반도 문제는 변하지 않았다는 씁쓸한 이유를 담고 있다.
"남·북·미 회담 장면을 찍으면서 '대한민국 지도자는 정말 극한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걸 어떻게 인내하지?' '우리는 대체 이 상항을 어떻게 돌파해야 하는 거지?' 싶더라고요. 극한의 인내를 가져야 하는 직업이고 또 정말 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북한 정예 요원보다 대통령 연기가 더 어려웠던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에서였다. 그는 "뭔가 한다는 것, 표현한다는 건 이뤄지든 아니든 간에 해낸 것에 대한 만족감이 있다"며 "참아야 하는 연기는 지켜볼 때도 지루하다. 당사자는 그런 시선과 입장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고민했겠냐"라고 설명했다.
대통령 역할을 두고 정우성도 고민이 많았다. 캐릭터에 대한 고민은 아니었다. 영화 '강철비'에 관한 편견 때문이었다. 그간 국내 정세, 난민 문제 등을 발언하는 데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던 정우성은 일각에서 보는 자신의 이미지와 직설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가 만나 '편견'을 만들지는 않을지 걱정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고민이었죠. 영화가 판타지적인 느낌도 들지만, 국제 정세 안에서는 현실적인 고민을 하잖아요.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지만 또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어요. 그걸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제3의 시선이 개입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망설였던 거죠. 어느 순간 정치적인 이미지로 저를 바라보는 분들도 계시는데, 과연 내가 '강철비'에 출연해도 되는 걸까? 하고요. 그랬더니 양우석 감독님은 '꼭 정우성씨여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왜 꼭 정우성이어야 했을까? 양 감독은 그의 '눈빛'을 영화 속에 담고 싶었다고 한다. 1편과 2편의 어떤 지점을 관통하는 하나의 은유기도 했다.
"말 없는 정우성의 얼굴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그 표정이나 눈빛이요. 그런 면에서 (1편과 2편의 캐릭터를) 매칭시킨 것 같아요."
1편과 2편을 모두 소화한 그는 "'강철비'는 스토리와 상관없이 똑똑한 작품"이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보통 프랜차이즈 영화는 히어로물이 많은데, 이런 기획은 처음인 것 같아요. 2편 시나리오를 받아보고 새삼스럽게 놀랐어요. '아, 1편도 한반도가 주인공이었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두 작품이나 함께한 만큼 양 감독에 대한 신뢰도 두터웠다. 그는 이번 작품을 함께하며 양 감독의 성장을 가장 가깝게 느꼈다고 설명했다.
"사운드, 믹싱, 영화의 색감 등 종합적으로 봤을 때 감독님의 성장을 실감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2편을 찍을 때 더 초조해하시더라고요. 하하하. 워낙 순한 분이시고 조급함이 없던 분인데. 2편에서는 그런 게 조금 느껴졌어요. 본인이 그리고자 하는 그림과 완성도 구현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겠죠."
양 감독이 정우성에게 강조한 건 '한숨' 연기였다. 양 감독은 최근 아주경제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도 "정우성씨에게 한숨 연기를 잘해달라고 부탁했다. 회담을 진행하며 터져 나오는 한숨과 영화 말미 모든 걸 이뤄냈을 때 터지는 한숨의 차이를 담고 싶었다"며 사운드도 특별히 신경 썼다고 설명했다.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잖아요. 계속 인내해야 하는 입장이라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기도 하고요. 워낙 한숨을 많이 쉬어서 누군가는 '한 대통령 대사 중 기억에 남는 건 한숨'이라고도 하더라고요. 결국 그 캐릭터를 대변하는 상징성 아닐까 생각해요."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만들었지만, 영화는 현재 국제 정세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남·북·미 관계성과 각국 정상의 특징들도 짚어내고 있다. 특히 미국 대통령 역을 맡은 영국 배우 앵거스 맥페이든은 트럼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자유롭게 표현된 바. 정우성은 "캐릭터에 (대통령의 모습을) 투영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캐릭터나 연기에 투영하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어떤 캐릭터든 모습을 카피해서 캐릭터로 만들려고 하지는 않아요."
앞서 정우성은 앵거스 맥페이든이 핵잠수함에 갇혀 방귀를 뀌는 장면을 언급하며 "실제로 방귀를 뀌었다"고 말했다. 당시 상황에 관해 묻자 정우성은 "모든 벽이 허물어졌던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무의식적으로 '상대 배우가 불편하면 어쩌지?' 하고 자신도 모르게 배려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앵거스 맥페이든이 실제로 방귀를 뀌는 순간 모든 벽이 허물어졌어요. 묘한 작용이죠."
관객들은 '강철비' 3편에 관해서도 궁금해했다. 한국형 정치 스릴러와 프랜차이즈물의 탄생으로 다음 속편도 제작되지 않을까 하는 반응이었다. 특히 모든 시리즈를 정우성, 곽도원이 함께한 만큼 두 사람의 출연 여부에 관해서도 궁금한 모양이었다.
"글쎄요? 저와 맞는 캐릭터가 있다면 출연할 가능성도 있겠죠. 하지만 1~2편을 출연했으니 3편도 나와야겠다는 건 의리도 아니에요. 시리즈 때문에 출연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봐요."
영화 '비트'부터 '태양은 없다' '똥개'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새드 무비' '중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감시자들' '신의 한 수' '아수라' '더 킹' '증인'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까지. 정우성은 그야말로 쉬지 않고 달려왔다. 그가 오랜 시간 지치지 않고 달려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작품이죠. 매 작품이 제겐 원동력이에요. 다 비슷한 것 같지만 매번 다른 환경에 놓이니까요. 새로운 에너지가 생기고 덜 지치게 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