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희 칼럼] 재난 속에서 ‘반도’를 넘어 찾아야 할 영상산업의 미래

2020-07-29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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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창희 실장]


재난에서 자유로운 사람도 분야도 없겠지만 물리적 체험을 기반으로 한 산업이 겪는 피해는 클 수밖에 없다. 영화산업은 언제, 어디서나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동영상을 이용할 수 있는 스트리밍 환경의 보편화 속에서도 크게 위축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물론, 영화산업의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 역시 지속되어 왔다. 너무 당연하게도 그것은 동영상 유통의 형식적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 디지털 대전환의 국면에서 동영상 소비 환경은 가장 빠른 변화를 겪고 있는 분야 중 하나이니 집을 나서서 스트리밍 월정액 이상의 비용을 들여 영화 한 편을 보러 간다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결코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다.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반도>는 코로나 이후 개봉된 영화 중에서 가장 좋은 흐름으로 관객 동원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주말 기준으로 280만을 돌파했으니 오랜만에 3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영화산업이 예년 수준으로 관객수를 회복하는 데는 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연상호 감독이 코로나 사태를 예견하고 재난이나 종말 이후의 세계를 그리는 장르인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택해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겠지만 코로나 국면에서 반도를 보는 관객의 심경이 복잡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혹은 코로나가 끝나기는 할 것인가 하는 답답함은 역설적으로 <반도>에서 그리고 있는 암울한 미래에 대한 공감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할 것이다.
영화를 포함한 영상산업은 이제 코로나 이후 혹은 코로나 국면에서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 입장에서도 연인, 가족과 함께 극장에 가는 중요한 문화생활을 포기하기 어렵다. 유료방송 플랫폼을 통해 신작 영화를 기다리는 이용자들도 볼만한 영화가 잘 나오지 않아 답답한 상황이다.

이는 VOD 이용건수에서도 확인된다. 가입자 성장률이 둔화되고 있는 유료방송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던 영역은 VOD였다. 코로나 사태로 국내에서 상황이 가장 좋지 않았던 2월에 유료방송 영화 VOD 이용건수(이용건수 기준 상위 400개)는 4,709,499건이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2달 후인 4월 이용건수는 2,784,855건으로 두 달 사이에 30% 이상 영화 VOD 이용건수가 줄어든 것이다. 신작 영화 개봉이 이루어지지 않아 유료방송 영화 VOD 업데이트가 늦어지면서 전체적인 소비량이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스트리밍 이용량이 늘어나면서 동영상 시장 규모가 커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영화산업의 침체는 전체 영상시장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대한민국에서 영상산업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지금은 K-POP이 미디어 분야의 한류 혹은 글로벌화를 상징하는 장르가 되었지만 ‘한류’의 출발점은 드라마를 비롯한 영상산업이었다. 영화산업은 미국 영화 위주의 시장에서 자생적인 경쟁력을 갖춘 내수 기반 산업 환경을 구축해 내는 데 성공했고,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받는 작품이 나오기도 했다.

플랫폼 기업이 디지털 대전환, 제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주체로 주목받고 있지만 플랫폼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경쟁력 있는 동영상 콘텐츠는 필수요소가 되었다. 기술 기업으로 출발했던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는 회사를 넘어 아카데미 수상작을 제작하는 기업으로 거듭났고, 스마트 생태계의 구축자 애플도 작년에 런칭한 애플TV+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오리지널 콘텐츠에 6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겠지만 코로나로 인해 영상산업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현재의 상황은 기회라기보다는 도전에 가까워 보인다. 재원의 큰 축인 광고시장은 경기침체로 인해 어려워지고 있고, 물리적인 제작여건도 좋지 않은 상황이다. 영화 소비가 스트리밍 위주로 이뤄지게 되면 단위당 콘텐츠의 가치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음악산업에서 잘 드러나는 것처럼 콘텐츠의 디지털화는 콘텐츠의 가치 하락을 동반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플랫폼 영역에서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논의가 지속적으로 대두하고 있다. 미디어 분야 뿐 아니라 전체적인 산업 생태계가 플랫폼 위주로 재편되고 있는 상황에서 플랫폼 경쟁력 향상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반론을 제기하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플랫폼을 만드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플랫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고민과 동시에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강점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동남아 OTT 시장에서 대한민국 콘텐츠가 가지고 있는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포맷 판매와 리메이크와 같이 리스크가 적은 수출 방식을 더욱 늘릴 수 있는 고민도 필요하다. 새롭고 합리적인 방식의 글로벌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위기를 돌파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미디어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졌지만 코로나로 인해 선택지가 줄어든 이용자도 동영상 소비를 포함한 미디어 소비에 대한 전향적인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 이광석은 『디지털의 배신』(서울: 인물과 사상사)에서 ‘수작(手作)’이라는 개념을 강조한다. 수작은 디지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손’을 통해 뇌와 연결된 창작 및 제작 수행 행위를 통해 이용자의 주체성을 높이면서 디지털 기술과 관련된 맥락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것 까지를 포괄하는 개념이다(237쪽). 이용자가 직접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자신의 동영상 이용관습을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일 역시 수작의 일환이 될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높아진 디지털 환경에 대한 의존도는 산업적으로 뿐 아니라 이용자의 문화적 실천행위로서 미디어 소비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할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코로나라는 재난은 영상산업의 미래를 위해 ‘반도’를 넘어서야 할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동시에 그동안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왔던 디지털을 통한 동영상 소비가 우리 일상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 왔는지 이면에 놓여 있는 한계에 대해서도 묻게 한다. 오프라인 영역이 온전치 못하다면 디지털 영역도 온전할 수 없다는 그동안 상상하기 어려웠던 문제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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