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지난 14일 청와대의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밝힌 포부다. 당시 정 수석부회장은 삼성, LG, SK 등 세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 3사'와 협력해 세계 시장 경쟁에서 앞서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21일, 정 수석부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났다.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두 인물이 다시 한번 회동하면서 그린뉴딜 정책을 발판 삼아 미래차 시장 선점을 위한 양사 간 협력이 본격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용·정의선, 현대차 남양연구소서 회동
특히 이번 만남은 최근 청와대가 그린 뉴딜을 적극 추진 중인 가운데 이뤄져 더 주목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취임 3주년 연설에서 한국판 뉴딜을 이끌 신성장 산업 중 하나로 미래차를 꼽은 바 있다.
현대차와 삼성은 한국을 넘어 세계 굴지의 자동차와 전기 배터리 기업이지만 아직까지 본격적인 협력관계를 맺지는 않았다. 그동안 현대차그룹은 현대차에는 주로 LG화학 배터리를, 기아차에는 주로 SK이노베이션 배터리를 사용했다.
지난 5월 정 수석부회장과 이 부회장이 1차 회동을 하며 양사 간 협력 가능성의 포문을 열었다면, 이날 두번째 만남은 미래차와 전장부문에서 양측의 협력관계를 구체화하는 자리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재계 1·2위 기업이 친환경 모빌리티 사업을 확대해 나가면서 청와대가 공들이고 있는 그린뉴딜 정책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전기차 시장 점유율 10%' 달성을 목표로 세우고, 2025년까지 현대·기아·제네시스 브랜드로 23차종 이상의 전기차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특히 '제로' 탄소시대를 위해 전기차와 수소전기차 부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친환경 기술기업이 된다는 목표도 세웠다.
업계에서는 시스템 반도체, 차량용 디스플레이, 전기 배터리, 적층세라믹캐패시터(MLCC) 등 전장사업 분야에서 탁월한 기술력을 보유한 삼성과의 협력이 본격화한다면 현대차그룹의 이 같은 목표 달성도 한층 더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전기차 시장은 미국의 '테슬라'가 주도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5월 글로벌 친환경차(EV+PHEV) 시장에서 테슬라는 12만5800대를 판매해 17.7%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다. 작년 같은 기간 대비 5.2% 포인트나 늘어났다.
반면 현대차와 기아차는 지난 1~5월 작년 대비 시장 점유율이 소폭 상승하며 각각 3.7%(6위)와 3.5%(7위)로 합산 점유율 7.2%를 기록했으나, 선두 기업 테슬라와의 차이는 극명하다.
테슬라는 배터리 자체 생산을 계획 중이며, 상당 수준에 오른 '오토파일럿' 기능의 자율주행 경쟁력을 통해 향후 전기차시장을 석권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배터리 부문에서도 테슬라는 중국 CATL과 함께 약 160만㎞를 주행할 수 있는 반영구 배터리를 개발 중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차와 삼성의 협력이 본격화할 경우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한국의 브랜드파워가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전기차를 넘어 수소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등으로 양사 간 협업이 이어질 경우 독주하고 있는 테슬라를 견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래차는 전장부품부터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산업적인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다뤄야 한다"며 "앞으로도 사업 협력을 위한 총수 간 만남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