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부동산 안정화에 국정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지를 거듭 내비친 데는 '노무현 트라우마'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강력한 규제 드라이브에도 부동산 가격 폭등세가 지속되면서 국정동력 상실의 주원인이 됐다. 부동산을 잡지 못할 경우, 정권 재창출 실패는 물론 남은 임기 내내 발목이 잡힐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오는 이유다.
◇ 부동산 못 잡고, 지지율 떨어지고…'노무현 데자뷔' 우려
시장에서는 부동산 규제 이후 아파트 값 상승, 이에 따른 대통령 지지율 하락 추세가 노무현 정부 당시와 비슷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부동산 시장을 잡기 위한 초강수로 종합부동산세를 신설했지만, 이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종부세 시행 당시 2005년 1월의 전월 대비 강남3구 아파트 가격 변동률은 △강남 -0.58% △서초 -0.09% △송파 -0.08%였지만 1년 뒤에는 △강남 2.21% △서초 2.42% △송파 1.53%로 반등했다. 1년짜리 단기 대응책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후 노무현 정부의 지지율은 급격히 하락해 임기 후반에는 최저 12%까지 떨어졌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문 대통령 지지율도 급락하고 있다.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1일까지 만 18세 이상 유권자 1507명을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 지지율은 전주보다 3.9%포인트 하락한 49.4%를 기록했다.
여당 지도부가 부동산 투기에 대한 후속대책을 연일 정부에 요청하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앞으로다. '내집 마련'에 절박한 30·40대 지지층이 6·17부동산 대책에 반감을 갖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집값이 안정화될 것이란 기대감은 낮은 분위기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따르면 문재인 정권 38개월의 서울 아파트값 중위가격은 52%가 넘게 오르며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합친 26%보다 두 배에 달하는 상승률을 보였다. 이 추세대로면 역대 부동산이 가장 폭등했던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상승률인 56.6%를 넘어설 가능성도 크다.
◇ 서울 vs 서울 외, 고가 vs 저가…양극화 갈수록 심화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문제는 단순히 집값이 오른 데 그치지 않고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데 있다.
전 정권과 비교해 전국의 아파트값 상승폭은 줄어든 반면, 서울의 아파트값 상승률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보다 5배 뛰었다. 상위 아파트와 하위 아파트간 가격차도 최근 10년 만에 가장 크게 벌어졌다.
KB국민은행의 월간 KB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부터 지난달까지 서울의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25.58% 폭등했다. 같은 기간 전국은 6.45% 상승에 그쳤다.
3년2개월 동안 전국의 아파트 가격이 6% 상승했는데 서울에서만 25% 뛰었다는 의미다.
이는 지난 정권과 비교해도 정반대 되는 행보다.
직전 정권인 박근혜 정부(2013년 3월~2017년 3월)에서는 전국의 아파트가 9.88%, 서울이 10.34%로 비슷한 수준으로 올랐다. 이병박 정권(2008년 3월~2013년 2월)에서는 전국이 15% 상승하는 동안 서울은 오히려 4.5%가량 떨어졌다.
지역간 불균형뿐 아니라 계층간 불평등도 뚜렷해지는 양상이다. KB국민은행의 6월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의 5분위 배율은 2010년 7월 이래 가장 높은 7.5배를 기록했다.
주택가격 5분위 배율은 상위 20% 평균 아파트값을 하위 20% 평균 아파트값으로 나눈 수치다. 배율이 높을수록 가격차가 크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국 상위 20%인 5분위 아파트 평균 가격은 8억1635만원으로 처음으로 8억원을 돌파했다. 전월(7억9886만원)과 비교해 20% 넘게 상승했다. 반면 1분위(하위 20%)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억871만원으로 전월 대비 0.1% 오르는 데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