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노인킬러 아니다

2020-06-25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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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의 100투더퓨처] (28)

[박상철 교수]


<100 to the future> 필자 박상철 교수 =이제 120세 시대로 나아가는 지금. 노화(老化)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박상철 교수의 ‘100 to the future(백, 투더 퓨처)’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박 교수는 서울대 의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30년간 서울대 의대 생화학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노화세포사멸연구센터와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을 역임했고, 현재 전남대 연구석좌교수로 활동 중입니다. 노화 분야 국제학술지 ‘노화의 원리’에서 동양인 최초 편집인을 지냈고 국제 백세인연구단 의장, 국제노화학회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노화 연구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노화이론을 세운 그의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지에 소개됐습니다.

<100 to the future>는 100세까지 보편적으로 사는 미래에 대비하자는 의미로, 영화 '백 투더 퓨처'의 미래 귀환 뉘앙스를 차용한 시리즈 제목입니다. 이제 우리는 100세 시대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앞당겨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필자는 그 길어진 삶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건강하고 풍요로운 내일에 대해 실감나게 짚어나갈 계획입니다. <편집자주>


신화시대부터 늙음과 죽음은 중요한 주제였다. 그리스 신화는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자신이 사랑한 인간 티토노스가 죽지않고 오래 살도록 제우스에게 부탁하여 죽지 않는 생명을 가지게 하였다. 그 덕분에 티토노스는 죽지 않았으나 점점 늙고 말라 비틀어져 결국 매미가 되어 버렸다고 하였다. 또다른 신화에서 태양신인 아폴로는 자신이 사랑한 여인 시빌레가 간청하자 그녀를 죽지않고 오래 살도록 해주었지만 천년 이상을 살면서 형체는 사라지고 목소리만 남은 존재가 되어 구천을 헤매는 존재가 되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신화의 이야기들은 죽지 않고 오래 산다는 것과 늙지 않는다는 것이 결코 연속되는 일련의 과정이 아니라 서로 다른 별도의 현상임을 시사해주고 있다. 죽음과 늙음은 결코 하나로 연결되어 부득불 얽혀져 있는 과정이 아닌 서로 다른 독립된 과정이라는 이분법적 개념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신화시대부터 인류는 늙음과 죽음은 분명 다르다고 생각해 왔으면서도 막상 “늙으면 죽는다” 라는 명제를 너무도 당연한 통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원조 노화학자인 스트렐러가 노화란 보편적이고 비가역적이며 불가피한 퇴행적 변화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라고 정의한 내용이 교과서에 아직 그대로 수록되어 있다. 이런 노화의 의미가 최근 코로나 사태에서 더욱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백세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뉴스에 반가움과 두려움이 섞인 마음으로 노후에 대한 대비를 걱정하고 있는 상황에 초래된 코로나 사태는 늙음과 죽음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고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을 하게 한다.

우선 COVID-19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의 치사율이 세대간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 전염병에 의한 치사율이 20대는 0.2% 이하이나 80대는 20%를 훨씬 초과하여 젊은 세대와 늙은 세대간에 무려 100배 이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인류역사에서 어떤 다른 전염병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특이한 현상이다. 이 질환에서는 치사율을 높이는 결정요인이 바로 늙음으로 비치고 있어 늙음과 죽음의 상관성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늙으면 잘 죽을 수밖에 없는가? 늙으면 죽어야만 하는가? 그동안 늙는다는 것은 숙명적으로 죽음에 이르는 전 단계로 인식되었고, 그 결과 노화된 개체는 외부 독성 자극에 대해서 젊은 개체보다 손상을 더 많이 받아 당연하게 쉽게 죽게 될 것이라고 여겨져 왔다. 그런데 이러한 통념을 확인하기 위하여 “노화 세포 또는 개체는 젊은 세포 또는 개체보다 외부자극에 의하여 더 잘 죽는다”라는 가설을 세워 세포 및 동물실험을 통해 검정해본 결과는 의외였다. 인체유래 섬유아세포를 계대 배양하면 노화가 초래된다. 이들 세포에 자외선이나 강한 화학물질을 투여하여 젊은 세포와 늙은 세포의 생존력을 비교해본 결과 젊은 세포들은 쉽게 세포사멸이 유도되는 데 반하여, 노화세포는 강한 저항능을 나타내고 있음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세포 수준뿐 아니라 개체수준에서 비교하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젊은 동물과 늙은 동물을 대상으로 위해물질을 복강에 투여한 다음 여러 조직에서 비교해 본 결과도 젊은 동물에서는 세포사멸이 왕성하게 유도된 반면 늙은 동물에서는 세포사멸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은 노화된 세포나 개체가 외부 자극에 대하여 젊은 세포나 개체들보다 오히려 사멸유도에 대한 저항능이 강함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노화라는 개념을 새롭게 해석해야만 했다. 노화는 외부의 환경적 스트레스에 대응하여 생존하기 위한 자기 보호적 변화이지, 죽기 위해 운명지어진 과정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노화의 생물학적 의의가 숙명적인 죽음의 전 단계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환경에 대한 적응적 변화 단계임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발견을 통하여 “늙으면 죽는다 또는 죽어야 한다”는 명제를 생명체는 거부하고 있으며 오히려 살아 남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과정이 노화현상임을 밝혀주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외부로부터의 화학적 물리적 위해요인에 대해서는 저항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COVID-19와 같은 생물학적 위해요인인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대해서 젊은이들보다 노인들이 훨씬 취약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생명체의 외부 위해요인에 대한 저항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물리화학적 위해요인에 대해서는 세포막이나 핵막과 같은 구조의 노화에 따른 변화를 통하여 직접적인 저항성을 가질 수 있으나, 생물학적 위해요인인 병원체에 대해서는 면역계라는 별도의 시스템을 통하여 대응하여야만 하기 때문에 다르다. 그런데 이러한 면역계 기능이 노화에 따라 저하되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이번 COVID-19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치사율 차이가 늙은 세대가 젊은 세대보다 100배가 넘는다는 것은 단순한 면역능 차이만으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더욱 노인의 면역기능을 회복한다는 것은 학술적으로도 아직 극히 어려운 숙제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COVID-19에 의한 노인 치사율을 낮출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COVID-19 감염질환의 또다른 특이 사항은 사망자의 90% 이상이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저질환으로는 고혈압을 비롯한 심혈관질환, 당뇨, 폐질환, 고도비만 등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들 기저질환이 전형적인 대사증후군으로 생활습관 질환으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나이가 들면서 생활습관이 나태해지고 풍요로워지면서 발생하는 비만, 고혈압, 당뇨, 만성폐질환과 같은 질환들은 적절한 운동과 건강한 식생활 그리고 철저한 금연을 통하여 얼마든지 예방하고 개선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COVID-19바이러스질환은 초고령사회를 맞는 시점에서 나이가 든 사람들에게 생활습관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라는 엄중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일부 뉴스에서 백세인 중에서도 코로나 질환에서 회복되었다는 사례들이 차례로 보고되는 점도 흥미롭다. 실제로 우리나라나 일본의 조사결과를 보면 백세인들은 팔구십대의 일반 노인들보다 당뇨병이나 고혈압 이환율이 현저하게 낮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기저질환이 없으면 치사율을 낮출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해주고 있다. 이번과 같은 COVID-19 사태에서 노인들의 치사율이 높은 점을 늙음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부득이한 숙명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되고 인간의 적극적 생활습관 개선을 통한 노력에 의하여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해주고 있다. 늙음이 죽음의 조건이 될 수 없고 늙으면 이어서 죽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한 개개인의 노력을 통하여 늙음과 죽음의 연결고리도 끊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비록 아직 백신이 개발되어 있지 못하고 치료약이 분명하지 못하더라도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이번 COVID-19와 같은 바이러스에서 생존하는 방법은 삶의 패턴을 개선하는 것이다. 이 단순한 원리가 바로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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