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의 폭로 : “트럼프의 중국에 대한 오만과 편견은 가짜”
“나는 그 질병의 이름을 ‘쿵플루’라고 부를 수 있다(I can name the disease Kung Flu).”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1일 미 오클라호마 털사(Tulsa)에서 열린 지지 대회에서 연설을 하면서 한 말이다. 오는 11월 4일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미국 전역에서 230만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12만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오는 참사가 빚어지는 가운데 감행한 대면(對面) 지지대회였다. 트럼프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연설을 했고, 털사에 모인 6000여 명의 트럼프 지지자들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트럼프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차이나 바이러스’라고 부르던 지난 3월의 중국 때리기 자세가 바뀌지 않았다는 말을 한 것이다. ‘쿵플루’는 중국을 상징하는 무술 ‘쿵푸(Kungfu)’와 ‘인플루엔자 엔저’를 결합한 신조어다.
트럼프의 털사 캠페인이 열리기 하루 전인 20일 뉴욕타임스의 대표적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는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트럼프라는 이름의 중국 앞잡이(China’s Man in Washington, Named Trump)’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트럼프를 이중인격자라고 공격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재선을 위해 안티 차이나(Anti-China) 전략을 세우고, ‘나보다 더 중국에 대해 터프한 사람은 없다’고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를 앞서고 있는) 민주당 후보 조 바이든이 중국에 대해 약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베이징 바이든’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크리스토프의 칼럼은 “그러나 말도 안 되는 것이, 존 볼턴이 새로 쓴 책 <그 일이 일어난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을 보면 트럼프는 중국의 꼭두각시(stooge)이며, 사실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절(kowtou)을 하면서 딸랑거리는 아첨꾼(sycophantic flatterer)이다”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크리스토프는 1989년 6월 3일 밤 베이징(北京) 천안문 광장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이 민주화와 반부패를 요구하던 100만 대학생들과 시민들을 유혈 해산시키는 현장에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 뉴욕타임스에 보도함으로써 퓰리처상을 받은 베이징 특파원 출신의 칼럼니스트다. 크리스토프는 트럼프의 중국 정책을 “돈밖에 모르는, 무능으로 포장된, 부풀어 오르는 위선(hypocrisy)”이라고 극단적인 용어를 다 동원해서 공격하면서 “볼턴의 책을 미리 한 카피 구해서 읽어보면서 나는 숨을 헐떡거리지(gasping) 않을 수 없었다”고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뉴욕타임스의 베이징 특파원이었던 크리스토프가 1989년 4월 중순부터 6월 초까지 이어진 천안문 광장 시위를 취재하던 당시 조선일보 홍콩특파원으로 천안문 광장 현장을 취재했던 나는 크리스토프가 숨을 헐떡거리면서 읽어봤다는 존 볼턴의 책 내용이 궁금해졌고, 서울에서도 <그 일이 일어났던 그 방>을 한 카피 구할 수 있었다. 아마존에 23일 20시에 다운로드 할 수 있는 킨들판을 주문해놓은 상태였는데 다행히도 하루 전인 22일 오후에 서울에서 한 카피를 구할 수 있었다.
제1장이 ‘백악관 서쪽 모퉁이의 사무실까지의 기나긴 행진(The Long March to a West Wing Corner Office)’로 시작하는 존 볼턴의 <그 일이 일어났던 방>에서 중국 문제는 제10장에 다뤄졌고 제목은 ‘중국에서 들리는 천둥소리(Thunder out of China)’였다. 크리스토프의 숨을 헐떡이게 만든 부분은 지난해 일본 오사카 G20 정상회의를 앞둔 6월 18일에 이루어진 트럼프와 시진핑의 통화내용인 듯했다. 볼턴의 기록에 따르면 트럼프는 2017년 11월에 있었던 자신과 멜라니아의 베이징 방문에 관한 이야기로 통화를 시작했다. “우리는 이미 친구가 됐지. 내 가족과 함께한 베이징 여행은 내 인생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일이었어.” 시진핑은 당시 중국을 처음 방문한 트럼프를 중화인민공화국 역사상 처음으로 자금성(紫禁城·현재의 고궁 故宮)에 만찬장을 만들어 접대해서 최고의 호사를 누리게 해주었다. 전화통화에서 한동안 트럼프는 시진핑과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 회담 이야기를 하더니 중국이 미국의 농산물을 우선 구매하도록 협상하기 위한 미국 협상팀이 중국을 방문하도록 하자는 제의를 트럼프가 시진핑에게 했고, 트럼프의 제의에 시진핑이 동의하자 트럼프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당신은 최근 300년 사이에 가장 위대한 중국 지도자야…, 아니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야….” 중국이 미국 농산물을 우선 구매하게 되면, 트럼프가 재선에 도전하는 2020년 11월 선거에서 트럼프 자신이 유리해질 것인데 거기에 시진핑이 동의해주자 흥분한 나머지 시진핑에게 최고의 찬사를 늘어놓게 됐다는 것이 볼턴의 기록이 의미하는 뜻이었고, 크리스토프가 볼턴의 회고록 ‘그 방’을 읽으면서 숨을 헐떡거리며 읽고 난 뒤 트럼프를 비난하게 만든 대목이었다.
크리스토프가 트럼프에 대해 막말에 가까운 표현을 동원해 트럼프를 공격한 칼럼을 쓰게 된 이유를 제공한 부분은 2018년 11월 30일부터 12월 1일까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개최된 G20 회의 만찬에서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한 말이라고 볼턴이 기록한 부분이었다. 시진핑은 트럼프에게 “나는 트럼프 대통령과 앞으로 6년 더 함께 일하고 싶다”는 말을 건넸다. 시진핑은 2012년 첫 임기 5년의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된 뒤, 2013년 임기 5년의 국가주석으로 선출됐고, 2018년 3월에 다시 임기 5년의 국가주석으로 선출된 참이었다. 시진핑의 말에 반색한 트럼프는 “중국 헌법에 국가주석의 임기를 두 번만 하도록 되어있었던 것은 시진핑 주석을 위해 고쳐졌어야 마땅하다”고 하더니 “내가 듣기에 시 주석은 종신 주석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하더라”는 말을 더 붙였다. 트럼프의 말에 시진핑은 “미국에는 선거가 너무 많은데 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헌법을 고쳐서라도 대통령 자리에 머물러 있게 돼 내 일의 파트너가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볼턴은 기록했다.
크리스토프가 트럼프를 “겉으로는 안티 차이나 전략을 세우고 대통령 재선을 노리면서도 시진핑을 만나면 ‘절(kow tow)’을 하는” 이중인격자라고 몰아붙인 칼럼에서 말한 ‘커우터우(叩頭)’는 우리도 조선왕조 역사에서 인조가 한양을 침공한 후금의 황타이지(皇太極)에게 항복의 절을 하는 모습이 영화 ‘남한산성’을 통해 잘 알려졌다. 당시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내려와 송파나루터에서 황타이지에게 한 커우터우는 이른바 ‘삼고구궤(三叩九跪)’라는 것으로, 한 번 무릎을 꿇을 때 머리를 세 번 땅바닥에 부딪쳐서 모두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차례 머리를 바닥에 조아리는 굴종의 표현이다. 1840년 영국과 청나라 사이에 아편전쟁이 일어나 청 제국이 서양의 식민지가 된 이후 베이징에 주재하는 서양 외교관들은 청 황제에게 커우토우하기를 거부했으며, 그 결과 청 황제 동치제(同治帝)는 1876년 삼고구궤를 폐지했다. 중국을 잘 아는 크리스토프는 그렇게 없어진 커우토우를 트럼프가 시진핑을 향해 되살린 셈이라고 비난을 퍼부은 것이다.
크리스토프의 트럼프 비난은 트럼프의 중국어 이름이 ‘Chuan Jianguo(川建國 촨젠궈)’라는 사실까지 폭로했다. 중국 네티즌들은 어떻게 트럼프가 중국을 겉으로는 비난하면서도 중국을 이용해서 재선에 성공하려는 생각을 갖고있다는 사실을 읽었는지 트럼프를 ‘촨젠궈’라고 부르면서 “촨젠거가 결정하는 정책을 보면 트럼프는 멍청하고 바보같아서 정작 미국에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되고, 중국에게는 거꾸로 유익한 결정을 하는 인물로 어떻게 보면 우리 중국이 미국에 파견한 간첩 활동을 하는 우리의 동지같다”고 표현하면서 붙인 이름이 촨젠궈다. 크리스토프의 트럼프 비난 칼럼은 젠궈라는 이름은 중국 애국자들이 많이 쓰는 이름이며 트럼프의 중국어 이름은 영어로는 ‘Build-the-country Trump’라고 번역할 수 있다고 비꼬았다.
볼턴의 회고록이 일으키는 파문에 대해 자오리젠(趙立堅)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8일 “중국은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 원칙을 갖고 있으며,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간섭할 생각이 없다”는 간단한 반응을 보인 이후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자오리젠의 간단한 반응은 중국 전문가는 아닌 볼턴이 시진핑 주석을 공격하지 않고, 트럼프를 공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청와대에서 볼턴의 상대역이었던 청와대 안보실장이 구체적 내용은 거론하지 않은 가운데 “사실 왜곡”이라고 반박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볼턴의 회고록이 미 백악관이나 행정부의 공식 의견이 아니라 볼턴의 개인적 판단과 기록이라는 점에서 과잉반응이 아닐까 싶다.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