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최다선(6선)인 박 의장은 막힌 정국이 해결사 역할을 해왔다. 한미소고기 협상 여야 막후 타결, 1000억달러 정부지급보증동의안 처리 등을 초당적으로 처리하며 ‘조정의 달인’이란 평가를 받았다.
서청원 전 미래통합당 의원은 20대 국회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국정감사(2017년)에서 “새 정부 들어와서 어려울 때 대화하고 문제를 풀려고 한 사람은 박병석 의원밖에 본 적이 없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박 의장은 ‘중국통’으로도 불린다. 국회 한중의회외교포럼 회장을 지내는 등 한중 간 경제·문화 교류 발전에 힘썼다. 문 정부 출범 3일 만에 대한민국 고위 외교사절단 대표단장 자격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단독 면담했다. 박 의장은 사드(THAD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 해소에 물꼬를 텄다는 평가다.
또 같은 해 한반도평화번영포럼을 이끌고 일본으로 건너가 자민당 의원들과 한반도 정세와 북일 관계를 논의하는 등 폭넓은 외교 행보를 펼쳤다.
특히 박 의장은 부지런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초선 때는 국회와 지역구를 오가며 4년 동안 기차를 700번 이상 탔다고 한다. 지역구민들이 박 의장에 지어준 별명은 ‘한결같은 사람’이다.
박 의장이 정치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 의장은 매일 아침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그는 “열심히만 하면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아질 것이란 희망이 있는 세상,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세상, 부모에 따라 아이들의 꿈의 크기가 달라지지 않는 세상, 남북이 화해와 평화의 강을 함께 노 젓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박 의장은 기자 출신이다. 1975년 만 23살에 중앙일보 기자가 됐다. 당시 중앙일보 면접시험은 삼성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이 주관했다고 한다. 박 의장은 이 전 회장에게 수교국이 아니었던 “중공(중국) 베이징 특파원으로 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실제 홍콩특파원이 된 박 의장은 1989년 천안문 사태를 특종 보도해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1996년에는 ‘재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이란 기사로 다시 한번 한국기자상을 탔다.
박 의장은 ‘야당 의원 최초 대통령 특사’란 타이틀도 갖고 있다. 19대 국회 국회부의장 선출 당시 9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는 87년 민주화 이후 최고 득표율이다.
박병석 국회의장 프로필
△대전고 △성균관대 법률학과 △16·17·18·19·20·21대 국회의원 △중앙일보 홍콩특파원·부국장 겸 경제부장 △서울시 정무부시장 △새천년민주당 대변인 △국회 정무위원장 △민주당 정책위의장 △19대 국회부의장 △국회 한중의회외교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