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플로이드 사건'로 본 미국의 두얼굴
백인 경찰의 체포 과정에서 목이 짓눌려 사망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미국 전역을 휩쓰는 모습을 보고 지난해 보았던 영화 '그린북(Green Book)'이 떠올랐다. 1960년대 흑인에 대한 차별이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했던 미국 남부가 배경이다. 유명 흑인 피아니스트(돈 셜리)가 이곳으로 8주간의 콘서트 투어를 떠나면서 채용한 백인 운전사(토니 발레롱가)와의 특별한 우정을 다룬 영화다. 발레롱가는 뉴욕의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데 내부 공사중이라 경비원일을 잠시 쉬고 있었다. 허풍과 주먹으로 살아가던 그는 평소 흑인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다. 자신과 반대로 젠틀하고 교양미가 넘치는데다 성공한 음악가인 셜리와 남부에서 시간을 함께하면서 각종 인종차별 사례를 경험한다. 셜리는 단지 흑인이란 이유로 공연장 화장실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고 백인들이 이용하는 레스토랑과 호텔의 출입도 거부당한다. 흑인에겐 통금도 있어 야간엔 거리에서 운전도 못한다. 셜리의 암울한 처지와 형편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함께 공감하면서, 뜻밖에도 두 사람의 우정도 쌓여간다는 이야기이다. 마지막 일정의 콘서트에서 셜리는 백인들과 함께 자신도 홀 안에서 식사를 하게 해달라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공연을 취소하고 밖으로 뛰쳐 나온다. 셜리가 이렇게 단호하게 맞선 것은 발레롱가의 응원이 큰 힘이 되었다. 셜리는 흑인들 전용식당으로 간다. 그곳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쇼팽도 연주하며 즐거움을 만끽한다. 당시 흑인들이 남부를 가게 될 때 사용가능한 호텔이나 레스토랑, 주유소 등을 알려주는 안내책자는 표지가 녹색이라서 '그린북'이라 불렸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이 영화는 지난해 제91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 각본상, 남우조연상까지 총 3개 부문을 거머쥐는 영광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 작품에 대한 왜곡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 수백년 깊이 뿌리내린 인종차별 문제가 단순히 개인간의 특별한 유대감 또는 사고의 유연성만으로 극복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이 영화가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영화 개봉 뒤 셜리의 유족들로부터 불만의 소리가 쏟아졌다. ‘백인의 눈으로 본 흑인’, 즉 시혜자 백인과 수혜자 흑인의 이야기란 것이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는 두 사람의 우정이 50년이나 이어졌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두 사람은 친하지도 않았으며, 발레롱가는 차문도 안 열어주고 가방도 들어주지 않는 등 불성실한 태도로 해고까지 됐다는 것이 유족들의 주장이다. 이런 논란으로 아카데미상 수상 작품이 주는 감동은 크게 희석된 기분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흑백갈등으로 인한 미국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남북전쟁 이후 흑인들과 함께 사는 걸 원하지 않았던 백인들은 1876년 짐 크로법(Jim Crow Law)이라 불리는 인종차별법을 제정했고, 이 법을 근거로 남부 주들은 인종차별 정책을 실시했다. 짐 크로는 1830년대 미국 코미디 뮤지컬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흑인을 경멸하는 의미로 사용돼왔다. 이 법에 따라 흑인들은 식당 화장실 극장 버스 등을 이용할 때 백인과 분리돼 차별대우를 받았다. 1960년대만 해도 ‘no blacks and dogs(흑인과 개는 사절)’와 같은 문구가 공공장소에 흔했던 미국이다. 영화 '그린북'의 셜리처럼 흑인들은 현실을 인정하거나 인내하며 지내다가도 박해가 지나치다 싶으면 가만히 있지 않았다. 1955년 미국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서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가 백인 승객에게 좌석을 양보하라는 버스 운전사의 요구를 거부한 이유로 체포되는 사건을 계기로 흑인들의 민권운동이 거세졌다. 이때 몽고메리 교회 목사로 부임한 마틴 루서 킹은 버스 안타기 운동을 일년 넘게 주도하면서 전국적인 지도자로 급부상했다. 흑인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백인들은 KKK를 부활시켜 흑인들을 테러하는 등 사회의 혼란은 걷잡을 수 없는 혼돈으로 빠진다. 1963년의 '직업과 자유를 위한 워싱턴 행진(March on Washington for Jobs and Freedom)'에서는 25만명 군중의 눈과 귀가 킹 목사를 향했다. 연단에 선 킹 목사는 미국 인권사에 남을 "나에게는 꿈이 있읍니다(I have a dream)'라는 구절의 명연설을 한다. 그는 "옛 노예의 후손들과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 그리고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나라에 살게되는 꿈"을 제시한다. 특히 "비탄과 증오로 가득찬 술잔을 들이켜는 것으로 자유를 향한 갈증을 달래려 하지 맙시다," "우리의 창의적인 항거가 폭력으로 변질되어서는 안된다"며 비폭력 저항을 설파했다. 마침내 인종 민족 국가 여성의 차별을 금지한 미국 연방 민권법(Civil Rights Act of 1964)이 제정되면서 흑인들은 짐 크로법의 굴레에서 벗어난다. 1965년 흑인들은 모든 주에서 투표권도 얻게 된다. 1968년 킹 목사는 부당한 대우를 받던 흑인 환경미화원들의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 테네시주 멤피스를 방문해 연설을 마친 후 다음날 자신이 머물던 모텔의 발코니에 서있다가 백인우월주의자의 총탄에 맞아 숨졌다. 당시 나이 39세. 킹 목사 암살에 대한 슬픔과 분노로 워싱턴 D.C.와 다른 도시들에서 폭동이 일어났고, 흑인들은 자신들의 밀집지역인 게토에서 나와 방화와 약탈을 일삼았다. 질서를 회복하는 데는 군대까지 동원됐다.
이후 버락 오바마라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되는 등 지금의 미국은 여러 면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번 백인 경찰의 '목조르기' 폭력으로 숨진 비무장 흑인 남성 사망과 그에 따른 유혈 폭력사태에서 보듯 인종차별 문제는 미국 사회 분열의 가장 큰 불안 요소임에 틀림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때 시위대의 약탈과 방화를 제압하기 위해 연방군 투입까지 지시했다가 사태악화를 우려한 군수뇌부와 참모의 만류에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대규모 시위사태의 이면에는 무엇보다도 트럼프 행정부 들어 고조되는 흑인들의 분노와 상대적 박탈감이 자리잡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트럼프의 인종차별적인 발언에다가 흑백 간의 소득불평등도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심화되고 있다. 민간조사기관인 APM리서치에 따르면 낮은 소득으로 의료비용을 감당 못하는 흑인들의 경우 백인보다 코로나19 사망률이 2.4배나 높았다. 코로나19로 인한 고용악화도 흑인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민권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1960년대에 비해 백인의 부는 많이 늘어난 반면 흑인의 부는 정체되면서 미국 내 흑인과 백인의 가계순자산은 10배 이상 차이가 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부 시위대의 약탈과 방화를 명분으로 인종차별 문제는 희석시키고, 이 문제를 이념대결로 전환시키고 있다. 미국에서 흑인의 비율은 전체인구의 12.7% 정도이다 (백인은 72.3%, 2017년 인구조사결과). 미국 사회 각계 각층에서 부와 명성을 쌓은 흑인들도 많이 있지만 대부분 가난을 대물림하며 빈부격차와 불평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2016년 대선 승리는 중서부 백인 노동자 계급의 지지가 결정적이었다. 이번 11월 대선에서 어차피 흑인들의 표는 대부분 민주당으로 갈 터인데, 트럼프는 자신의 백인보수층 표를 단속하고 싶을 것이다. 그리하여 트럼프와 행정부 관계자들은 이번 사망사건을 계기로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분열과 상처를 통합으로 치유하는 대신 시위대를 '침묵하는 다수'의 적으로 보고 그들의 약탈과 폭동만 부각시키고 있는 모습이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현 치안 체제의 개혁 요구를 경찰폐지론으로 규정한 트럼프 대통령은 '법과 질서의 대통령' 프레임으로 대선 전략을 몰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2주 동안 50개주 650여개 도시와 마을에서 열린 항의 시위는 이미 美 역사상 가장 많은 지역에서 시위가 벌어진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시위에서 폭력이 차츰 사라지고 있지만 집회규모는 갈수록 커지는 양상이다. 반(反) 인종차별 시위대들은 자신들의 희망과 요구를 관철하려면 1963년 킹 목사의 명연설을 다시 한번 새겨볼 필요가 있다. "비탄과 증오로 가득찬 술잔을 들이켜는 것으로 자유를 향한 갈증을 달래려 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