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가장 먼저 발생한 중국이나 중국과 가장 많은 인적 교류를 하는 홍콩이나 대만, 그리고 한국은 적은 희생으로 소강 국면에 돌입했다.
현대 문명의 선진국으로 알려진 미국이나 유럽은 코로나19 앞에 무기력한 모습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우리가 알던 ‘선진국이 맞는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그 동안 동양 사람들은 서양의 것이면 무턱대고 숭상하는 '모양주의(慕洋主義: 『미래를 위한 과거』(2015, 김갑수))' 에 젖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한국인들의 의식은 서구의 것이면 무조건 선망과 동경의 눈길을 보내는 정도로 편견이 심각하다.
서양의 것이면 무조건 옳고 믿을 수 있는 것으로 여겼던 사람들에게 코로나19는 적지 않은 깨달음을 주고 있다. 서구의 사회 시스템이 취약한 바탕 위에 세워진 불안정한 구조임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러한 서구 문명을 배우기 위해 엄청난 낭비를 계속해야 하나?
일본에 의한 식민사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조선시대나 우리의 근본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 조차도 조선을 아주 잘못된 왕조라고 비판하거나 역사를 왜곡한다. 조선은 518년 동안 왕국을 유지한 세계 역사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를 과소 평가하고 있다. 중국에 간 조선의 사신은 언제나 다른 나라 사신보다 상석에 앉았다. 일본이 한국의 역사를 그들의 통치 목적에 맞도록 왜곡하기 위해 만든 조선사편수회가 만든 식민사관이 한국인의 역사인식을 지배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해 서구가 추구하는 제국주의 흉내는 내으나, 결국 무너져 미국의 종속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자기들이 가진 고유한 전통과 문화적 유산을 경제와 바꾼 셈이다. 일본은 서구가 내건 경제 발전이라는 마약에 도취돼 동양의 유교적 문화를 망각함으로써 일본의 우수한 고유문화마저 상실하고 말았다.
일본은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약간 앞서 있으나 최근 일본 정치인들의 발언이나 행동, 태도를 보면, 얼마나 근시안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인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경제적인 교류와 다양한 분야에서 일본과 친밀하게 지내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오히려 우리가 속 좁은 일본을 정신적으로 압도하고, 낡은 관습에 매여있는 그들을 배려하는 정도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진보 인사의 일부는 친일적인 사고나 행동을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단순히 일본과 거래를 하거나 교류하는 사람들 조차도 친일로 싸잡아 ‘토착왜구(土着倭寇)’라는 말로 공격한다. 심지어 자기의 잘못을 비판하는 사람을 향해 '친일 프레임'을 씌우는데 토착왜구의 개념이 동원된다.
민족적 자존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상대를 비난하더라도 진영논리에 따라 이런 언어를 쓰는 것은 저열하고 비겁한 행위다. 일본제품을 선호하면서도 토착왜구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지적 수준을 보면, 그가 오히려 일본에게 굴종적이거나, 더 비애국적이며, 편향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조선왕조실록'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왕의 숨소리까지 기록돼 있을 정도로 세밀하고 과학적인 인류의 소중한 기록물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힘들다는 표현으로 ‘헬조선’이라는 말을 쓴다. 조선시대라고 하면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가르친 교사의 식민사관에 의한 역사교육 때문이다.
국가 고위직을 지낸 인사조차도, 조선시대 같으면 목을 쳤을 것이라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조선에 대한 배움이 전혀 없다고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다. 조선시대에는 조금만 잘못해도 목을 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이 그렇게 무도한 나라였을까? 조선의 역사를 TV에 나오는 사극 정도의 수준으로만 이해하고, 조선에 대한 공부를 조금도 하지 않은 무식의 소치다.
조선은 중국과 대등한 외교관계를 가진 나라였다. 물론 중국의 나라가 크고, 힘이 세서 전쟁을 막고, 백성들의 생존을 위해서 약자의 모습을 보였지만, 민족적 혼을 판 적은 거의 없다. 우리의 전통문화는 조상을 공경하는 효도 문화, 높은 교육열, 신용 중시, 자기절제, 충성심, 공동체 정신이 아주 강했다.
최근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보여준 모범적인 사례는 우리의 숨은 문화적인 저력이 표출돼 나온 것이다. 우리는 선진국들이 감히 하지 못하는 자율적인 통제와 규율로 위기를 극복하는 담대함을 실천하고 있다. 한국의 기준이 세계의 기준이 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울대 한영우 명예교수는 『다시 찾는 우리역사』(2003)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새 문명을 기대 한다’에서 ‘한국인은 동양 문명의 정수를 품고 살아온 민족이다. 그리고 서양문명의 장단점을 뼈저리게 체험하였다. 한국에서 새로운 문명이 탄생 할 개연성이 있다. 일류국가가 되려는 꿈은 오늘의 우리만이 아니라 옛날의 조상들도 똑같이 지니고 있었다……(중략) 실로 우리는 20세기 100년을 빼고는 언제나 일류국가로 살아왔다’ 고 밝히고 있다.
서양의 문화를 무조건 숭배하는 모양주의는 이제 버릴 때가 됐다.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보여주고 있는 한국의 ‘선진적 투명한 리더십’을 세계가 이미 배우기 시작했다. 주체적으로 우리가 새로운 문명을 만드는 기준을 정립해야 할 때이다. 법고창신! 옛 것을 토대로 근본을 잃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내는 실천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