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육류 도축·가공업체들은 생산 시설에서 무더기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서 잇따라 공장 폐쇄에 나섰다. 스미스필드푸드, 타이슨푸드, JBS USA 홀딩스 등 굴지의 회사들을 포함해 미국 전역에서 십여 곳의 주요 소고기·돼지고기 관련 공장이 문을 닫았다고 CNN은 전했다. 조업을 계속하는 곳 역시 직원들 간 감염을 우려해 작업량을 줄이거나 작업 시간을 단축하고 있다.
잇따른 조업 중단은 미국 내 육류대란 우려로 번지는 분위기다. 워싱턴포스트(WP)는 공장 폐쇄로 인해 미국 내 소고기와 돼지고기 생산이 25%까지 줄어든 것으로 집계했다. 이 같은 공급 감소는 글로벌 육류 공급이 이미 줄어든 상황과 맞물린 것이다. 지난해 세계를 휩쓴 아프리카 돼지열병(ASF)으로 세계 최대 양돈국인 중국에서 수백만 마리 돼지가 살처분 됐고, 코로나19로 인한 요식업계 수요 감소로 공급업체들은 물량을 줄여왔다.
육류 재고가 어느 정도 완충 역할을 해줄 것으로 보이지만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현재 미국 내 2주치 생산분에 맞먹는 육류가 냉동시설에 보관돼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조업 중단에 나선 대부분의 공장들이 안전을 이유로 2주 이상 조업을 중단하고 있기 때문에 몇주 안에 소비자들이 육류 부족을 체감하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처럼 한쪽에서는 육류 파동 우려가 커지는 데 반해 다른 한쪽에서는 가축들이 도축되지 못한 채 농장에서 죽어 나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베이컨, 햄, 소시지 등 가공을 위해 공장에서 도축되는 돼지는 하루 51만 마리 정도다. 그러나 공장들의 조업 중단 여파에 매일 10만5000마리의 돼지가 갈 곳을 잃은 채 농장에 쌓이고 있다. 이는 축산농가의 비용 부담을 키울 뿐 아니라 가축의 면역력을 떨어뜨려 가축들이 전염병에 취약해진다. 미국 정부가 가축 과밀 해소와 처분 방법을 지원하기 위한 센터 설치에 나설 정도로 과밀 사육 상황이 심각하다.
컨설팅업체 글로벌 아그리트렌드의 브렛 스튜어트 회장은 블룸버그에 "전례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농가는 가축을 내다 버리는데 소비자는 고기를 사는 데 더 많은 돈을 내야 하는 루즈-루즈(lose-lose) 상황이다"라고 진단했다.
육류 가공업계는 식품 공급망 붕괴를 경고하면서 정부의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나섰다. 최근 미국 내 최대 돈육공장 가동 중단에 들어간 타이슨푸드의 존 타이슨 회장은 26일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일간지에 전면광고 형식의 호소문을 실어 "식품 공급망이 무너지고 있다"면서 "우리는 이 나라에 먹을거리를 공급할 책임이 있다. 이는 공중보건만큼 중요한 일이다. 무시돼서는 안 되는 문제다. 미국의 가정에 식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공장은 계속 가동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타이슨 회장의 이날 호소문은 직원 보호에 소홀했다는 비판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육류 가공공장에서 무더기 확진자가 쏟아진 건 그동안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열악한 근무환경을 방치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