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병한 뒤 76일간 육지 속의 섬처럼 고립돼 있던 중국 후베이성 우한이 정상적인 도시로 회귀하기 시작했다.
8일 우한에 대한 봉쇄 조치가 공식적으로 해제되면서 도로와 철도·항공편을 통해 도시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됐다.
예기치 않게 우한에 남게 된 외지인들은 고통스러운 기억과 함께 일터와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고, 남은 이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삶의 터전을 복원하는 데 힘쓸 것이다.
이날 펑파이신문과 남방도시보, 제일재경 등 다수의 중국 매체들은 76일간의 봉쇄 기간을 거치며 시내 곳곳에 남겨진 다양한 사연을 소개했다.
후베이성 샹양에 거주하는 20대 여성 위솽(于霜)씨는 지난 1월 21일 선을 보러 우한에 왔다가 이틀 후인 23일 봉쇄 조치가 시작되면서 발이 묶였다.
하루이틀 머물 계획이었던 게 기약 없는 유배 생활로 뒤바뀌었다. 특히 우울증을 앓던 위씨는 봉쇄 기간 중 약을 구하지 못해 수차례 발작을 경험했다.
맞선 상대인 남성은 1월 27일 이후 얼굴도 보지 못했다. 그녀는 "봉쇄가 풀렸지만 아직은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귀갓길에 감염이라도 되면 80대 고령인 부모님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한의 한 언론사에서 사진기자로 근무하는 루전(陸臻)씨는 지난 80일 넘게 부인·자녀와 생이별을 해야 했다.
루씨는 "1월 20일 당국이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를 발표할 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다고 느껴 그날 바로 가족을 처가로 보냈다"고 말했다.
홀로 생활하는 동안 루씨는 우한 시내 곳곳을 누비며 10만장 이상의 사진을 찍었다.
그는 "매일 병원에서 응급 처치를 받는 환자들을 취재했지만 지난 이틀은 아이가 돌아온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쳐 카메라를 들 수 없었다"며 "면역력이 떨어질까 두려워 필사적으로 음식을 섭취한 탓에 봉쇄 기간 중 오히려 체중이 늘었다"고 전했다.
최근 둘째를 출산한 천스(陳思)씨에게 지난 3개월여는 다시 떠올리기 싫은 시간이다.
지난해 마지막 날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아버지와 함께 우한 셰허병원을 찾은 천씨는 그 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하는 초등학교 동창으로부터 원인 모를 폐렴에 걸린 환자들이 속속 입원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천씨는 동창이 건넨 마스크를 서둘러 착용했지만 이틀 후부터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임신 중인데 코로나19 증세가 나타나 두려웠다"며 "해열제도 먹지 못하고 물만 마시며 겨우 버텼다"고 회고했다.
다행히 음성이었고 얼마 뒤 건강한 딸을 출산했지만 이번에는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코로나19 사태로 근무하던 회사가 도산 위기에 빠지면서 출산 휴가가 끝나도 돌아갈 직장이 없어질 상황인 탓이다.
우한의 59세 농민 천바이린(陳柏林)씨는 30년 넘게 농사를 지었지만 올봄처럼 힘든 시기는 없었다.
브로콜리 농사가 풍년이라 내심 큰 수입을 기대하던 중 갑자기 마을이 봉쇄되는 바람에 수확물을 외부로 운송할 수 없게 됐다.
그는 "아내에게 잘하면 6만~7만 위안 정도 벌 수 있겠다고 자랑했는데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며 "마을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하루 종일 '밖에 나가지 말고 마스크를 쓰라'는 경고만 반복됐다"고 토로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도매상들에게 전화를 돌렸지만 "지금 같은 시기에 어떻게 거기를 가느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자루 안에서 썩거나, 밭에서 시들어 가는 브로콜리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 중국 소식통은 "우한 봉쇄가 풀리면서 중국 내 코로나19 사태 종식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분위기"라면서도 "바이러스가 물러간 우한이 다시 활기를 찾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