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물이 졸졸 흐르듯 세상을 자유롭게 여행하며 그림을 그리는 김물길 작가의 그림 이야기

2020-04-0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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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 모래사장을 사람의 얼굴로 표현한 ‘바다의 얼굴’, 달을 아이스크림으로 표현한 ‘달 아이스크림’. 보기만 해도 “이러한 영감은 어디서 떠올릴 수 있을까?”하며 놀라움과 감탄사가 나오는 그림을 그리는 김물길 작가. 

물이 졸졸 흐르듯 세상을 자유롭게 여행을 하며 그림을 그리는 그는 그림을 빼곤 잘하는 것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던 중 대학교 해외 봉사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외국을 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22살 때 세계여행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고 2년 반 동안 일해서 돈을 모았다. 그 돈을 갖고 스물 네 살 때 22개월 동안 아시아를 시작으로 유럽,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등 5대륙 46개국을 여행하며 410장의 그림을 그렸다. 그 후로도 세상을 자유롭게 여행하며 계속 그림을 그리며 그 속에 스토리를 담아가고 있는 그의 그림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 김물길 작가 제공/ 세상을 자유롭게 여행하며 그림을 그리는 김물길 작가]

Q. 김물길 작가의 그림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A.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려서 기억은 잘 안나요. 입시를 하기 위해 시작했던 게 아니었거든요. 그림을 좋아해서 쭉 그림을 그렸고 지금까지도 다행히 그림을 붙잡고 그리고 있어요.

Q. 전공도 예술과 관련된 분야인가요?
A. 전공은 서양화를 전공했어요.

Q. 김물길 작가는 예술가와 여행 작가 중 어느 지점에 있나요?
A. 저는 예술가죠. 여행 작가는 제가 여행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며 여행 이야기를 풀어나가다가 보니까 얻게 된 호칭이에요. 결과적으로 여행 작가가 아닌 화가로 남고 싶어요.
 

[사진= 김물길 작가 제공]


Q. 가장 많이 자신을 성장시키고, 그림의 방향성을 바꿔줬던 여행이나 계기가 있나요?
A. 그건 단연 세계여행 다녀왔을 때죠. 2011년부터 2013년까지 22개월 동안 5대륙 46개국을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것을 매일매일 그림으로 그렸어요. 다녀와서 보니까 약 410장의 그림을 그렸더라고요. 그때 제 그림의 방향이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를 제일 많이 깨닫게 됐고요.

그 전에는 입시를 마치고 대학교에 입학해도 결과적으로는 작업 자체가 시험, 평가, 점수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근데 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점수라는 것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벗어나서 내가 하고 싶은 것만을 집중해서 그림을 그린다는 게 이런 거구나'라는 걸 처음 느꼈어요. 그러한 마음으로 작업을 해야 진짜 진정성있게 할 수 있겠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경험이었어요.
 

[사진= 김물길 작가 제공]



Q. 그림이 한번에 그려지는 건 아닌데 어떻게 기록으로 남기고 그림으로 그리시나요?
A. 풍경이 시시각각 빨리 바뀌지 않는 풍경 앞에서는 보통 그 앞에서 그림을 그리고요. 만약에 사람을 그리고 싶거나 바뀌는 찰나에 순간을 그리고 싶을 때는 사진으로 찍어 놓고 그걸 잘 정리해서 장소 이동을 한 후에 실내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때 그림을 그려요.

Q.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보통 얼마나 걸리나요?
A. 여행을 하면서 그림을 그릴 때는 짧게는 1~2시간에서부터 많게는 4시간 정도 매일매일 그렸어요. 한국 작업실에서 그릴 때는 무한대예요. 짧게는 몇 분에서 길게는 12시간 이상 그릴 때도 있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Q. 익숙함을 새로움으로 바꾸는 김물길 작가만의 방법이 있나요?
A. 저는 앞에 보이는 모든 사물들이 살아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래서 '만약에 앞에 보이는 테이블이 살아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떤 모습을 취하고 있을까?', '어떤 과정의 삶을 밟아 왔을까?'라는 식으로 의인화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제 그림들을 보면 사람으로 표현된 그림들도 굉장히 많고, 살아 있다고 생각하면서 입장을 바꿔보는 것도 좋아해요. 그건 그림이라는 결과물을 떠나서 글을 쓰거나 시를 쓸 때도 유용한 것 같아서 일기를 쓸 때도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사진= 김호이 기자]


Q. 그림에 삶을 담는다는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생각은 눈에 보이지 않잖아요. 제가 살아온 과정을 같이 살아오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잖아요. 그림이 그걸 보여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어떤 사람 앞에 있느냐에 따라 바뀌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바뀌기도 하겠지만 그림은 저를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솔직하고 가식이 없는 표현인 것 같아요.

Q.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이게 내 가치관과 동일한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림은 제 생각을 전달하는 거잖아요. 근데 가끔 '내가 이런 생각을 해서 그리면 보는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까?'라는 유혹이 있어요. 그렇게 생각을 하면 제가 진짜 원하는 그림을 그릴 때 방해가 될 때가 있거든요. 최대한 저도 거기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이게 정말 내 모습인가?', '내가 생각하는 가치관인가', '정말 내가 이 생각을 담고 싶은가'가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Q. 김물길 작가는 가방에 어떠한 것들을 가지고 다니나요?
A. 여행과 일상에서 차이가 있어요. 여행할 때 수채화 도구는 못 가져가더라도 작은 스케치북이나 필기도구는 항상 가지고 다녀요. 그때그때 그려야 될 것들이나 기록해야 될 것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일상에서 휴대폰에 메모를 해놓고 그날 저녁에 작업하기 때문에, 찰나의 순간을 그림으로 그리지 못할 때는 메모장과 카메라 기능이 함께 들어 있는 휴대폰은 항상 들고 다니는 것 같아요.

Q. 김물길 작가를 색으로 표현한다면 무슨 색이고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저도 예전에는 어떤 사람을 하나의 색으로 표현할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근데 그건 불가능하더라고요. 사람에게는 모든 색깔이 다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라고 했을 때 “그 성격은 어떤 색이랑 닮았어요.”라고 할 수는 있겠죠. 근데 사실 모든 색깔을 다 가지고 있는데 상황에 따라 그 중에 어떤 색깔이 더 눈에 띄느냐인 거 같더라고요. 저도 제가 좋아하는 색, 어울리는 색은 있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색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한 가지로 말하기는 어려워요. 지나면 지날수록 제가 어떤 색깔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만나던 사람만 만나고 내가 겪고 싶었던 상황만 겪으면서 그때 내 성격이 그와 같았으니까 '난 이러한 색깔이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점점 저도 많은 상황들에 노출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까 제 색이라고 생각했던 것 중에 제 색이 아니었던 적도 너무 많았어요. 이 색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 색깔이었을 때도 있었고요. 그래서 저는 제 색깔이 하나가 아니라 반사되는 빛에 색이 달라지는 것처럼, 물감이 또 다른 물감을 만나면 색깔이 바뀌듯이 정말 순간순간마다 바뀌는 총천연색인 것 같아요.
 

[사진= 김물길 작가 제공]

Q. 세계일주를 통해 얻은 것과 잃은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얻은 건 굉장히 많죠. 제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제가 정말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어요. 그리고 다녀와서 작가라는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어줬어요. 저에 대한 자존감이 높아졌고요. 정말 제 그릇도 많이 넓어졌다는 걸 느껴요.

얻은 게 굉장히 많지만 당연히 잃은 것도 있을 수밖에 없는 게 제가 여행을 가지 않았을 때 얻을 수 있었을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시간들을 가장 잃은 것 같아요. 한국에 없는 몇 년이라는 시간동안 연락이 끊긴 사람들도 정말 많고 제가 그때 나이에서만 누릴 수 있는 학교생활이나 여러 가지들을 하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이러한 것들을 덮을 만큼 결과적으로 좋았던 것들이 더 많았기 때문에 사실 여행을 하면서 잃었던 게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흐릿해요. 지금 굉장히 만족하고 있어요.
 

[사진= 김물길 작가 제공]


Q. 가장 애정을 가지고 있는 그림은 무엇인가요?
A. 세계여행을 다녀와서 쓴 책 <아트로드>의 표지이자 쿠바에서 그렸던 ‘체게바라’라는 작업이요. 쿠바 아바나 현지 신문을 뜯어 붙여서 작업했던 것이라서 이건 똑같이 복제할 수 없다는 면에서 유니크함으로 제가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는 작업 중 하나예요.

Q. 여행작가로서의 김물길, 화가로서의 김물길, 사람로서의 김물길은 어떠한 사람인가요?
A. 세 개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직업에 따라서 정체성을 바꾸지는 않잖아요. 저는 다 섞여 있는 사람이지 여행작가였을 때의 나는 이런 모습이고, 화가로서의 나는 이런 모습이고, 사람으로서의 나는 이런 모습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그냥 모든 게 저인 것 같아요. 여행을 했으니까 나왔던 그림, 내가 이러한 성향과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오는 결과물들과 여행지의 선택, 여행하는 스타일 등 이런 것들은 다 엮여 있고 연관되어 있는 거라서 세 개가 다 제 자신이지 분리해서 상상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Q. 화가가 된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대 같은 건 없었나요?
A. 아니요, 없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작가나 화가 말고는 사실 재주가 없거든요(웃음). 만약에 다른 무언가에 한눈을 팔 수 있을 정도로 재주가 다양했다면 아마 공부를 더해서 선생님이 됐다거나, 시험을 잘 봐서 공무원이 됐다거나 혹은 스펙이 뛰어나서 좋은 회사에 취업을 했다거나 했을텐데 그런 유혹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재주가 없었어요. 저는 지금 대학교를 졸업하긴 했지만 토익 토플이 어떤 식으로 시험에 나오는지도 몰라요. 제가 가지고 있는 스펙은 아무것도 없어요. 왜냐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도 그런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고 “네가 잘하고 좋아하는 건 그거 하나야”라고 인정을 해주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작가라는 활동이 너무나 당연했고 부모님도 인정해주셨어요. 그런 부분이 오히려 갈팡질팡 하지 않고 더 한 곳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 거 같아요. 만약에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면 그림 그리는 것에 이렇게 올인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게 아니었기 때문에 제가 정말 지고지순하게 이 길을 팠던 것 같아요.

Q. 김물길 작가에게 잘하고 좋아하고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A. 제가 잘하는 일은 그림이죠. 좋아하는 것도 그림일 것이고 해야 하는 것도 그림이죠(웃음). 사실 사람들이 여행에 초점을 맞춰서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저는 여행을 평생 할 생각은 없어요. 근데 그림은 평생 그릴 것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잘하고 좋아하고 앞으로도 해야 하는 일은 그림인 것 같고, 이제는 '이게 나의 운명이다'라는 생각까지 들어요. 내가 힘들면 힘든 대로 그림을 그려야 하고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그림을 그려야 돼요. 내가 그림을 그려서 뱉어내는 일들이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Q. 그림을 그리면서 슬럼프는 없었나요?
A. 세계여행을 할 때 슬럼프가 왔었는데, 제가 원하지 않는 주제로 그림을 그려야 할 때 슬럼프가 오더라고요. 근데 제가 자연스럽게 원하는 그림을 그리면 슬럼프가 오지는 않아요. 제가 이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지만 외부적으로 그려야 하는 압박이나 주문 같은 게 있을 때 힘들어요. 제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릴 때는 슬럼프가 온 적이 없어요.
 

[사진= 김물길 작가 제공]



Q. 김물길 작가가 생각하는 '그림을 잘 그린다'는 건 무엇인가요?
A. 전달력인 것 같아요. 제 그림관은 어쨌든 사람들이 이 그림을 봤을 때 공감을 이끌어내고 내 마음이 잘 전달되는 그림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글도 잘 쓰는 글은 어렵게 쓴 글이 아니라 읽었을 때 이 사람이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가 되고 이걸 통해서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제 그림이 사람들이 봤을 때 공감이 되고 생각할 수 있는 그림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림에서 중요한 건 진솔함과 전달력인 것 같아요.
 

[사진= 김물길 작가 제공]


Q. 김물길 작가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A. 그건 확실히 자유로움인 것 같아요. 무언가 창조하고 새로운 걸 만들어 내는 사람들은 주변에서 너무 많은 조언과 틀을 주면 안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인터뷰 장면]

Q. 앞으로 가보고 싶은 여행이나 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나요?
A. 저는 남극을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요. 이건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아쉬움인데, 제가 세계여행을 할 때 남극이랑 제일 가까운 나라인 아르헨티나의 가장 남쪽에 있는 '우수아이아' 라는 도시에 갔었어요. 그게 남극으로 가는 세계적으로 제일 싼 방법이거든요. 그 당시에는 대학생이고 돈이 없어서 눈앞에서 남극을 가지 못했던 경험이 있어서 아쉬움 때문에 가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어요. 나중에 시간도 되고 이 열정이 식지 않는다면 사랑하는 사람이랑 꼭 남극을 가고 싶다는 로맨틱한 꿈이 있어요.

그리고 해보고 싶은 작품을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저는 미래에 대해 생각을 잘 안하는 편이거든요. 계획 없이 살고 앞으로 내가 어떨 것 같다는 생각도 잘 안 해요. 대신에 그 에너지를 지금의 나한테 쏟거든요. 그렇지만 그림을 떠나서 해보고 싶은 건 해외에서 장기 체류를 해보고 싶어요. 그 동시에 정말 빠져서 여행자의 눈이 아닌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의 눈으로 새롭게 그려보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번쯤은 해보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세상을 도화지 삼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제가 그림을 그리면서 빨간색으로만 칠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지만, 실제로 그 안에는 검정색부터 하얀색, 초록색, 노란색까지 놀랄 정도로 다양한 색깔들이 필요해요. 힘들 때도 있고 기쁠 때도 있는 것처럼 '이러한 색을 꿈꾸고 있는데 왜 지금 나는 이러한 색을 쓰고 있지?'라고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어떠한 그림에도 의미 없는 색깔은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지금 내가 고군분투하면서 힘들어하고 있는 이 순간도 결국 내 인생이라는 완성된 그림에서는 정말 의미 있는 한 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혹여나 저와 비슷한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이런 생각들을 접목해 보면서 “세상에 의미 없는 색이 하나도 없다”라는 생각을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김물길 작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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