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시 꼭] "두려워 마세요"…도넛에 담은 희망메시지

2020-03-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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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 작가 개인전 '도넛 피어'

'Do Not Fear'와 비슷한 발음에 착안

미래 대한 불안 가진 이들 위로하고파

학고재 본관서 5월 31일까지 전시

'도넛 매드니스!!(DONUT MADNESS)' 앞에 서 있는 김재용 작가 [사진=학고재 제공]


"한 걸음 물러나고 싶기도 했죠.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사람들을 웃게 해주고 힘을 주고 싶었어요."

진심이 담겨 있는 도넛은 사람들을 미소 짓게 하고 봄을 알리는 꽃처럼 희망을 줬다. 5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학고재 본관에서 열리는 김재용 개인전 '도넛 피어'는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쉼표' 같은 전시다.
봄이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김 작가는 코로나19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전시를 열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 공교롭게도 미리 정한 전시명에 답이 들어있었다.

'도넛 피어(DONUT FEAR)'는 '두려워하지 말라(Do Not Fear)'라는 뜻이 있다. 도넛과 '두 낫(Do Not)' 발음이 비슷한 데서 착안한 중의적 표현이다. 김 작가는 "교단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다보면 재능있는 학생을 많이 만날 수 있다"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진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작가 본인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는 선천적으로 빨간색과 녹색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어린 시절 남들과 색을 다르게 본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색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일부러 어두운색 위주로 그림을 그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 뉴욕에 있던 김 작가는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금전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조형에 대한 꿈을 버릴까도 생각했다. 인생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 시기였다. 힘든 시절 그의 선택은 현실이 아닌 꿈이었다. 갇혀 있던 껍데기를 깼다.

김 작가는 "즐거운 작업을 해보자는 생각에 저마다 다른 색과 모양을 가진 작은 조각들을 만들기 시작했다"며 "개인적으로 도넛을 좋아한다. 자연스럽게 흙으로 빚어낸 도넛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도넛 작업은 김 작가를 조금씩 바꿔 놓기 시작했다. 도넛이 수백개 수천 개가 쌓여가고 1~2년이 흐르자 작가는 자신이 색을 특이하게 잘 쓴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 그는 도넛 작업에 매진했다.

이번 학고재 전시에서는 김 작가가 만든 도넛 조각 1358점을 벽면에 붙인 '도넛 매드니스!!(DONUT MADNESS)' 작업을 만날 수 있다. 2012년부터 만든 도넛 작품으로 꽉 채웠다.

김 작가는 "내 머릿속은 도넛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을 만날 때나 자연을 볼 때나 어떤 도넛을 만들까 생각한다"며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달하고 행복해지고 싶은 생각으로 꽉 차 있다"고 말했다.

수천개 도넛 중 같은 건 하나도 없다. 우정우 학고재 실장은 "각기 다른 수많은 사람과 다른 생각들이 하나로 모여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고 설명했다.
 

'오래 살자' [사진=학고재 제공]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 작가는 세살부터 여덟살까지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에 살았다. 유소년 시절은 미국에서 보냈다. 2001년 미국 미주리 크랜브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 도자과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2014~2015년 뉴저지 몬클레어주립대 조교수로 근무했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 도예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학고재 개인전은 작가가 우리나라에서 여는 첫 개인전이다. 2015년 한국으로 돌아온 김 작가는 청화를 공부한 뒤 도넛 작업에 적용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가 만든 다양한 신작을 만날 수 있다.

청화 채색 기법을 접목한 '유니콘을 가두지 말아요'(2020)와 '호랑이와 까치'(2020) 등을 선보인다. 십장생을 그려 넣은 '오래 살라'(2020)도 흥미롭다. 실제 도넛만 한 작품뿐 아니라 가로와 세로 크기가 각각 1m인 '아주 아주 큰 도넛' 시리즈도 만날 수 있다. 

'동양과 서양에서 자랐거든'(2018)은 청화 도자 형식을 빌려 제작했다. 도넛 91개를 둥근 형태로 배치하고 청화 안료로 그림을 그렸다. 본바탕은 청화를 떠올리게 하지만 아라비아풍 문양이 눈에 띈다. 나고 자란 한국과 중동, 미국 문화가 섞인 김 작가 작품 세계를 잘 보여준다.
 

'레드 도넛' [사진=학고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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