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2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
로이터에 따르면 주요 이코노미스트들은 지난해 4분기 일본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0.9%를 기록할 것으로 봤다. 연율로 환산하면 -3.7%다. 이렇게 되면 5분기 만의 마이너스 성장이자 2014년 2분기 이후 최악의 기록이 된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대외 수요가 줄어 수출과 생산이 저조한 상황에서 지난해 10월 일본 열도에 물폭탄을 쏟은 대형 태풍 '하기비스'가 경제 부담을 가중시켰다. 같은 달 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소비세율 인상(8%→10%)을 단행하면서 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민간소비도 꽁꽁 얼어붙었다. 지난해 12월에는 가계 소비지출이 가구당 21만1380엔으로 전년 대비 4.8% 감소했다는 일본 총무성 발표가 나오기도 했다. 전문가 예상치인 1.7% 감소보다 훨씬 나쁜 결과다.
앞서 일본 민간 연구소들은 올해 1분기에 0.3% 성장을 예상했으나 이마저도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올초 세계 경제에 대형 악재로 떠오른 코로나19 여파를 반영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가 중국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에 관광업, 제조업, 소매업 등이 모두 코로나19의 직접 영향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파장을 반영해 일본의 성장률 전망치를 속속 하향 조정하고 있다. 씨티그룹은 대중국 수출 감소와 중국인 관광객 급감을 이유로 올해 1분기 일본의성장률 전망치를 연율 기준, 종전 0.8%에서 -0.3%로 대폭 낮춰잡았다. 경제가 2개 분기 연속 위축하는 기술적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리타 겐타로 미즈호연구소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수출과 투자가 정체하는 상황에서 소비지출도 계속 약하다. 코로나19 영향을 고려하면 올해 상반기까지 성장세가 제한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내내 일본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에 갇힐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로빈다 핀 애버딘스탠더드인베스트먼트 이코노미스트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니더라도 코로나19 여파로 일본 경제 규모가 올해 0.2% 쪼그라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무라리서치는 코로나19 사태가 사스 수준에서 일단락된다는 시나리오를 가정했을 때 올해 GDP 피해 규모를 7760억엔으로 추산했다. 사태가 1년 동안 지속될 경우엔 피해액이 2조4700억엔, GDP의 0.45%에 이를 수 있다고 봤다.
◆제조업에서 관광업까지 코로나19 직격탄
코로나19로 인한 일본 경제의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전망되는 건 일본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중국은 일본 기계설비와 자동차, 첨단기기의 주요 소비국이자 부품의 핵심 공급국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춘제 연휴가 연장되고 공장들이 조업 중단에 들어가면서 현지에 생산기지를 둔 일본 기업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베이징과 상하이 등 주요 도시는 10일부터 공장 조업이 재개됐지만 일본 자동차업체 중국 공장 대부분은 재개되지 못하고 있다고 NHK가 보도했다. 실제로 도요타는 중국 4개 도시에 있는 공장 조업 재개 시기를 오는 17일로, 혼다와 스즈키는 14일로 각각 연장했다. 닛산은 중국산 부품 조달이 막히면서 후쿠오카 공장 가동의 일시 중단을 선언했다. 일본은 자동차 부품 가운데 약 30%를 중국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 같은 생산 차질은 기업 실적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실적 우려에 기업들이 고용과 투자를 줄이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일본 주요 소매업체들도 코로나19 충격으로 실적에 비상이 걸렸다. 유니클로와 무인양품이 대표적이다. 이들 기업은 인구 감소로 성장 한계에 부딪힌 일본 내수시장에서 해외로 눈을 돌려 고속 성장한 케이스로 주목받았지만 한국의 불매운동에 이어 코로나19라는 겹악재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지지통신에 따르면 유니클로 모회사 패스트리테일링은 중국 내 750개 매장 중 370곳의 휴업을 선언했다. 지난달 160곳에서 2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무인양품 역시 중국 매장 270곳 중 절반이 넘는 140개 매장의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언제 문을 다시 열지는 불투명하다.
일본이 신성장 동력으로 꼽는 관광업계의 불안은 더 크다. 일단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된 한·일 수출 갈등으로 한국인 관광객 수의 감소는 회복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인 방일객 수는 전년 대비 63%나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 관광객의 약 30%를 차지하는 중국인 관광객마저 급감하면서 관광업계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춘제 연휴 일본 오사카 공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전년 대비 30% 떨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을 오가는 항공편과 크루즈가 무더기 운항 중단됐고, 숙박업소 취소 문의도 줄을 잇고 있다.
'큰손' 중국 소비자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유통업계의 실적 경고도 잇따랐다. 백화점과 면세점을 운영하는 미쓰코시이세탄홀딩스는 소비세율 인상과 코로나19 영향을 반영해 올해 1분기 순익 전망치를 당초 140억엔서 70억엔까지 끌어내렸다. 일본 화장품업체 고세 역시 방일 여행객 감소 등을 이유로 같은 기간 순익 전망치를 371억엔에서 300억엔으로 낮춰잡았다.
다이와연구소 구마가이 미쓰마루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인 관광객 100만명이 감소하면 일본 GDP가 2500억엔 감소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약 1000만명에 육박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동일본 대지진의 후유증을 털고 일본 부활을 선언하는 계기로 삼겠다던 도쿄올림픽 성공적인 개최도 장담하기 어렵다. 올해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관광객 4000만명을 유치한다는 계획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사태 추이에 따라 관객은 물론 선수들의 출전 포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