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이 생일을 맞아 잔치를 열었는데, 박쥐가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봉황이 불러서 나무라니까 박쥐는 네 발 가진 짐승인지라 새들의 잔치엔 낄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얼마 뒤에 기린 생일 파티가 열렸는데 박쥐는 이 모임에도 가지 않았다. 기린이 야단을 치려 하니, 날개 달린 짐승이 어찌 기는 짐승들 모임에 가느냐고 반문했다.
'박쥐구실'(편복지역(蝙蝠之役))이란 말은 이래서 생겼다. 조선 홍만종(1643~1725)의 '순오지'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런 행동을 하다가 박쥐는 날짐승과 길짐승 양쪽에서 미움을 받게 되어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어두운 동굴 속에 숨어있다가 밤에만 나온다는 결말이 들어있는 버전도 있다.
이쪽저쪽 넘나드는 박쥐에 대한 미움은, 이제 인간들에게 옮겨온 것 같다. 바이러스에서 인간 사이를 오가며 전염병을 퍼뜨리는 제1호 원흉으로 손꼽히면서다. 지난 23일 중국과학원 우한바이러스연구소 스정리(石正麗) 연구팀은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염기서열이 박쥐가 지니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96%가 같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우한 폐렴을 옮긴 숙주가 박쥐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박쥐는 왜 이런 전염성 바이러스를 지니고 있을까. 전문가들은 우선 환경파괴를 이유로 든다. 산업화에 따라 산림이 줄고 습지가 사라지면서 박쥐는 인간의 마을이나 농장으로 건너와 살거나 먹이를 찾고 배설물을 남긴다. 이 배설물에 있던 바이러스가 다른 숙주와 접촉하면서 인간에게까지 전염이 된다는 것이다. 또, 박쥐는 아까 박쥐구실에서 보듯 인간과 같은 포유류이기에 종(種)의 장벽이 높지 않아 인간전염 가능성이 높다.
박쥐의 무리생활 또한 전염을 급속확산시키는 요소이다. 한 마리의 박쥐가 바이러스를 보유하면 무리 전체로 파급되기 쉽다. 박쥐는 생물학적 다양성이 높은 종이다. 4600여종의 포유류 중에서 박쥐가 925종을 차지한다. 종이 다양하면 거기에 기생하는 바이러스도 다양해지고 숫자도 많아질 수 밖에 없다. 박쥐 몸에는 최다 200개 정도의 바이러스가 살고 있지만, 그 자신은 감염되지 않는다고 한다. 수평 비행속도가 시속 160km로 급속한 비행 때 체온이 치솟으면서 면역계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사스와 메르스도 박쥐가 옮겼다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코로나바이러스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일종이다. 우리에게 악몽을 남긴 사스와 메르스 또한 코로나바이러스다. 이 바이러스들은 게놈(유전정보) 서열에 따라 베타 코로나바이러스에 속한다. 알파와 베타의 경우 박쥐에서 발견되며, 감마와 델타는 조류에서 주로 나온다.
바이러스는 인체에 침투할 때 돌연변이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사람의 몸 속으로 들어오게 하는 매개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2년 중국 남부 광둥성에서 발생한 사스는 전세계로 확산되어 7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냈는데, 인간세포 표면의 ACE2라는 단백질과 결합해 침투했다. 또 2012년 중동지역에서 시작된 메르스는 DPP4라는 인체세포 단백질을 이용해 들어왔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2015년 국내에 번져 38명의 사망자를 낸 바 있다.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발생한 신종코로나바이러스는 사람간 전염이 되는 것이 확인됐으며 백신과 치료제는 없는 상황이다. 사스의 경우 중국에 서식하는 관박쥐가 숙주라는 연구가 나왔다. 연구진은 관박쥐의 배설물에서 분리해낸 새로운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염될 수 있는 것도 확인했다. 사스는 관박쥐가 사향고양이를 거쳐 인간에게 전염된 것으로 본다. 또 메르스는 박쥐와 낙타가 감염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1998년 말레이시아에서 100여명의 목숨을 앗은 니파 바이러스도 박쥐가 보유한 바이러스로 알려져 있다.
인간이 박쥐의 삶을 침범한 결과
이번 신종코로나바이러스의 경우도 박쥐가 옮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뉴욕타임스는 전염병 전문가인 피터 다스작 박사의 말을 인용해 "아직 신종코로나바이러스의 근원을 알지는 못하지만, 박쥐에서 시작된 것이는 강한 증거가 있다"고 보도했다. 이 변종바이러스는 박쥐가 지닌 다른 바이러스와 결합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인간이 박쥐를 먹거나 가축시장으로 산 채로 거래할 때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스작 박사는 그러나 "박쥐가 이 질병의 발병에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박쥐의 삶을 침범한 결과"라고 말하기도 했다.
산업혁명 이후 획기적으로 달라진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도살'과 '반려'이다. 동물을 대량 사육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동물고기를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량 도살이 일상화된 것도 사실이다. 이와 함께 인간의 반려로 동물을 키우는 문화 또한 커졌다. 사육동물에 대한 이런 양면적인 '발전'이 서로 반목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도살을 반성하는 관점이 등장하고, 반려를 조롱하는 시선이 생겨난 건 그 때문이다. 동물이 전파하는 전염병의 창궐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와 사육문화 전반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한편 사스에 이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까지, 중국에 유독 코로나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 까닭은 그들의 츠예웨이(吃野味 걸야미, 야생동물 식도락) 습관 때문이라고 보는 시선이 많다. 이들은 야생동물을 먹는 것을 신분과시로 여긴다. 실제로 우한의 화난 수산시장 한 상점에는 42종의 동물고기 메뉴가 적혀있다. 공작, 지네, 낙타, 전갈, 코알라, 여우, 새끼늑대, 사향고양이, 사향쥐, 캥거루, 사슴생식기, 악어 등이다. 메뉴판 아래에는 "산 채로 현장도살"이란 문구가 적혀있다.
박쥐 또한 중국인들이 즐기는 음식이다. 최근 웨이보에는 한 블로거가 박쥐탕을 즐기는 모습이 사진으로 올라와 있기도 하다. 박쥐는 끓이거나 쪄먹는데, 가래를 삭이고 기침을 멎게 하며 이뇨작용을 한다고 되어 있다. 부기를 빼는 효과가 있고 간을 보호하고 눈을 밝게 하는 효능이 있다는 얘기도 있다.
1000년전 소동파가 읊은 '박쥐구이'?
송나라의 소동파는 가난해서 말라죽을 것 같은 동생과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며, '호사스런 츠예웨이의 메뉴들'을 언급하는 반어법적인 시를 남겼다. 그 시에 박쥐구이가 등장하니 1000년쯤 전에도 몬도가네 식탐들이 들끓었던 것 같다. 소동파는 그걸 먹은 게 아니라 그런 세태를 비판한 것이니 예외로 치더라도, 이 나라의 지독한 보신취향이 이제 전세계를 경악케 하는 '박쥐의 복수'로 되돌아온 사실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소동파의 시를 읽으며, 인간의 입 속으로 희생된 동물들을 한번 느껴보자.
닷새에 한번씩 꽃돼지 고기를 보고
열흘에 한번씩 누런 닭 죽을 만나네
현지 사람들은 가만가만 감자토란을 먹으면서
훈제 쥐와 박쥐구이를 권하는구나
옛날에 좋다던 꿀은 맛보면 바로 토하고
관습에 따라 두꺼비를 점점 가까이 하네
십년 서울 생활에 살찐 양고기가 싫어지고
날마다 꽃잎을 쪄서 홍육(돼지고기)을 누르는구나
예전엔 이 배에 장군이 들어있다 했는데
이젠 기껏해야 깐 좁쌀이면 족하다
사람이 천하를 말하나 올바른 맛은 없나니
지네고기 두렵지 않고 사슴고기도 현명하리
해강현의 별가 벼슬이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갓이 풀리고 허리띠가 떨어져 어린 종이 놀라고
서로 만난다면 두 야윈 신선같겠구려
산골로 돌아가 황새 탈 때가 된 건가
<동생이 살이 빠졌다는 얘기를 듣고 (聞子由瘦) - 소동파>
五日一見花豬肉(오일일견화저육)
十日一遇黃雞粥(십일일우황계죽)
土人頓頓食署芋(토인돈돈식서우)
薦以薰鼠燒蝙蝠(천이훈서소편복)
舊聞蜜唧嘗嘔吐(구문밀즉상구토)
稍近蝦蟆緣習俗(초근하마연습속)
十年京國厭肥羜(십년경국염비저)
日日烝花壓紅玉(일일증화압홍옥)
從來此腹負將軍(종래차복부장군)
今者固宜安脫粟(금자고의안탈속)
人言天下無正味(인언천하무정미)
蝍蛆未遽賢麋鹿(즉저미거현미록)
海康別駕復何為(해강별가부하위)
帽寬帶落驚童僕(모관대락경동복)
相看會作兩臞仙(상간회장양구선)
還鄉定可騎黃鵠(환향정가기황곡)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