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라면 화 냈을 거라고? 때론 그도 고집을 꺾었다

2020-01-2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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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만과 타협 오갔던 스티브 잡스, 필요할 땐 물러서기도

혁신 제품 토대는 강한 부정...남은 틈새는 애플답게 채워가

2011년 10월 스티브 잡스 타계 당시 애플 공식 누리집 첫 화면. [사진=애플 코리아 누리집 갈무리]


[데일리동방] 스티브 잡스가 통곡했을 제품들이 잘 팔리고 있다. 출시 때마다 ‘혁신이 없다’는 기사가 따라붙는 아이폰은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18% 더 팔렸다. 현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 체제에서 출시된 ‘애플워치’와 ‘에어팟’은 웨어러블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지난해 무선이어폰 시장에서 애플이 5870만대를 출하해 54.4%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다. 전체 무선이어폰 시장 수익에서 애플 비율은 71%에 달했다. 시장점유율에서 샤오미는 8.5%로 2위, 삼성전자가 6.9%로 3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3·4분기 세계 스마트워치 점유율은 애플이 47.9%였다.
전체 매출액도 늘고 있다. 지난해 4분기(7~9월) 애플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 증가한 640억 달러(약 74조4960억원)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잡스가 통곡할 일’이라는 비난이 따라붙는 이유는 타협 없는 모습으로 각인된 생전 이미지 때문으로 보인다.

◆애플 토대 만든 극단성

잡스는 고집불통 경영자였다. 그를 설명하는 유명한 단어가 ‘현실 왜곡장’일 정도다. 이는 미국 인기 TV시리즈 ‘스타트랙’ 용어로, 그가 나타날 때면 현실이 유연해진다는 의미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전기 ‘스티브 잡스’에 따르면 잡스는 자신의 거짓말을 포함한 의도적인 현실 거부로 비전을 고집하곤 했다. 레이저를 쏘듯 사람들 눈을 보며 자기 생각을 단언하는 태도였다. 초창기 ‘맥’을 만든 팀원들은 최면술에 가까운 그의 능력이 IBM이나 제록스와 비교조차 힘들었던 애플을 컴퓨터 역사를 바꾼 기업으로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물론 이런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극단적으로 입장을 바꿔댄 그의 태도를 상당 부분 걸러낼 줄 아는 방법을 터득해야 했다. 맥팀은 1981년부터 매년 잡스에게 가장 당당하게 맞선 사람을 뽑아 상을 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잡스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서로를 위해 만들어져 그 자체로 하나의 제품이 돼야 한다(엔드 투 엔드 방식)는 신념, 하드웨어 내·외부 디자인을 모두 중시하는 기조, 극단적으로 물러선 디자인이 사용자경험을 극대화한다는 원칙으로 기업 토대를 닦았다. 애플 최고디자인책임자(CDO)였던 조너선 아이브가 맥·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 등을 디자인하며 승승장구할 수 있던 배경이 바로 잡스 고집이었다.
 

지난해 5월 출시된 7세대 아이팟 터치. [사진=애플 코리아 제공]


◆고집 꺾고 출시한 윈도우즈 아이튠즈

그럼에도 해마다 반복되는 ‘잡스 프레임’에는 반론 여지가 있다. 잡스의 주요 업적 가운데 하나가 ‘설득당하기’였기 때문이다. 아이팟 공개 행사가 열린 2001년 10월 23일, 한 기자가 만찬 행사에서 빌 게이츠에게 제품을 보여줬다. 전기에 따르면 게이츠는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신기한 물체와 마주한 외계인과 같은 태도로 제품 곳곳을 살피더니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거 매킨토시에만 연결되나요?” 훗날 마이크로소프트(MS)가 아이팟 대항마로 출시한 ‘준(Zune)’은 쓸쓸히 묻혔다.

CD시대 종말을 이끈 애플은 2003년 4월 아이튠즈 스토어를 발표하고 음반 유통 구조를 유료 다운로드로 바꿔놨다. 숙적인 MS 수장 게이츠는 좌절감에 휩싸였다. 하지만 정작 잡스는 윈도우즈용 아이튠즈 개발에 반대했다. 아이팟을 맥에서만 쓸 수 있게 한 덕에 맥 매출이 올랐다는 이유에서다. 그를 제외한 애플 수뇌부 모두 윈도우 버전을 주장했다.

당시 잡스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윈도우즈 사용자가 아이팟을 쓸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지속적인 압박에 잡스는 “사업적 관점에서 타당하다는 걸 내게 입증하기 전까지는 난 절대로 안 할 거다”라고 말했다. 패배를 인정한 그만의 방식이었다.

뻔하게도 윈도우즈용 아이튠즈 도입이 맥 제품 판매 감소를 상쇄한다는 외부 전문가 시나리오 발표가 나왔다. 이에 특유의 감정적이고 직설적인 대답이 나왔다. “젠장, 마음대로 하시오.” 그해 10월 잡스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열고 이렇게 말했다. “많은 이가 우리가 절대 만들지 않을 거로 생각했던 제품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화면에는 “지옥이 얼어붙었다(해가 서쪽에서 떴다)”가 쓰여있었다.

그로부터 16년 뒤인 지난해 연말 애플은 아마존·구글 등과 스마트홈 제품 간 호환성을 높이는 연결성 표준개발 공동위원회를 발표했다. 다만 자체 운영체제 iOS와 인공비서 ‘시리’를 포기하지 않고 자사 제품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방법을 강구하는 모습이다.

3세대 아이패드 프로와 2세대 애플 펜슬. [사진=애플 코리아 제공]


◆강한 부정의 역설, 애플펜슬

아이패드에 스타일러스 일종인 ‘애플펜슬’이 도입된 데 대한 비난도 잡스 프레임의 하나다. 잡스가 아이패드를 만들 때도 스타일러스를 극도로 혐오한 점은 사실이다. 그토록 강한 부정이 오늘날 iOS와 아이패드OS, 아이패드 하드웨어 디자인 토대가 됐다.

변화는 오랜 도전이 기술력 틈새를 채울 때 일어난다. 애플이 만든 초기 태블릿은 아이패드가 아닌 ‘뉴턴’이었다. 아이브가 1994년 2세대 뉴턴에 들어갈 스타일러스 디자인에 공을 들였지만, 제품 자체적인 기능 미비와 취약한 필기 인식 등으로 흥행에 실패했다. 그때 잡스는 애플 바깥에서 ‘토이 스토리’ 공동제작에 매달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잡스가 복귀한 1997년 만나 의기투합했다.

유독 애플에 요구되는 일관성 토대는 잡스의 생전 태도였다. 하지만 잡스 특기에는 기만술도 포함돼 있었다. 그는 2003년 5월 인터뷰에서 태블릿PC 개발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당시 애플은 연례 휴양수련회 때마다 미래 프로젝트로 태블릿을 논의하고 있었다.

애플이 아이패드 고유의 전체 화면 디자인을 계승하는 동안 2015년 1세대 애플펜슬이 출시됐다. 2018년 2세대 펜슬은 화면 옆에 찰싹 달라붙으며 충전까지 되면서 애플식 스타일러스로 자리매김했다.

2010년 아이폰4 안테나 게이트 역시 타협 없는 디자인 결과였다. 앞뒷면 유리를 감싸는 스테인리스 안테나는 손으로 쥘 때 신호를 약하게 하는 원인이 됐다. 이후 잡스는 잘못을 인정했고, 다음 세대인 아이폰4S 테두리에 줄 하나가 늘었다.
 

에어팟 프로 출시 초기인 2019년 11월 애플 가로수길 모습. 이곳은 국내 유일 애플 직영점이다. [사진=이범종 기자]


◆변해가는 제품 근간은 그대로

이 때문에 ‘만일 잡스였다면 내놓지 않았을’ 제품이라는 공식은 허상에 가깝다는 결론이 나온다. 처음 내놓은 제품군이 아니면 혁신이 아니라는 관점 역시 마찬가지다. 돌이켜 보면 애플은 늘 첫 번째 제품군을 만들지 않았다. 아이팟 이전에도 mp3 플레이어가 있었고, 아이폰 이전에도 스마트폰이 있었다. 아이패드도 마찬가지다. 에어팟은 별명인 콩나물처럼 기존 무선이어폰 시장 틈바구니로 고개를 내밀었다.

현재 애플 상황은 잡스가 눈 감은 뒤 누리집에 새긴 다짐과 일치한다. “이제 스티브는 오직 그만이 만들 수 있었던 회사를 남기고 떠났으며, 그의 정신은 애플 근간이 돼 영원히 남을 것이다.”

애플 근간은 변하지 않았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하나의 제품으로 빚는 ‘엔드 투 엔드’ 방식이 오늘날 애플워치와 에어팟 사용경험을 만들었다. 2011년 서비스를 시작한 ‘아이클라우드’는 맥·아이폰·아이패드·애플워치 사용경험을 한데 묶고 있다. ‘연속성’으로 불리는 이 기능은 캘린더 일정과 메모, 이메일 작성, 연락처 정보, 사진 촬영·편집 결과 등이 기기 간에 실시간 동기화되는 서비스다. 문자 메시지와 전화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폰에 앱을 깔면 큰 화면에 최적화된 유니버설 애플리케이션이 아이패드에 자동 설치된다.

최근에는 아이폰에서 복사한 글과 사진을 맥으로 붙여넣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에어팟을 한 기기에 인식시키면 해당 정보가 다른 기기에 전송돼 연결이 매끄럽다. 삼성전자도 지난해부터 자사 제품에 연속성을 적용하기로 했다.
 

스티브 잡스가 2011년 6월 아이클라우드를 소개하며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이 자동으로 나머지 기기들에 옮겨지는 실시간 동기화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내버려 두면 ‘그냥 되는(It Just Works)’ 애플식 연속성의 시작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만드는 기업 강점이 다시금 부각된 순간이었다. [사진=애플 팟캐스트 화면 갈무리]


실패하면 잊혀지고 성공하면 혁신이 된다. 잡스 타계 1주기인 2012년 정보통신기술(ICT) 블로거 오힘찬씨가 지적했듯 애플은 잡스 부재와 상관없이 도전을 거듭한 체질 덕분에 혁신할 수 있었다. 7㎏짜리 노트북인 ‘매킨토시 포터블’과 ‘매킨토시 TV’, 디지털카메라 ‘퀵테이크’, 콘솔 게임기 ‘피핀’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애플이 도전하지 않다가 갑자기 혁신에 매달렸다면 오늘날 잡스 업적은 한참 뒤로 미뤄졌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추종자와 적대자 모두 ‘스티브다움’에 애플을 가둘 필요는 없다. 이 회사는 예전처럼 도전과 실패를 반복할 테고 어느 순간 우리 앞에 ‘원 모어 띵(One More Thing·하나 더)’을 내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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