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명예회장 별세] 롯데 ‘원톱’ 신동빈 만든 가신 3인방 모였다

2020-01-2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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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각규·소진세·이재혁, 신동빈의 남자들 한자리

신동빈 회장 보좌···고 신격호 명예회장 2011년 '용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9일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부친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빈소에서 분향을 하고 있다. [사진=롯데그룹 제공]


롯데그룹 창업주인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이 지난 19일 오후 4시29분 별세했다.

고 신격호 명예회장 때부터 일하기 시작해 현재 신동빈 회장 대에 이르기까지, 롯데그룹을 재계 5위 반열에 올리는 데 이바지한 가신(家臣) 3인방도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 모였다.
현재 롯데지주 대표인 황각규 부회장(65)과 소진세 전 롯데그룹 사회공헌위원장(70·현 교촌에프엔비 회장), 이재혁 전 롯데그룹 식품 BU 부회장(롯데그룹 고문)이다.

이들 가신 3인방의 존재는 2011년 신동빈 부회장의 ‘회장 승진’ 인사와 함께 부상했다.

고 신격호 명예회장의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1998년 부회장직에 올랐다. 이후 13년 만인 2011년 2월 회장직에 오르면서, 아버지인 신격호 회장이 총괄회장으로 한걸음 물러났다.

재계에서는 비로소 ‘롯데그룹 2세 경영’, ‘신동빈 시대’ 막이 올랐다고 봤다.

고 신 명예회장은 1948년 롯데를 창립해 2015년 이사직에서 해임될 때까지 67년간 한·일 롯데를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그는 아흔이 넘은 고령에도 현해탄을 넘나드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당시 아들을 전격 회장으로 승진시킨 것은, 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당시 재계는 분석했다.

지근거리에서 신동빈 회장을 보필하면서, 이 같은 신격호 회장의 용단을 이끌어 낸 주역이 바로 이들 가신 3인방으로 꼽힌다.
 

황각규 롯데그룹 부회장이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된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빈소에서 고인의 업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전성민 기자 ]


신동빈 회장은 노무라 증권, 일본 롯데 상사 등을 거쳐 19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입사하면서, 한국롯데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당시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은 호남석유화학 부장이었다. 상사와 부하직원으로 만난 이들의 인연은 30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재혁 고문은 롯데칠성음료 관리본부장, 롯데리아 대표이사 등 식음료 계열사에서 활동해왔다. 신동빈 회장을 만나 2008년부터 정책본부로 들어왔다. 최근까지 롯데칠성음료에서 맥주 ‘클라우드’ 시장 안착에 이어 두 번째 신제품 ‘피츠’ 출시를 이끌었다.

소진세 전 사회공헌위원장은 신동빈 회장에게 아버지인 신격호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인 ‘도전정신’을 북돋아 준 사나이다.

2000년대 초반, 롯데그룹 유통사업부는 기존에 집중하는 백화점과 마트에만 집중했다. 이때 신동빈 회장이 슈퍼를 키우겠다고 나섰다. 임원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소진세 전 사회공헌위원장은 신 부회장의 뜻을 지지해 그대로 밀고 나갔다.

롯데슈퍼 점포는 2006년 52개에서 5년 만에 194개로 3배가량 늘었다. 같은 기간 매출은 4000억원대에서 1조500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이날 빈소에서 만난 소진세 전 사회공헌위원장, 현 교촌에프앤비 회장은 “현재도 (황 부회장 등과) 자주 소통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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