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준법감시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는 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 최고 경영진의 법 위반 리스크(위험)를 철저히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미국식 준법감시 제도’와 권력자의 뇌물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방안 등을 요구받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는 비상근 외부 인사로 준법감시위원회를 꾸려 투명 경영을 강화하기로 했다. 위원장에는 김 변호사가 위촉됐다.
김 변호사는 "총수 형사재판에서 유리한 양형 사유로 쓰이는 면피용 위원회가 될 수 있는 점 등을 의식해 위원장직을 몇 차례 거절했다가 자율성과 독립성에 대한 이 부회장의 확약을 직접 받고 수락했다"고 밝혔다. 삼성 경영진에 대한 변화 요구에 문이 열린 상황에서 시도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취지로도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삼성이 변화를 택한 타이밍이 썩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것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김 변호사를 포함해 7명으로 구성된다. 크게 법조와 시민사회, 학계, 회사 등 네 부문으로 나뉜다. 법조계에서는 김 변호사와 대검 차장 출신 봉욱 변호사가 함께 한다. 시민사회에서는 언론인 출신인 권태선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이 선정됐다. 학계에서는 심인숙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김우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경영전문대학원 교수가 뜻을 모았다. 삼성 측에서는 이인용 삼성전자 사회공헌업무 총괄고문이 함께 한다. 김 변호사는 이인용 고문을 포함해 전 위원 내정을 모두 자신이 했다고 밝혔다.
준법감시 대상이 되는 삼성 계열사는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화재 등 7곳이다. 이번에 설치되는 위원회는 이사회 산하기구가 아닌 회사 외부 독립기구다.
위원회는 계열사 이사회나 경영위원회 주요 의결이나 심의사항에 법 위반 위험 요인을 미리 파악하거나 사후 검토한다. 법 위반 사항이 확인될 경우 재발 방지 방안을 마련한다. 법 위반을 예방하고 문제가 생기면 진상 규명과 제재 등 대응 조치를 한다.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한 회복 과정을 거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위원회는 ‘필요한 범위’에서 계열사 준법지원인 등에게 보고, 자료제출과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준법감시 정책과 계획 수립, 감시 프로그램과 체계 개선에 대해 이사회에 직접 권고하거나 의견을 제시한다.
계열사 이사회가 위원회 요구나 권고를 수용하지 않는 경우 사유를 적시해 위원회에 통보한다. 이후 재요구나 재권고도 수용하지 않으면 이를 위원회 누리집에 게시한다.
때에 따라 법 위반 사안도 위원회가 직접 조사한다. 최고경영진의 법 위반 행위는 위원회가 곧바로 신고를 받는 체계가 만들어진다.
이밖에도 후원이나 계열사나 특수관계인 간 내부거래, 협력업체와의 하도급 거래, 일감 몰아주기 등 공정거래 분야나 뇌물수수・부정청탁 등 부패행위, 노조 문제나 승계 문제 법 위반 등이 준법 감시 대상이다.
위원회는 이달 말 7개 계열사가 협약과 위원회 운영규정에 대한 이사회 의결 절차를 마치면 공식 출범한다. 따라서 출범일은 2월 초・중순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위원회 활동 시한은 정해지지 않았다. 이 부회장 재판 이후 위원회가 유명무실 해 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김 변호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지속적으로 운영될 예정”이라며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우려가 있다면 위원회 활동에 대한 감시와 제도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원회 내 회계 전문가 부족 문제에 대해서는 외부 전문가 초빙 가능성을 열어뒀다.
위원회 활동비는 각 계열사가 지급한다.
김 변호사는 “삼성 최고경영진의 진의를 믿고 싶지만, 완전한 확증을 갖고 있지는 않다”며 “대체로 신뢰는 처음부터 존재하기 어렵다. 어렵겠지만 신뢰는 과정 속에서 새롭게 만들고 쌓아나가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측은 "준법감시위원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존중, 글로벌 수준의 준법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도록 이사회 의결 등 필요한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