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하지 마세요. 내가 의장이에요 그래도. 당신이 뽑았잖아!”(문희상 국회의장)
지난해 연말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국면에서 벌어진 설전 중 한 장면이다. 권 의원은 입법부 수장인 문 의장을 ‘문희상씨’로 칭하며 국회 운영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2019년 국회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시작해서 패스트트랙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폭행·감금 등 육탄전과 함께 여야 의원들은 국회선진화법 위반으로 무더기 고소·고발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특히 ‘조국 사태’라는 대형 이슈가 터지면서 대화와 협치는 실종됐다. 이런 가운데 중간 중간 튀어나온 각종 ‘막말 논란’은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이 스스로의 격(格)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조국 사태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은 극심한 국론 분열로 이어졌다. 정치권은 오히려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지지층 결집에 나서며 진영 갈등을 부추겼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 반대를 외치며 지난 8월 광화문으로 뛰쳐나갔다.
이에 맞서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는 조 전 장관 일가를 향한 검찰 수사를 비판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국론 분열은 수치로도 나타났다. 이른바 ‘조국 정국’에서 40~50%까지 치솟았던 무당층의 비율은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20%대로 확 줄었다. 진영 싸움으로 인해 지지층이 결집하면서 무당층이 감소한 것이다.
지난해 19일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가 501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한 결과, ‘임기 끝까지 지지할 것’이라는 응답은 41.1%였고, ‘임기 끝까지 반대할 것’이라는 응답은 26.3%로 나타났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진영대결 극복 방법은 있는데 주체인 정치인들이 극복할 의사가 없으니까 해결이 안 되는 것”이라며 “국회는 국가의 중대사, 민생, 갈등을 조정해서 제도화하지 못하고 반대로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 소장은 “정치 환경이 민주화되고, 그들의 면면이 나아지면 정치권이 성숙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대(代)를 거듭할수록 퇴보하고 있다는 게 국민들의 인식”이라고 꼬집었다.
9월 정기국회는 ‘기-승-전-조국’으로 끝나버렸다. 이어진 국정감사 역시 ‘조국 국정감사’로 마무리됐다. ‘정기국회의 꽃’인 국감이 조 전 장관 일가에 대한 각종 의혹 제기와 폭로의 장(場)으로 변질됐다.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는 한 포럼 강연에서 선거법 개정을 둘러싼 국회의 갈등을 ‘밥그릇 싸움’이라고 비판하며 “대의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못하면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성까지 막을 수 있다”고 우려감을 나타냈다.
정 후보자는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이 되려면 경제 성장, 사회 발전, 환경 보전이라는 3개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려야 한다”면서 “지금처럼 사회가 극심한 갈등을 겪는다면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치 실종 시대’에 해법으로 ‘다당제의 정착’을 꼽았다. ‘정치로 시작된 갈등은 정치로 풀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상당 부분 아쉽지만 선거법이 바뀌면 다당제의 기틀이 마련되기 때문에 건강한 정쟁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면서 “정당과 정당 간의 연대가 일상화될 경우, 지금과 같은 극한과 같은 것이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교수는 “거대 양당의 의석수가 줄어들어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정의당, 바른미래당 등 군소정당의 차별화도 선행돼야 될 것”이라고 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승자독식의 거대 양당제가 지양되고 되고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다당제가 21대 국회에서 정착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엄 소장은 제도적 측면의 접근과 함께 정치인들의 인성과 역량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비례대표 연동율, 석패율 등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제도를 운영하는 정치 지도자의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이지, 상황에 따라 정책과 발언을 뒤집은 구태는 없어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엄 소장은 “촛불 2016년 10월부터 일어난 촛불은 ‘박근혜 탄핵’만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의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작동과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전환을 촉구한 것”이라며 “정치권도 이를 뼈저리게 인식하고 이에 걸맞는 국정운영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