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가 열렸다. 11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개최에 이은 후속조치라 할 수 있다.
이번 회의에서는 신남방정책 추진현황과 중점사업 계획을 비롯해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결과와 후속조치 추진방향, 동남아 진출기업 노무관리와 인권경영 개선방안, 신남방 ODA(공적개발원조) 추진전략 이행계획, 신남방 비즈니스 협력센터 구축계획 방안, 인니 수도이전 사업 추진현황·향후 계획 및 스마트시티 협력 성과 등을 논의했다.
신남방정책은 초기 단계에 있는 만큼 우선은 아세안과의 협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대변혁의 시대는 그 외연이 아프리카 등으로 훨씬 확장될 수 있다.
여기서 최근 선진국들 모임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주목하고 있는 신흥국의 디지털화를 우리도 면밀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디지털기술은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도국·신흥국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예전의 공업화 물결이 동아시아에 밀려왔을 때 아시아 신흥공업국(Asian NIEs) 이라는 개념이 나왔다. 일본 제조업체들은 1985년의 플라자 합의 이후 엔고(엔화가치 상승), 1992년 중국의 대외개방노선 확정과 2001년의 WTO(세계무역기구) 가입이라는 단계를 거치면서 일본으로부터 동남아시아와 중국으로 생산거점을 확장·이전시켰다.
냉전구조의 종결로 경제의 시대를 구가하기 시작한 아시아 국가들도 적극적으로 도약의 기회를 잡았다. 지금 첨예화하는 미·중 마찰을 살펴보면 시대의 무대가 돌아 아시아에 정치와 안전보장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미·중무역마찰은 아직 협상과 조정 단계로 각료급 협의와 각각 국내 정책의 동향을 주시하는 상황이어서 금후의 추세를 전망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미·중마찰의 시대에서 신흥국의 디지털화와 이에 의한 경제·사회·정치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AI(인공지능) 기술이 경제에 주는 영향에 대해서는 이미 폭넓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AI이노베이션과 신흥국의 상황 변화도 가장 각광받고 있는 주제 중의 하나다.
디지털화를 좀더 들여다보자. 선진국뿐 아니라 신흥국에서도 2010년대에는 스마트폰이 보급되어 관련 서비스가 등장했다. 오는 2020년대에 디지털기술이 사회에 적용되어 신흥국 전체를 횡단하여 심화될 경우 어떤 모습이 나타날 것인가. 도쿄대학의 이토 아세이(伊藤亞聖) 교수는 미얀마, 말레이시아, 인도, 에티오피아 등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사례들을 관찰해 ‘디지털 신흥국(Digital Emerging Economies, DEEs) 라는 신개념을 내놓았다.
2018년 시점에서 OECD 가입국의 총인구는 13억명이다. 세계 인구는 76억명이기 때문에 이른바 비(非) 선진국적 환경에서 디지털화를 맞고 있는 사람들은 63억명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거기에는 선진국과는 다른 가능성과 취약성이 병존한다는 것이다. 예전의 공업화시대의 신흥공업국(NIEs)론과 대비하면 디지털 신흥공업국론의 주요한 무대는 아시아에 머물지 않는다. 제조업 공급사슬(서플라이 체인)이 수송비에 의해 제약되고 있는 데 비해 디지털 방식의 분업과 발주는 보다 용이하게 국경을 넘는다. 한편 디지털 경제는 공업화에 비해 고용창출 효과가 한정적이 될 가능성이 있어 경제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아직 불투명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구조 변화는 분명히 찾아온다. 예를 들면 모바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작업의 수주·발주가 행해지는 ‘프리랜서 경제’가 오히려 신흥국에서 좀더 선도적으로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단계적인 경제발전의 중요성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개도국·신흥국에 선진적인 인프라와 서비스가 앞서 도입되는 경우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토 교수는 “먼지가 날리는 B급의 경제 환경에 클라우드 컴퓨팅 같은 S급의 솔루션이 실현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 모습은 미지의 상황이 아니다. 2020년대에는 보편적으로 나타날 모습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AI와 빅테이터 분석을 주업으로 하는 스타트 업 ‘스마트 마인드’의 이상수 대표는 자신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근무했던 싱가포르 공영방송국 ‘미디어 코프’를 예로 들었다. 인구 500만으로 한국의 10분의 1밖에 안되는 싱가포르의 한 방송국 매출이 5조원 이상으로 한국 지상파 방송3사 총 매출의 3배 가까이 되고 있다는 통계다. 이 대표는 “미디어 코프는 5년 이상 전부터 데이터 기반 경영을 천착시켜 디지털화하는 아세안 시장을 잡아챘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한 일본의 전략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일본 벤처기업들과 투자가도 수는 적지만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도 2019년 G20 의 무역·디지털 경제장관회의에서 ‘신뢰있는 데이터 유통’을 하나의 키워드로 설정했고, TICAD(아프리카 개발회의) 의 ‘요코하마 행동계획 2019’에서도 이노베이션을 하나의 협력축으로 세워 디지털 이코노미와 스타트업의 매칭을 강조했다.
일본은 신흥국의 디지털화가 내포하고 있는 찬스 이면에 있는 취약성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그리고 신흥국의 디지털 사회에 대해 폭넓은 정보 수집을 계속하고 있다. 노무라 종합연구소는 보다 본질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공업화 시대에는 공장 내의 정리정돈을 기초로 낭비를 줄이고 효율성을 극한까지 높이는 ‘도요타 생산방식’이 주효했고, 인프라 시대에는 고속철 신간센으로 대표되는 ‘질 높은 인프라’가 일본의 강점이었다. “그렇다면 신흥국 디지털화 시대에 일본이 과시할 솔루션은 있는가”가 노무라의 테마다.
아세안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디지털 벤처기업 ‘에너지 홀딩스’의 박희원 대표는 “제4차 산업혁명으로 문명적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현장을 큰 눈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디지털 신흥국’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여 신남방정책을 훨씬 더 전략적으로 정교하게 수립·추진해야 한다. 한국은 ‘디지털 신흥국’ 시장을 놓고 일본·중국과 치열한 각축전을 벌일 것이 분명하다. 때마침 한·중·일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 ‘디지털 신흥국’이라는 키워드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