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서 스페셜 칼럼] 미.중, 호랑이 그리려다 고양이 그린 무역합의 '속사정'

2019-12-18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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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서 교수]


급조된 느낌이 강한 1단계 합의 도달

2018년 이후 20개월간 끌어오던 미·중 무역전쟁이 1단계 합의에 도달했다. 전 세계 주가가 속등하면서 환영 퍼레이드를 벌였다. 전 세계가 미국과 중국의 화해를 바라는 심정의 표현인 듯하다.
그러나 대국의 싸움은 문서 한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도 장관급 서명으로 끝날 것 같았으면 애초부터 시작도 안 했다. "정치인들은 경제적 이익이 없어도 정치적 이익이 있으면 무조건 실행하고 본다." 지금의 상황에 딱 맞는 말이다. 13차례 회담을 했지만 아무 결론 없다가 회담도 않고 덜렁 사인한다고 하면 뭔가 꿍꿍이속이 있다고 보는 것이 정상이다.

미·중의 합의문을 들여다보면 7개 분야에 합의를 했다고는 하는데, 구체적인 숫자와 타임테이블이 없다. 6하원칙이 모든 문서의 기본이지만 이게 모호하다. 이번 합의의 내용을 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합의문을 들여다보면 한심하다.

애초부터 이 정도를 합의하려고 20개월간 13차례나 무역회담을 하고 2차례의 정상회담을 하는 난리를 쳤나 싶을 정도로 빈약하다. 9장의 챕터를 가진 합의문이라고 하지만 기존의 주장을 모호하게 집대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양국이 확실하게 숫자로 합의한 것은 딱 두 가지이다.

미국은 12월 15일 부과하려고 했던 1100억 달러어치의 일상용품에 대한 보복관세를 원래 10%에서 7.5%로 2.5% 포인트 인하해 주는 것이 골자다. 나머지 상황은 모두 이전과 동일하다. 중국은 향후 2년간 2000억 달러의 수입 확대를 하는데 그중에 미국산 농산물을 320억~500억 달러어치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이번 1단계 합의 과정을 보면서 드는 이상한 점은 세 가지다.

첫째, 합의의 과정이 요상하다. 그간 13차례나 얼굴을 맞대고 치고 받고 했지만 정작 13번 만나서도 합의 못 본 사항을 마주 앉지도 않고 합의했다. 그리고 양국 발표문의 내용이 서로 다르다. 미국은 중국이 동의했다고 하는데, 미국의 발표문에는 중국의 구매금액 등이 나오지만 정작 중국의 발표문에는 구체적인 합의 숫자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둘째, 합의안에 대한 구체적인 일정, 금액이 없을뿐더러 양국의 사인조차 나중에 한다는 식이다. 특히 미국의 중국 제재 해제에 대한 중국의 반대급부인 미국 농산물의 구입액과 타임테이블이 중국 측 발표에는 아예 없다. 그리고 미국 측도 중국의 농산물 구매액이 트럼프는 500억 달러,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 대표는 320억 달러, 래리 커들로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은 400억~500억 달러라고 하는 등 말이 모두 다르다.

셋째, 발표의 격이 너무 떨어진다. 그간 중국은 부총리급이 협상을 13차례나 해놓고 기자회견은 정부부처 실무자급인 차관 6명이 공동기자회견 형식으로 발표했다. 원래 양국의 최고지도자인 트럼프-시진핑이 합의서에 서명하기로 했지만, 1단계 합의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류허 간의 사인으로 격이 떨어졌다. 합의 내용이 대통령이 나설 정도의 의미 있는 내용이 없다는 반증이다.

미·중이 합의에 도달한 속사정 4가지

이번 합의의 과정을 보면 발표의 형식도, 격도, 내용도 모두 함량미달이다. 미·중의 합의문을 들여다보면 뭐 제대로 합의한 것도 없고 일부 관세인하와 농산물구매 맞교환인데, 이것을 대대적인 성과가 있는 것처럼 떠들어대는 것은 다분히 정치적 이유가 있다.

연말과 2020년 신년계획을 앞둔 중국은 경기하강에 맞물린 국민들의 심리안정에 도움이 되고, 미국은 지지율 하락에 고전하는 트럼프의 외교성과 만들기가 서로 맞아떨어진 것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관세부과 취소도 아닌, 일부품목에 대한 쥐꼬리만 한 2.5% 관세인하에도 합의를 한 것은 첫째, 중국은 경기하강에 국민들의 심리안정과 대미 전쟁에서 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성이 있었다. 둘째, 미국의 기술전쟁과 국유기업 개혁요구에 대비할 시간을 벌었다. 셋째, 무역전쟁으로 기업들의 투자심리가 악화되었지만 미·중의 합의로 더 이상 추가악화는 없다는 신호를 주어 기업의 투자심리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넷째, 중국은 2020년에 중국의 '100년의 계획'인 '소강사회 건설 목표 달성'에 미·중 무역전쟁 완화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의 지지율 하락으로 중국보다 좀 더 급했다. 이번 조치로 첫째, 트럼프 탄핵에 대한 물타기 효과를 노릴 수 있다. 둘째, 트럼프의 표밭인 농업지역 지지율 하락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 셋째, 경기하강이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확전이 경기 악화로 이어질 수 있어 이를 피할 필요가 있었다. 넷째, 12월 15일 보복관세 대상 1100억 달러어치 제품은 생필품이 대부분이라서 관세부과가 소비자의 가격인상으로 전가되면 표가 날아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중 전쟁, 내년 1단계합의 사인 후에 진검승부 나온다!

양국 모두 번역과 법률 검토에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합의문 서명은 2020년 1월에 류허 부총리가 워싱턴을 방문해 합의문에 사인하고 1단계 협상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초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의 표밭인 농업지역 선거구에 가서 사인하는 계획이 장관급으로 전락했다. 그래서 이번 합의는 미국이 호랑이 그린다고 난리치다 시간에 쫓겨 고양이를 그리는 데 그친 셈이다.

그러나 미국이 이대로 물러설까? 그럴 가능성 없다. 누가 봐도 만족할 만한 합의가 아닌데, 이걸 들고 대선에 임하면 트럼프는 상대방에 공격당하고 표 잃기 딱 좋다. 그래서 미·중의 2단계 협상은 1단계와는 차원이 다르다. 2단계 협상의 핵심은 정부 보조금 문제와 디지털 경제 문제다. 전자는 중국의 체제와 관계 있는 것이고, 디지털 경제는 4차산업혁명과 금융패권에 관련된 문제다. 양국 모두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고 여기서 양국 간의 진검승부가 벌어질 판이다.

1단계 합의로 증시는 환호했지만, 개 피하려고 산으로 갔더니 늑대가 기다리는 형국이다. 급조된 1단계 합의에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너무 이르다. 이제 겨우 1단계 무역전쟁이 끝났지만 기술전쟁, 금융전쟁은 제대로 시작도 안 했다. 그래서 미·중의 전쟁은 좀더 신중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고 돌발변수에 항상 긴장할 필요가 있다. 무역전쟁에서조차 트럼프가 보복관세 카드를 철폐한 것이 아니고 중국이 뻣뻣하게 나오면 언제든 다시 부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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