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도 일부 보수언론과 야당은 국회의장 이력을 문제 삼고 있다. 민주주의 원리인 삼권분립 원칙에 맞지 않다고 한다. 또 격에 어긋난다고 한다. 그러면서 ‘부끄러움을 잃은 나라’ ‘국무총리 후보는 촌극’이라며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진정성 있는 비판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위기상황을 만든 책임에서 그들도 자유롭지 않다. 정부가 하는 일이라면 덮어놓고 비판하는 연장선상에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대내외 여건은 ‘전례’와 ‘격’을 따질 만큼 한가롭지 않다. 엄중한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
총리는 영광보다는 위험이 뒤따르는 자리다. 너무 앞서도 안 되고, 뒤처져서도 안 된다. 앞서면 시기와 모함이, 뒤처지면 혹독한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책임총리가 결국은 대독총리, 방탄총리, 허수아비총리로 끝나는 이유다. 대통령 중심제 아래서 2인자로서 한계다. 정 전 의장이 고민하는 지점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다. ‘정세균 카드’를 희망하는 정도에 따라 책임총리도 논의될 것이다. 정 전 의장도 부여된 소명에 부응하는 것을 마다할 도리가 없다.
헌신은 책임 있는 정치인에게 책무다. 개인을 떠나야 한다. 다소 회복됐지만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중도층은 대통령과 민주당에게 등을 돌렸다. 아직도 40% 상당은 밖에서 서성이고 있다. 대통령이 입법부 수장을 총리로 고려했다면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청와대와 민주당 내 친문 세력들도 대통령과 상황인식을 같이할 필요가 있다.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캠프 출신’, ‘자기 사람’을 떠나 힘을 모으는 것이다. 실질적인 책임총리 구현에 머리를 맞대는 게 그 첫걸음이다.
황희 정승은 명재상으로 회자된다. 그는 고려 유신으로 새 왕조에 출사했다. 재상에 발탁된 때는 69세다. 양녕대군을 왕으로 밀었기에 세종에게는 정적이다. 하지만 정치적 입장을 떠나 세종은 황희를 발탁, 18년 동안 정승 자리를 맡겼다. 최장수 재상이다. 사실 황희는 약점이 많았다. 갖은 구설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 결과 황희는 세종을 도와 찬란한 시대를 열었다. 만약 세종이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황희를 발탁하지 않았거나,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몽골제국 기틀을 다진 야율초재도 마찬가지다. 몽골은 역사상 가장 많은 땅을 차지했다. 칭기즈칸은 금나라 관리였던 야율초재를 발탁해 힘을 실어줬다. 몽골 귀족과 장군들이 시기하고 모함한 것은 당연했다. 칭기즈칸은 그럴수록 신임했다. 야율초재는 “천하는 말 위에서 얻을 수 있으나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말 위에서 할 수 없다”며 제도 정비를 역설했다. 이에 힘입어 미개했던 몽골은 법과 정치, 경제제도를 정비해 비로소 제국으로 등극했다. 발탁과 무한한 신뢰가 몽골제국을 만들었다.
정 전 의장은 관료 출신도, 학자도 아니다. 그는 대기업 임원,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냈다. 그래서 실물경제에 대한 이해가 밝다. 민주당에서 손꼽히는 ‘경제통’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낙점한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관료나 학자들은 이론에 밝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현장이 우선되어야 한다. 정 전 의장이 총리를 맡게 된다면 현장 중심 경제정책에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글로벌 보호무역 강화, 인구 절벽 등 난제가 많다. 길이 있다면 역량 있는 인물 발탁과 현장이다.
반환점을 돈 문재인 정부 현실은 녹록지 않다. 야당 실책만 기대하고 있기에는 너무 안일하다. 문재인 정부는 정의와 공정을 바라는 촛불시민들이 세웠다. 소망에 부응하는 길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이와 함께 먹고사는 문제, 즉 경제 문제 해결이 길이다. 정 전 의장은 ‘친문’이 아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삼고초려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누가 구원 투수로서 적합한지다. 게다가 정 전 의장은 여야를 넘나드는 뛰어난 친화력을 갖추고 있다. 얼어붙은 국면을 전환하는 데 그만 한 인물은 없다.
박항서와 히딩크 감독은 영웅이다. 그들은 변방에 머물렀던 한국과 베트남 축구를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박항서와 히딩크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경직된 틀에서 벗어났다. 모두가 “기술력이 부족하다”고 할 때 체력 보강으로 눈을 돌렸다. 또 권위주의 문화도 바꿨다. 이렇게 체력을 다지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자 한국과 베트남 축구는 비약적으로 도약했다. ‘정세균 카드’를 대하는 우리 정치권도 경직된 틀을 바꿔야 한다. ‘서열’과 ‘격’은 권위주의 산물이다. 덩샤오핑은 쥐를 잡는 데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정세균 카드’가 또 하나 전례를 만들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