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 속에 노화억제 인자 있다..젊은 피 수혈하면 회춘

2019-12-15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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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의 100투더퓨처 (16)

[박상철 교수]



<100 to the future> 필자 박상철 교수 =이제 120세 시대로 나아가는 지금. 노화(老化)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박상철 교수의 ‘100 to the future(백, 투더퓨처)’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박 교수는 서울대 의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30년간 서울대 의대 생화학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노화세포사멸연구센터와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을 역임했고, 현재 전남대 연구석좌교수로 활동 중입니다. 노화 분야 국제학술지 ‘노화의 원리’에서 동양인 최초 편집인을 지냈고 국제 백세인연구단 의장, 국제노화학회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노화 연구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노화이론을 세운 그의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지에 소개됐습니다.

<100 to the future>는 100세까지 보편적으로 사는 미래에 대비하자는 의미로, 영화 '백투더퓨처'의 미래 귀환 뉘앙스를 차용한 시리즈 제목입니다. 이제 우리는 100세 시대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앞당겨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필자는 그 길어진 삶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건강하고 풍요로운 내일에 대해 실감나게 짚어나갈 계획입니다.<편집자주>

신화 속의 하이브리드 판타지와 병체결합


인간이 신화시대부터 가져온 기발한 착상에는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영생의 존재인 신과의 결합을 통하여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인 시간적 한계를 초월한 반인반신(半人半神)의 존재가 되기를 염원하면서 수명연장이라는 욕망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욕망은 판타지 세계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구체화하기 위한 외과적 술기인 병체결합술이 등장하면서 현실로 부각되었고 인간의 수명연장 분야가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는 전기를 맞고 있다.

인간의 수명은 불가항력적이라고 인정했던 시절에도 이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사례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한다. 아르고 원정대를 조직하여 영웅들을 이끌고 보물인 황금양털을 찾아 돌아온 이아손이 당사자이다. 부친 아에손은 테살리의 왕이었지만 사촌인 펠리아에게 나라를 뺏기고 가족이 모두 풍비박산되었다. 성인이 되어 자신의 위치 회복을 주장하자 황금양털을 찾아와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이아손은 우여곡절 끝에 메데아의 도움을 받아 황금양털을 찾아 온다. 부친인 아에손을 만났는데 노쇠해 있는 것을 보고 낙담하여 마법 능력이 있는 아내 메데아에게 부친을 젊게 해주기를 부탁하였다. 자신의 혈액을 활용하여 젊음을 부친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을 늙게 해도 좋다고 부탁하였다. 메데아가 아에손의 혈액을 모두 뽑아내 단지 속에 넣고 마법의 약초를 정맥으로 투입하여 살아나서 젊게 하였다. 부친을 향한 효성, 혈액 치환에 의한 회춘, 그리고 술법에 의한 복수 등의 사연이 한꺼번에 집약된 이야기이며, 특히 혈액치환에 의한 회춘 방법을 최초로 소개한 신화라는 점이 흥미롭다. 수명을 연장하려면 으레 불로초를 연상하던 시절 새로운 술법(technology)으로 수명을 연장하고 회춘하게 할 수 있다는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메데아가 시술한 방법인 혈액 치환의 원리는 혈액 내에 늙음을 주도하는 독을 제거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혈액이 바로 생명의 본질이라고 믿었으며, 단순한 위생보건 개념을 넘어선 상징성을 혈액에 부여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혈액은 생명의 본질로 중요한 인자가 모두 들어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혈액 내 구성 성분의 보완과 혈액을 교체할 수 있는 병체결합이라는 외과적 술기가 개발되면서 인간의 불로장생 추구의 염원에도 획기적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병생(竝生)이란 의미의 파라바이오시스(parabiosis)의 어원은 옆, 곁, 다른 이라는 뜻의 파라(para)와 생명을 뜻하는 비오스(bios)에서 왔다. 오거스트 포렐이 공생(symbiosis)에 대립하여 제안한 용어이다. 살아 있는 서로 다른 두 개체를 외과적 방법으로 연계시켜 공동의 생리시스템인 혈액순환계를 공유하도록 하는 술기로서 혈액의 공유와 교체를 의미한다. 독립된 개체상태를 유지하면서 상호 협력을 통하여 생존을 영위하는 공생과는 차별화되는 개념이다. 최초의 동물실험은 폴 베르에 의하여 19세기 중반에 실시되었다. 쥐를 비롯하여 나비, 개미 등의 곤충이나 히드라 및 어류를 대상으로 몸통만 있는 성체를 다른 개체에 연결하여 생리효과를 테스트하는 방법을 개발하였다. 서로 다른 두 개체의 복강이나 피부를 연결하여 서로의 혈액이 공통으로 순환하게 하는 것으로, 개체의 혈액에 염료를 주입하여 상대방 개체에 흘러 들어감을 확인함으로써 입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술기는 서로 다른 개체 간의 면역거부반응 때문에 발전할 수 없었으나 계대사육에 의한 순계 개념이 정립된 이후 면역문제가 해결되면서 발전하였다. 대사연구팀들은 시상하부 일정부위를 손상시킨 쥐와 정상 쥐를 병체 결합시켜 개체 간의 식욕과 비만 정도를 비교한 결과 뇌손상 쥐가 과식을 하고 비만에 이른 반면 그렇지 않은 쥐는 수척해지면서 음식을 거부하는 현상을 관찰하여 시상하부의 음식제어중추를 찾게 되었고 식욕조절인자가 두 개체에 순환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를 통하여 식욕 결정인자인 렙틴을 발견하고 당뇨병을 비롯한 대사성질환 연구뿐 아니라 암 전이 실험 및 치매, 관절염 등 퇴행성 질환 연구에도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노화 개체에서 신경교세포인 희소돌기아교세포의 숫자가 줄어들어 수초형성이 저하되는 현상에 유의하여 젊은 쥐와의 병체결합으로 신경기능을 개선할 수 있는 현상도 발견되었다. 그러나 동물애호가들의 반대로 이러한 실험이 한동안 기피되었는데, 이 분야 연구가 급진전을 이룬 것은 병체결합에 의한 노화제어효과가 발표되면서이다.

줄기세포 연구팀은 젊은 쥐와 늙은 쥐를 병체결합하여 늙은 쥐의 수명이 연장되고 젊어져 보인다는 실험결과를 발표하였다. 늙은 쥐의 간, 근육, 심장, 심지어 뇌까지 젊어질 수 있음을 확인하였고, 그 효과의 결정요인은 병체결합체 간에 순환하는 혈액인자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젊은 쥐의 혈액에 있는 순환인자가 늙은 쥐의 성체줄기세포들을 직접 활성화하여 노화를 제어한다고 부연 설명하였다. 늙은 쥐를 젊게 할 수 있는 노화제어인자가 혈액 내에 존재하고 있다는 가설은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비가역적이고 불가피하다는 기존의 숙명적인 노화개념 자체를 뒤집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노화를 제어할 수 있는 어떤 물질이나 인자가 혈액을 통하여 병체결합 개체 간에 순환하여 효력을 미칠 것이라는 착상은 혈액순환인자의 규명을 서두르게 하였다. 단순히 혈액을 주입하지 않고도 혈액의 액체성분인 혈장만 주입해도 그 효과가 있다는 추가적인 실험결과는 유용성분의 존재를 추정하였다. 젊은 쥐 혈액에는 없거나 적지만 늙은 쥐의 혈액 내에는 많은 인자, 반대로 늙은 쥐 혈액 내에는 적지만 젊은 쥐 혈액 내에는 많은 인자들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효능 검사를 추진하였다. 대표적으로 GDF11과 옥시토신 등이 회춘인자로 거론되었고, 반면 베타2미크로글로불린은 노화유지인자로 규명되었다. 이후 늙은 쥐의 혈액에는 노화상태를 유지하는 인자가 있고, 반대로 젊은 쥐에는 젊음을 유지해주는 인자가 있으며 병체결합으로 상대방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결과가 연이어 보고되었다. 아직 연구결과의 효과에 대한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노화 제어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은 분명하다.

시간을 초월하여 살고자 하는 인간의 염원으로 시작된 하이브리드 판타지가 결국 병체결합이라는 술기를 창출하였고 이 방법에서 제시된 혈액 교체를 토대로 궁극적으로 불로장생의 꿈을 이루는 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의 불로장생 판타지가 구체적으로 과학화되는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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