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to the future> 필자 박상철 교수 =이제 120세 시대로 나아가는 지금. 노화(老化)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박상철 교수의 ‘100 to the future(백, 투더퓨처)’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박 교수는 서울대 의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30년간 서울대 의대 생화학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노화세포사멸연구센터와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을 역임했고, 현재 전남대 연구석좌교수로 활동 중입니다. 노화 분야 국제학술지 ‘노화의 원리’에서 동양인 최초 편집인을 지냈고 국제 백세인연구단 의장, 국제노화학회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노화 연구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노화이론을 세운 그의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지에 소개됐습니다.
<100 to the future>는 100세까지 보편적으로 사는 미래에 대비하자는 의미로 영화 '백투더퓨처'의 미래 귀환 뉘앙스를 차용한 시리즈 제목입니다. 이제 우리는 100세 시대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앞당겨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필자는 그 길어진 삶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건강하고 풍요로운 내일에 대해 실감나게 짚어나갈 계획입니다.<편집자주>
새로운 밀레니엄과 신연금술의 부활 예고
서양의 연금술 발전과정에 중요한 개념은 현자의 돌이라는 물질과 마그눔 오푸스로 통칭되는 현자의 돌을 찾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제1질료 근원물질의 규명에 있다. 이러한 연금술의 목표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비금속의 귀금속 전환, 영생불멸의 영약 조제, 만병통치의 약제 제조, 절대 용해력을 가진 만능용해제 개발이었다. 이에 덧붙여 종교가 개입하면서 궁극적으로 영육이 완전한 무구지순의 인간생명을 창조하는 엄청난 도전을 다섯번째 목표로 설정하였다.
현자의 돌은 모든 목표를 달성하도록 이끌 수 있는 신비적인 물질이다. 그러나 현자의 돌이라는 개념은 서양 연금술만의 독점물은 아니었다. 다른 문화권인 중국과 인도에도 유사한 개념이 있었다. 힌두교의 소원성취 보석인 진타마니는 중생의 모든 질병을 해결해주고 삶의 고통을 모두 덜어줄 수 있어 현자의 돌에 버금간다. 불교의 관세음보살이 손에 쥐고 있는, 모든 것을 뜻대로 변환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여의보주 또는 용이 입에 물고 있는 여의주가 바로 같은 개념이다. 기독교 신앙에서도 하늘의 영광을 의미하는 흰돌(白石)이나 신비석 등이 해당한다. 이 돌을 가지고 귀금속을 만들 뿐 아니라, 그 돌의 가루를 조금이라도 섭취하면 어떠한 병도 치유할 수 있으며, 영원히 꺼지지 않는 등불을 이루고, 죽은 식물도 살리고, 지순한 생명체도 창조해 낼 수 있다고 믿었다. 현자의 돌은 마법사의 돌, 철학자의 돌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었으며, 단순한 연금술에 그친 것이 아니라 중세 서양인들의 사상과 생활상 전 분야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문학작품의 모티프가 되어 다양한 판타지를 가능하게 하며, 해리포터 연작물이나 반지의 제왕 같은 작품에도 등장하고 있다. 연금술의 생명 연장, 불로불사의 판타지 허상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에 이르러서도 인간의 염원에 여전히 남아 있다.
서양 사상의 근저에는 삼위일체의 원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연금술의 3원리도 수은, 황, 소금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원리는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공통언어로서 상호작용과 양적 조율을 통하여 우주의 진리를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연금술 3원리는 물질의 원천인 4원소(물, 불, 공기, 흙) 중 각각 두 가지가 균형을 이뤄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황 원리의 본질은 공기와 불의 조화이기에 움직일 수 있고, 뚫고 들어갈 수 있으며, 뜨겁고 퍼지는 속성을 갖는다. 실제 화학물질 유황이 지닌 냄새가 강하고 주변으로 침투해 들어가며 쉽게 불타고 뜨거운 열기를 내는 성상과 유사하다. 황 원리는 마음을 반영하며 인간 존재의 진정한 본질이며 생명력이고 의식의 불꽃이다. 공기와의 연계성은 마음이 신체에만 머무르지 않고 신체를 벗어나 우주에 투영되고 꿈을 꾸며 환상의 여행을 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았다. 수은 원리의 본질은 물과 공기이기에 휘발성과 고정성의 속성을 갖는다. 로마 신화에서 머큐리는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위아래로 지속적으로 연결시키는 존재이다. 화학물질 수은은 액체상의 금속으로 움직일 수 있으며 변화하기 쉬우며 쉽게 휘발될 수 있어 기체, 액체, 고체상을 용이하고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특성을 가져 신화의 전령과 같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에 있어서는 영혼을 상징하며, 활력을 주는 생명력으로 이를 통해 마음이 몸에 정착할 수 있다고 믿었다. 소금 원리의 본질은 물과 흙으로 결정화를 통하여 표출되며 그 과정에서 황과 수은 원리들이 서로 다른 다양한 밀도로 결합된다. 인간에 있어서 소금은 신체를 상징하며 이 틀 속에 매우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수은과 황의 원리가 깃들어 인간을 이룬다. 이렇게 구성된 몸은 마음과 영혼을 깃들게 하여 머무르게 하는 대우주 속의 소우주인 신비하고 아름다운 존재라고 보았다. 이와 같이 연금술은 철학적 논리를 확보하면서 학계, 종교계 그리고 일반인에게 깊숙이 천년 넘게 파고들었다.
초기 연금술사였던 조시모스는 연금술의 목표가 인간 영혼의 종교적 재생을 상징한다고 하였으며, 이 개념은 중세를 지나면서 심화되었다. 종교개혁자인 마르틴 루터도 연금술이 기독교와 부합된다고 주장하였으며, 연금술의 성과를 통하여 종교적 숙제도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발전하였다. 그에 맞추어 연금술사들은 화학적 실험을 열심히 하였고, 자신들의 논리를 바탕으로 우주의 다양한 현상에 대한 실험과 관찰을 지속하였다. 연금술이 추구하는 목표는 황금, 현자의 돌, 생명수, 만병통치약 등의 물질적 존재의 구현과 함께 현자의 자식, 무구지순의 인간과 인공생명체의 창출과 완벽한 인격적 존재의 구현으로 발전하였다. 연금술의 전개과정에서 자연계 변환의 근거는 순수 질료인 근원물질이 인간을 통하여 형상화되면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기독교가 개입하면서 종교적 해석, 화학적 발견, 심리학적 분석이 서로 복합되어 보다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체계로 발전하였다. 물질변환이라는 근거가 희박한 근원적 오류에도 불구하고 연금술은 과거 무지의 소산으로 현대에는 무의미한 작업으로만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실증위주 과학논리의 현대사회에서도 아직 그 영향을 깊숙이 미치고 있다. 정신과 물질의 통합을 요구하는 새로운 문화가 창출되는 과정에, 연금술에서 거론되고 발전된 개념들이 유사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스위스의 분석심리학자인 칼 융은 연금술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시도하였다. 연금술 문헌에 나오는 수많은 상징적 표현들과 정신병 환자의 꿈속에 나타나고 있는 상징적 이미지 간의 연관성을 발견하고, 연금술 역시 '집단 무의식'의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연금술이 추구하였던 원래의 목표는 비록 허상으로 규명되었지만 상징적 측면에서 연금술의 여파는 아직도 주변에 여전히 남아 다양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더욱 상징적 의미만이 아니라 실제적인 면에서도 인류가 신화시대부터 가져온 절대 염원인 불로장생 추구를 포기하지 못하는 한 연금술의 레거시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객관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하는 과학적 논리의 시대에도 불로초와 불로장생술 및 불로촌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21세기 들어 맞이한 새로운 밀레니엄에서 차원이 다르게 구체화되면서 뜨겁게 부활하고 있으며, 인간은 새로운 연금술(Magnum Opus 2.0)의 도래를 학수고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