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to the future> 필자 박상철 교수 =이제 120세 시대로 나아가는 지금. 노화(老化)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박상철 교수의 ‘100 to the future(백, 투더퓨처)’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박 교수는 서울대 의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30년간 서울대 의대 생화학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과기부 노화세포사멸연구센터와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을 역임했고, 현재 전남대 연구석좌교수로 활동 중입니다. 노화 분야 국제학술지 ‘노화의 원리’에서 동양인 최초 편집인을 지냈고 국제 백세인연구단 의장, 국제노화학회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노화 연구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노화이론을 세운 그의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지에 소개됐습니다.
<100 to the future>는 100세까지 보편적으로 사는 미래에 대비하자는 의미로 영화 '백투더퓨처'의 미래 귀환 뉘앙스를 차용한 시리즈 제목입니다. 이제 우리는 100세 시대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앞당겨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필자는 그 길어진 삶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건강하고 풍요로운 내일에 대해 실감나게 짚어나갈 계획입니다.<편집자주>
불로촌 추구가 인류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서구사회가 과학화되고 문명화되면서도 불로장생을 희구하는 염원은 예나 제나 차이가 없다. 대항해 시대에 이르러 전 지구적 탐험이 이루어지면서 서양의 주 종교인 기독신앙과 맞물려 영생의 성배나 불로의 생명수를 찾으려는 욕망을 제왕들이 앞장서서 경쟁적으로 표출하였다.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분명히 어딘가에 불사의 땅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이었다. 그리스신화의 헤스페리데스 정원이 서쪽 어딘가에 있고, 플라톤이 말한 아틀란티스가 지브롤터 너머 대서양에 있다는 전설은 서쪽으로의 대항해를 떠나게 하는 중대한 계기를 이루었다.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에서 비롯된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바스코 다가마의 아프리카 개발, 마젤란의 세계 일주 등이 알려지면서 서구인들에게 미지의 황금과 불로장생지역의 존재는 극히 현실적으로 기대하게 하였으며 대양시대 탐험의 모티브가 되었다. 또한 중남미 개척에서는 불로촌인 비미니를 찾으려는 욕망이, 그리고 미국의 서부개척에서는 황금의 땅 엘도라도를 찾으려는 욕망이 겹쳐져 아메리카대륙의 탐험도 강력하게 추진되었다.
그러나 불로촌을 찾아 새로운 지역을 개척하고 탐험하려는 욕구는 서양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중국 진시황의 삼신산 탐구와 불로초 확보 노력만이 아니라, 한무제의 강력한 서역 경영도 서왕모의 요지를 찾아 불로초인 반도를 구하려는 욕구가 깊게 깔려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동양에서는 불로촌을 찾으려는 욕구의 구현 방향이 달라졌다. 동양권에서는 망망무제의 대양보다 첩첩산중의 심산유곡에 불로촌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에 공간적인 측면에서 서양권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20세기 초 티베트를 탐험하던 힐튼은 샹그릴라의 원형이 된 전설의 낙원인 샴발라의 존재를 발견하고 ‘잃어버린 지평선’이라는 소설을 발표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샴발라는 티베트 전설에서 내륙에 있다고 전해져 온 가공의 왕국으로 순수한 불교의 땅으로 인식되어 있었는데, 이에 대응하는 국가가 구게 왕국의 형태로 700여년간 유지되었으며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곳이었음이 확인된 것이다. 더욱 그 지역에는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티베트 토착종교에 모두 공동으로 성스러운 산인 카일라스(須彌山)가 있으며, 티베트인은 이곳을 강린포체라고 부르고 이 산을 한 바퀴 돌면 윤회의 고리를 벗어나 해탈한다고 믿었다. 더욱이 산 아래 마나사로바 호수물은 성수로서 이 물에 목욕재계하면 모든 업보가 씻어지고 심신이 정화된다고 믿었다. 이와 같이 신화와 역사적 사실이 어우러진 불로장생 낙토의 꿈을 구현하려는 방법론에서 동서양 간에 차이가 있었지만 서양이나 동양에서 불로촌에 대한 환상은 근세까지 지속되어왔다.
하지만 불로장생을 위한 특별한 공간인 불로촌을 확보하려는 염원을 동양권에서는 서양의 대항해를 통한 확대적 공간 개척이라는 개념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사람이 사는 거주공간에 대하여 음양오행의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여 죽은 자가 사는 음택과 산 자가 사는 양택의 개념이 도입되었다. 이는 풍수사상으로 발전하여 중국, 우리나라, 일본 등의 동양권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풍수는 ‘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다’는 뜻인 장풍득수(藏風得水)를 줄인 말이다. 생명을 불어넣는 지기를 살핀다는 개념으로 산의 모양과 산세, 땅의 모양과 지세, 물의 흐름과 수세를 판단하여 인간의 길흉화복에 연결시켜 자연의 영향을 받으며 생활하는 인간의 본질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풍수의 원류는 중국 고대 복희씨 때의 황하수에서 나왔다는 하도(河圖)와 하우씨시대 낙수에서 나왔다는 낙서(洛書)에 있으며, 음양오행이론이 추가되어 도참과 더불어 상보적으로 가미되어 발전하였다.
우리나라 경우에는 도선국사의 음양지리설과 풍수상지법이 고려, 조선을 통하여 크게 영향을 주었다. 지리는 쇠왕과 순역이 있으므로 왕처와 순처를 택하여 거주할 것과, 쇠처와 역처는 인위적으로 비보할 것을 가르친 비기도참서를 전하고 있다. 후일 정감록이 등장하면서 십승지지라는 신비로운 거주공간이 제안되었고, 그곳은 신이 거처하거나 강림하는 신성한 곳으로 굶주림이나 전쟁 염려가 없고, 재앙이나 질병이 침범하지 못하는 피난처이며 자손이 창성하는 곳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개념들은 후일 민간신앙의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풍수사상이 동양권에 미친 영향은 불로장생을 달성하기 위하여 굳이 먼 바다나 깊은 산속을 헤맬 필요가 없이 현재 살고 있는 곳을 중심으로 얼마든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게 하였다. 이에 덧붙여 동양권에 보급된 불교의 미륵신앙은 전래 초기부터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민중에게 주었다. 부처님 적멸 후 56억7000만년 뒤에 미륵불이 도솔천에서 세상에 내려와 민중을 구원하여 이상향인 용화세계를 이룬다는 사상이 특히 국가의 위기 때마다 부상하였다. 한말의 시기에 불교에서 파급된 동학·증산교·원불교 등이 이러한 사상을 민중에게 전달하여, 참고 기다리면 결국 미래의 이상향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게 하였다.
서양에서는 공간 확대적으로 불로촌을 개척한 반면, 동양에서는 공간 제한적인 사고를 가져오게 하였으며, 결국 근세에 이르러 동양이 서양에 뒤처지는 결정적 계기를 이루었다. 풍수사상에서 거론되는, 죽은 자가 가는 음택 또는 산 자가 살아야 하는 양택은 바로 주변의 산하에서 찾을 수 있는 곳이며, 미륵신앙과 같이 수십억년 뒤의 미래를 기약하도록 한 사상은 당장의 구체적 노력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지 않게 하였다. 따라서 동양권에서는 이상향을 찾기 위해 굳이 탐험과 항해를 서둘러야 할 필요가 처절하지 못하였다. 더욱 신비주의, 비밀주의로 무장한 방사들이 불로초를 외부에서 어렵게 구하지 못하더라도 얼마든지 인위적으로 조제할 수 있다고 허풍을 쳐서 굳이 해외탐험이나 영토확보 개척의 필요성을 갖지 못하게 하였다. 결과적으로 현대를 이루고 있는 동서양의 세계사적인 차이도 인간의 염원인 불로장생을 추구하려는 꿈을 실현하는 방법론의 차이에서 비롯되었고, 후세에 동서양의 발전에 엄중한 격차를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