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기업은 생물, 숨 쉴 돌파구 마련해줘야

2019-11-06 19:11
  • 글자크기 설정

[임재천 아주경제 산업부국장]

경제가 어렵다는 말이 일상화되고 있다. 지난 30~40년 고도성장을 일궈 온 우리 국민들에게는 귀에 거슬리는 얘기다. 자존심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우리나라 국민 특성상 강한 저항으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오기가 생겨야 한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동력을 상실한 듯하다. '경제 상황'과 관련해 나라 전체에 무기력증과 피로도가 높아진 탓이다.

우리나라는 무역 의존도가 높은 나라다. 수출로 성장해 왔다는 뜻이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철강 등 단기간에 글로벌 에이스로 우뚝 섰다. 빠른 속도만큼 열매도 달콤했다. 국가 위상과 국민들의 자존감 역시 높아졌다. 하지만 이런 자신감에 서서히 생채기가 나고 있다.

당장 수출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반도체가 망가졌다. SK하이닉스의 3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93%나 하락했다. 작년에 100만원이 주머니에 들어왔다면 올해는 7만원에 그쳤다는 뜻이다. 상상하기 싫은 수치다. 상황이 좀 나은 편이라는 삼성전자도 다르지 않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이 10.3%나 줄었다. 지난해가 반도체 초호황기였다는 점을 감안해도 불쾌한 숫자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현대‧기아차를 제외한 모든 업체들이 낭떠러지에 서 있다. 나름대로 선방했다는 현대‧기아차도 판매가 늘어난 게 아니다. 환율과 비용 축소 덕분이다.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의미다.

철강 역시 미래가 불투명하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실적이 급락했고, 당장 내년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항공업의 추락은 정치·외교적 이유로 다른 산업의 쇠락과는 결이 다르지만 계절적 수요로도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경제를 떠받치고 있던 주요 산업들이 무너지는 중이다. 가장 큰 문제는 사회 구성원 전체가 정확한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가 어렵다는 말만 하지, 구체적으로 어느 분야가 어떻게 가라앉는지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위정자들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대안이 있었다. 산업이 어려워지면 금융으로 어느 정도 만회가 됐다. 경기가 침체되면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어 활력을 되살리면 됐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풀었던 돈이 역풍으로 다가오는 상황이다. 제조업의 붕괴를 통화정책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다. 전통의 경제학 이론이 먹히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 지도 꽤 오래다.

그래서 꺼내든 것이 바로 현 정부의 '재정' 정책이다. 곳간에 쌓아둔 돈을 풀어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이다. 앞선 정부에서 비축해 놓은 돈을 써 경기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아픔이 따른다. 쌓아 놓은 재정을 지금 써 버리면 미래 세대가 다시 만들어야 하는데 그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재정만으로는 근본적인 위기를 극복할 수도 없다.

산업, 통화, 재정정책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만 겪는 특수 상황은 아니다. 전 세계가 공통으로 겪고 있는 어려움이지만 무역으로 성장한 우리가 조금 더 심할 뿐이다.

분배와 복지, 성장을 논하지만 결국 해답은 '기업'이 될 수밖에 없다. 기축통화가 아닌 이상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원화가 달러보다 우위를 점하기 어렵고, 나라 곳간 역시 갈수록 쪼그라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공황 이후 기업을 중심으로 전 세계 질서가 유지됐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단지 차이점이라면, 앞으로 각국의 기업이 3·4·5차 산업의 어디쯤에 서 있을 것이냐의 문제다. 우리 기업들을 어디에 서 있게 할 것이냐가 당면 과제인 셈이다.

기업은 생물이다. 운신할 수 있는 폭(자율성)만 넓혀 주면 무한 팽창이 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로의 변곡점에 서 있는 지금이 특히 그렇다. 변화를 선택하든 그러지 않든, 결정은 기업의 몫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타다 사태'를 겪은 이후에는 반드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자율성 못지않게 투자 환경을 조성하는 분위기도 중요하다. 온갖 족쇄로 기업과 경영자들을 옭아매서는 미래에 대한 활발한 투자를 기대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투자는 섬세하면서도 리스크가 크기에 경영자의 굳은 결심이 필요하다. 기업과 경영자들의 기(氣)도 살려줘야 한다는 뜻이다. 과거에 대한 시시비비는 가려야겠지만 이로 인해 미래를 놓치는 우를 되풀이하면 안 된다.

경영 외적인 요인도 최소화해야 한다. 한‧일 무역 분쟁처럼 굳이 겪지 않아도 될 경험을 더 이상 제공하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위정자들의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검려지기(黔驢之技)란 말이 있다. 검주에 사는 당나귀의 재주란 뜻으로 보잘 것 없는 기량을 들켜 비웃음을 산다는 말이다. 세상을 바꿀 재주가 있다며 거대담론만 논하는 현 정부가 가장 중요한 '먹고사는 문제'를 등한시했다가는 훗날 '보잘 것 없는 기량'이었다며 비웃음만 살 것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