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은 ‘3’이라는 숫자를 편애(偏愛)한다. 그래서 세 가지 단어를 하나로 묶어 표현하는 습관이 있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SKY’라 부르고, 최근 한·일관계 악화로 주목받은 소재‧부품‧장비를 ‘소부장’으로 줄여 쓴다. 어떤 분야의 순위를 따질 땐 ‘빅3’라고 한다. 결은 다르지만 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스포츠경기에서도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까지만 기억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3’이라는 숫자를 불길한 징조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독과점을 싫어하고 자유경쟁을 신봉하는 경쟁정책 당국자들이다.
한국으로 눈을 돌려보면, 백화점은 롯데‧신세계‧현대, 대형마트는 롯데‧이마트‧홈플러스가 빅3를 형성하고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게임사도 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가 ‘3N'이라 불리며 빅3로 군림했다. 이 밖에도 빅3 체제가 형성된 업종은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눈여겨봐야 하는 곳이 바로 통신시장을 삼분한 이동통신3사(SK텔레콤‧KT‧LG유플러스)다.
이동통신 시장은 규모의 경제가 작동되기 쉬워서 그대로 방치하면 순식간에 독과점 시장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사업자의 자본 논리와 경쟁당국이 자주 충돌하는 시장으로 꼽힌다.
미국의 경쟁당국은 ‘3’이란 숫자를 떠올리는 것조차 싫어한다. 미국 사법부와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2011년 AT&T의 T모바일 인수·합병, 2014년 스프린트의 T모바일 인수를 불허했다. 이동통신 사업자가 4개에서 3개로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스프린트의 T모바일 인수는 도널드 트럼프 정권이 들어선 후 어렵게 승인 받았지만, 일부 사업을 신규사업자에게 넘기라는 조건이 붙었다. 이동통신시장의 ‘빅3’ 편제를 끝까지 막아보겠다는 경쟁당국의 의지가 엿보인다.
유럽연합(EU)의 반독점분야 수석 경제학자 토마소 발레티가 2017년 발표한 논문에는 ‘빅3’의 병폐가 잘 소개돼 있다. 그는 “전 세계에 이동통신사가 4개 있는 나라도 있고 3개뿐인 곳도 있다. 프랑스처럼 신규사업자가 추가돼 3개에서 4개로 늘어난 곳도 있다. 하지만 이들 시장의 통신요금 추이를 비교분석했더니 4개 사업자에서 3개 사업자로 재편된 나라는 통신요금이 최대 16%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국내 이동통신시장은 아쉽게도 독과점의 역사 그 자체다.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가 시장을 지배한 지 20년이 흘렀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네번째 이동통신사업자로 누가 선정될지가 관심사였지만, 이젠 제4이동통신 사업자의 등장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시장 진입 장벽이 높아 신청한 사업자가 번번이 고배를 마시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제4이통 사업자에 대한 문은 항상 열려 있지만 적절한 사업자가 없어 정부가 적극 추진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경쟁당국이 사실상 메기의 투입을 포기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되면 경쟁당국이 요금인하를 위해 취할 수 있는 선택은 보편요금제 설정과 같은 시장 개입뿐이다.
반면, 국내 이동통신 3사는 ‘내시균형(Nash Equilibrium)’ 상태에 빠져 있다. 내시균형이란 게임 참여자가 스스로의 전략변경으로 이득을 취할 수 없다고 판단해 더 이상 전략변경을 시도하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국내 이동통신 가입자 수는 이미 전체 인구를 넘어섰다. 요금을 내려도 시장이 커지지 않으며, 대폭적인 가입자 증가도 기대할 수 없다. 솔선해서 요금을 내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동통신은 전기와 가스처럼 공공 인프라 개념이 강하다. 그래서 이용자들에게 저렴하고 안정적인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해 나갈지에 대한 꾸준한 고민이 필요하다. 사업자가 없다고 손을 놓는다면 경쟁당국이 설 자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