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외교부는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를 청사로 불러 지소미아 파기를 문서로 공식 통보했다. 이 자리에서 나가미네 대사는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파기 결정에 엄중 항의했다. 미국 정부는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의 입을 통해 “실망했다”고 표명했다. 미국과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만 보아도 ‘충격’은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의 안보 전문가들은 지소미아 파기로 이점(利點)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일본이 지소미아를 통해 한국에 제공한 정보가 중국에 흘러들어갈 리스크가 줄어들게 됐다고 주장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과 일본 당국이 그동안 한국을 경유한 기밀 누출을 우려해 왔다는 안보전문가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 관계자는 “국가정보원 간부가 정기적으로 베이징을 방문해 일본과 미국이 제공한 기밀정보를 중국에 흘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 고위관료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라고 한다.
지소미아는 군사 기밀정보를 교환하고 공유하기 위한 ‘파이프’와 같은 역할이지, 지소미아가 있다고 해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주고받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12월 일본 초계기에 대한 광개토대왕함의 사격레이더 조사(照射) 문제가 발생해 갈등을 겪은 후로는 지소미아를 통한 정보교환 빈도가 현저히 낮아졌다고 한다.
2016년 한국과 일본의 지소미아가 발효되기 전까지 일본은 미국을 통해 한국의 기밀정보를 입수해 왔다. 미군과 한국군은 한반도 방위를 위한 한·미연합군을 구성했고, 그 지휘권은 아직 미군이 보유하고 있다. 일본은 미군이 한·미연합군의 지휘권을 잃지 않는 한, 한반도와 관련된 주요정보를 받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 입장에서 보면 지소미아가 오는 11월 22일에 효력을 상실한 뒤에도 미군을 통해 정보를 받았던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갈 뿐, 일본이 충격 받을 일은 아니라는 게 일본 안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오히려 이번 지소미아 파기로 손해를 보게 된 나라는 한국을 경유해 일본 정보를 습득해 왔던 중국이다. 그래서 한국의 지소미아 파기로 동북아 정세가 흔들린다거나 중국과 러시아, 북한이 이득을 본다는 주장은 지소미아의 실태를 정확히 알지 못한 사람들의 주장이라는 게 일본의 생각이다.
일본 안보전문가는 미국이 한국의 지소미아 파기에 실망을 넘어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고도 보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주한미군 병력의 주일미군 이동이다. 이 관계자는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취재에서 최근 미국이 문재인 정권의 친북 성향을 우려한 나머지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해 배치한 주한미군을 서서히 일본으로 이동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한 이유는 미국의 경제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던 소련에 군비확산을 부추긴 ‘부담강요전략’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있다. 현재 중국이 급속한 군비 확산에 나설 수 있게 된 것도 미국 중심의 자유경제체제를 활용해 돈을 빨아들인 뒤 군비에 전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소련을 붕괴시킨 ‘부담강요전략’을 중국에도 적용시키고 있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스스로가 미국과 일본을 뿌리치고 북한과 중국, 러시아 쪽으로 다가가고 있다고 일본은 보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일본에선 이번 지소미아 파기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우리 정부가 일본의 이런 속내를 잘 파악하고 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이낙연 국무총리가 27일 일본이 우리나라를 백색국가(수출심사 우대국)에 재지정하면 지소미아 종료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카드를 던진 걸 보니 아직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여진다. 일본이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지소미아에 집착하고 있지 않는데, 지소미아 종료 재검토를 시사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