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式 안보경제학, 아베도 써먹네

2019-09-30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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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교수 ]



[곽재원의 Now&Future] “지금 전망으로는 아베의 뒤는 아베다.” 지난 7월 21일 참의원 선거에서의 승리와 9월 11일 제4차 개각을 거친 일본의 아베 정권은 지지율 50% 대에서 순항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총리 속투(續投)애 대한 기대감도 무르익고 있다.

당 총재 3선으로 제한된 당 규칙 개정을 주도하고 있는 집권 자민당의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은 지난 27일 한 방송에서 현재로선 아베신조 총리를 대신할 인물이 없다고 못박았다. 아베 총리는 당총재 3선으로 2021년 9월까지가 임기다. 4선이 가능해지면 2024년까지 임기가 늘어나게 된다.

일본정치는 지금 나홀로 아베정권 아래 약한 야당들이 올망졸망 포진한 ‘일강 다약(1强多弱)’ 구조다. 2012년 12월에 출범한 아베정권의 장기집권을 떠받치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가장 큰 힘은 역시 대미관계의 밀착이다. 안보와 경제의 안정성을 확보해 민심을 잡고, 이를 바탕으로 국제외교를 펼쳐 일본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아베 총리가 주장하는 ‘아베노믹스’와 ‘지구의(地球儀) 외교’를 가능케 하는 동력(動力) 중의 하나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대통령제 국가의 대통령 이상으로 강력한 권력을 쥐게 되고, 트럼프 정권과 깊이 밀착하면서 ‘아베=트럼프’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트럼프 대통령을 닮아가고 있다. 미·중 무역마찰에서 미국이 취하고 있는 자세를 그대로 따라간다거나, 역사와 안보를 걸어 한국에 경제 보복조치를 취하는 행태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아베 총리는 한발 더 나아가 이 같은 행태를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일본정부가 외교·안전보장정책의 사령탑을 담당하는 국가안전보장국(NSS)에 경제분야를 담당하는 부서를 신설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마찰과 중국이 내건 광역경제구상 즉 일대일로(一帯一路) 등 경제와 외교·안보가 밀접하게 연관되는 문제에 대처한다는 것이다. 총리관저의 경제외교 기능을 강화하려는 방책이다.

NSS는 2014년에 발족했다. 아베 총리가 의장을 맡고 있는 국가안전보장회의 (NSC)의 사무국을 담당하고 있다. 방위성을 비롯, 외무성과 경찰청 등 외교·안보에 관한 성청의 관료들이 소속되어 있다. 현재는 「총괄·조정」 「정보」 「전략기획」의 3개 반에, 구미와 동북아시아, 중동 등 지역별로 3개 반이 있다.

새로 설치되는 경제분야의 전문부서는 통상문제와 외국과의 인프라 협력, 차세대 통신규격 ‘5G’ 등을 둘러싼 하이테크 패권경쟁 등을 담당한다. 경제와 외교·안보에 걸리는 문제는 개별 성청에서 대처하는 게 어렵다고 본 것이다, 총리 관저 내에 사령탑 기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이유다. 설치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경제산업성과 총무성(정보통신 총괄) 등 경제관청으로부터 인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미·중 무역전쟁에서는 미국이 안보상 우려 등을 이유로 무역을 규제하고 중국이 보복관세로 응수하는 장면이 연출되어 왔다. 일대일로에서는 중국이 개도국에 과잉 융자를 하는 ‘채무의 함정’이 문제가 되고 있다. 경제력을 구사한 안보와 군사 면에서의 개도국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미국은 견제하려 하고 있다.

디지털 경제의 추진을 둘러싸고는 국가주도로 개인정보를 관리하는 중국 모델과 구미의 자세가 아주 다르다는 점이 지적된다. 미국은 스파이 행위를 막기 위해 5G의 인프라 장비 등에서 중국제 기기를 사용하지 말 것을 동맹국에 촉구하고 있다. 안보와 경제를 불가분의 관계로 설정하고 있다.

일본도 2018년 12월 안보상의 리스크가 있는 통신기기의 정부조달을 피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꼭 지정하지는 않았으나 중국제 기기를 염두에 둔 게 사실이다. 올 7월에는 안보상의 우려를 배경으로 한국에 대한 반도체 재료 수출 절차를 엄격화했다.

이에 앞서 자민당의 ‘룰(제도) 형성 전략의원동맹’(회장; 아마리 아키라 현 세제조사회장, 전 경제재정·재생장관)은 지난 5월 경제와 안전보장정책의 사령탑 창설을 요구하는 제언을 아베 총리에 제출했다. 미국의 국가경제회의(NEC)를 모델로 한 조직을 관저에 설치하는 내용이다. 일본 정부는 이 제언도 참고하여 관저 내에 경제와 외교·안보를 일원적으로 다룰 부서 설치를 검토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조치들과 함께 일본 정부는 원자력과 반도체 등 안전보장 상 중요한 일본기업에 대한 외국자본의 출자 규제를 강화한다고 한다. 외자규제를 정하고 있는 외환법에 따르면 외국투자가가 안전보장에 관련된 사업을 하고 있는 일본 상장기업의 주식을 10% 이상 취득하거나, 비상장기업의 주식을 취득할 경우 사전제출을 의무화해 심사하고 있다. 대상업종은 무기와 항공기, 우주개발, 전기, 가스, 통신, 방송, 철도, 휴대전화 제조 등 다방면에 걸쳐있다. 일본 정부는 빠르면 10월 임시국회에서 외환법개정안을 제출해 심사기준을 ‘10% 이상’에서 ‘1% 이상’으로 크게 강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주주총회에서의 임원 선임안 등도 사전제출 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검토 중이라 한다. 일본이 외자규제를 포괄적으로 개정하는 것은 1980년 대내투자를 ‘원칙자유’로 정한 이래 처음이다. 이는 구미가 중국을 염두에 두고 하이테크와 기밀정보의 유출방지를 강화하고 있는 모습을 본뜬 것이다.

경제정책에 안보마인드를 강력히 주문해 온 트럼프 모델은 이제 아베로 뚜렷이 전이된 형국이다. 일본 경제계에선 “아베노믹스의 알맹이가 다 빠져나가고 안보마인드가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의도적으로 안보분야를 기피해온 관청에 불기 시작한 안보바람이 가을부터 더욱 강해지고 있다는 뉴스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 최대 통신서비스사인 NTT도코모가 9월 30일 5G에서 중국 화웨이의 스마트폰을 채용하지 않는다고 발표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5월 화웨이의 스마트폰과 통신 인프라를 안 쓰겠다며 세계 국가들에 동조를 촉구한 이래 각국의 입장은 확연하게 갈려있는 상황이다.
LG경제연구원의 이지평 상근자문위원은 “일본이 한국 제조업을 견제해 기술유출 방지와 협력 자제를 유도하고, 보호주의가 강화된 새로운 세계 비즈니스 환경을 활용하는 행태를 보면 아베의 트럼프화를 연상케 한다‘고 경계했다. 트럼프를 닮아가는 아베의 이런 정책 방향이 양국관계를 점점 더 어렵게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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