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나라 한국, 경제의 나라 일본

2019-08-29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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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교수 ]



[곽재원의 Now&Future] 문재인 정권과 아베 정권을 서울과 도쿄의 두 곳에서 바라보는 정점(定點) 관측은 매우 의미있는 시사점을 준다. 특히 한·일 두 나라의 사이가 극도로 악화된 이 시점에선 더욱 그렇다.

정치분석가들은 정권을 평가할 때 대략 4개의 기준을 제시한다. 먼저 ‘안정감 있는 정권운영’이 이뤄지고 있는가를 본다. 둘째는 정책 목표가 올바른 방향으로 잡혀 있는가, 셋째는 관료기구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를 판단한다. 넷째는 내정(內政)에서 외교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과제설정이 폭넓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따진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한국은 정치로 경제를 다스리는 나라인 반면, 일본은 경제로 정치를 이끌고 가는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이 대비가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의 문재인 정권과 아베 정권의 국정운영 모습은 뚜렷이 구별된다.

아베 신조 총리의 지지율은 8월 초 49%로 비지지율 31%와 큰 차이를 보인 반면 문 대통령은 23일 갤럽조사에서 부정평가 49%, 긍정평가가 45%로 14주 만의 역전현상을 나타냈다. 일단 정권의 안정도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세대 간 지지성향도 아베 총리에 대한 지지의 중심은 20~30대의 젊은 층으로 지지율이 50~60%에 이른다. 40~60대는 40% 전후로 지지율이 떨어진다. 이에 비해 문 대통령은 20대가 낮고 30~40대가 중심 지지층이다. 50~60대는 낮은 지지율을 보인다. ‘일본은 높은 취업률과 낮은 정치관심, 한국은 낮은 취업률과 높은 정치관심’이란 상반된 등식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다.

일본의 경제 역동성을 상징하는 도쿄의 시부야 광장, 도쿄역 주변, 이케부쿠로 광장과 정치 역동성을 상징하는 서울의 광화문, 시청, 서울역 광장은 두 나라의 정권 지지율 성향을 웅변한다. 유락초의 이자카야와 무교동의 생맥주집에서 들리는 소리도 경제와 정치로 분명히 갈린다.

두 정권의 차이를 또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자. 아베 정권은 보수적인 사상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다양성을 긍정한다. 일본에선 이를 ‘여유로운 포용’이라고 한다. 반면 문 정권은 진보적인 사상의 바탕 아래 차별을 타파하는 ‘포용적 혁신’을 내세운다. 이러한 정권철학의 차이는 재계를 대하는 자세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일례를 들어보자. 지난 8월 22일 저녁 아베 총리는 도쿄 뉴오타니 호텔 일본요리점에서 재계 총본산인 게이단렌(經團連)의 두 명예회장, 상공회의소 회장, 경제동우회 회장 등 재계 대표와 회식을 했다. 게이단렌의 현 회장은 와병 중이다. 이에 앞서 아베 총리는 20일 오전 미쓰비시상사 사장, 모리나가상사 사장 등과 후지산 자락에 있는 휴가지에서 골프 회동을 했다. 일본 언론에 매일 알려지는 총리 동정란에는 총리와 재계인사와의 만남이 꽤 자주 실린다. 아베 정부가 재계에 세제혜택을 주는 대신 재계는 근로자의 기초급여 인상으로 화답하는 정경 밀착은 자연스런 행태다.

이에 비해 문재인 정부에서는 전경련(全經聯)을 밀어내고 재계의 대표 격으로 상공회의소를 내세움으로써 대기업들과의 소통을 꺼리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를 신설하고, 제4차 산업혁명의 주무부서로 지정함으로써 산업통상자원부를 크게 위축시켰다. 중소벤처기업, 창업과 관련한 기업정책은 풍부하지만 큰 틀에서 보는 산업정책 부재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지난 7년간의 아베노믹스에서 가장 훌륭한 성과로는 기업 거버넌스 개혁을 꼽는다. 기업의 성장을 촉진해 일본 전체에 돈이 돌게 한다는 과제가 명확했다. 그 결과 해외의 자금을 끌어들이는 효과도 컸다. 무엇보다 나랏돈을 거의 쓰지 않고 정책효과를 올릴 수 있는 저비용 정책(코스트 퍼포먼스)이 훌륭했다는 평가다. 이 기업 거버넌스 개혁으로 그 과실(이익의 증가분과 주가 상승분)을 외국인투자가와 기관투자가뿐만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은 국민이 나눠 갖게 해준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는 지난 6월 경제재정운영 기본방침에서 ‘취직빙하기 세대’ 지원에 힘을 쏟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7월에 지원추진실을 설치했다. 1993년부터 2004년경에 고교와 대학을 졸업한 세대 즉, 30대 중반부터 40대 중반에 걸친 세대를 취직빙하기 세대라 부른다. 이들은 심각한 불황으로 취직난에 직면했다. 기업이 채용을 줄인 영향으로 정사원의 길이 닫혀 무직과 비정규 고용으로 일하는 비율이 어느 세대보다도 높다. 아베 정권은 이를 정부 책임이라고 밝히고, 앞으로 3년간 이들을 대상으로 정규 고용 30만명 늘린다는 계획 아래 기업들에 적극적인 채용을 촉구하고 있다. 사회적 격차를 줄이면서 정권지지층을 넓히는 맞춤형 경제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정권의 시간축에선 단기적인 정치보다 중장기적인 경제가 힘을 발휘하게 된다. 이는 아베 정권 7년에서 목격된다. 2021년 9월 3기 임기가 종료되는 아베 정권은 ‘레이와(令和) 신시대; 소사이어티 5.0에의 도전’이라는 비전의 실현에 나서고 있다. 소사이어티 5.0은 초(超)스마트사회를 말한다. 제4차 산업혁명에 의한 고도의 경제, 편리하고 풍부한 생활이 이뤄지는 사회 실현, 인생 100년 시대를 맞아 누구도 언제까지나 활약하는 사회 구축을 목표로 한다. 성장전략, 인재혁명, 지방창생(創生)의 실현을 위한 방안들이 담겨 있다.

일본정부는 올가을 각 부처의 업무 가운데 간소화할 것과 효율이 낮은 것을 골라내는 공통기준을 만든다고 한다. 사령탑 기능을 담당할 추진팀을 총리실 내각관방에 설치해 2020년 가을까지 전 부처의 과제를 추출한다고 한다. IT를 이용해 효율화를 추진하고, 적절한 인원 배치를 꾀한다는 구상이다. 이러한 일본의 사례는 정치의 나라 한국에 많은 점을 시사한다.

경제정책은 정치와 다르다. 해결해야 할 과제와 목표가 확실해야 한다. 정책 효과가 뚜렷이 드러나야 한다. 저비용 정책이 입증되어야 한다. 기존의 다른 룰과 정합성도 가져야 한다. 정책에 대한 설명 책임을 지고, 모두가 알기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은 우리보다 정교한 정책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지금 경제의 나라 일본은 2020년 도쿄 올림픽으로 열기가 오르고 있고, 정치의 나라 한국은 2020년 총선을 앞두고 포퓰리즘 정책이 쏟아져 나올 태세다. 정치의 논리로 경제 정책이 왜곡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경제가 바로 서야 지지율이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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