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역주행하고 있는 규제개혁

2019-09-25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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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규제 완화와 폐지가 필요하다. 부정부패를 줄이기 위해서도 규제 완화와 폐지가 필요하다. 경제활력의 회복과 기업가 정신의 고취를 위해서도 규제 완화와 폐지가 필요하다. 이처럼 규제 완화와 폐지가 필요한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규제개혁의 핵심은 규제 완화와 폐지에 있다. 다만 품질·안전·노동·환경 분야와 같이 꼭 규제가 필요한 영역은 더 나은 규제, 더 합리적인 규제가 필요하다. 어느 누구도 규제 개혁을 규제 양산과 강화를 뜻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의 규제상황은 규제샌드박스 도입과 같은 규제회피 조치도 일부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규제 양산과 강화 방향으로 역주행하고 있는 것 같다.
건설산업의 경우, 지난 3년간만 살펴봐도 건설산업기본법, 하도급법, 건설기계관리법, 산업안전보건법, 건축법, 출입국관리법 등 수많은 법령에서 새로운 규제의 신설이나 강화가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19대 국회와 아직 임기가 끝나지도 않은 20대 국회의 건설규제 입법 현황만 비교해 봐도 이 같은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지난 19대 국회의 건설규제 입법 발의 건수는 100건이었다. 하지만 20대 국회는 올해 9월 현재까지 345건이나 입법 발의가 이루어졌다. 이처럼 과도한 규제 입법이 국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이유는 지역구민이나 이익집단의 요구 수용이 불가피한 탓도 있지만, 정부입법과 달리 국회입법은 엄격한 규제심사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규제의 내용도 예방보다는 주로 사업자에 대한 처벌 강화에 치우치다 보니 처벌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건설산업기본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건수는 2014년에 6828건이었지만, 4년 뒤인 2018년에는 무려 2배에 가까운 1만2474건에 달했다. 과태료 처분 건수는 종합건설업체의 경우 2014년에 869건이었던 것이 2018년에는 1829건으로 늘었고, 전문건설업체도 2014년에 1664건이었던 것이 2018년에는 6760건으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문제를 규제로 해결하겠다는 식의 ‘규제만능주의’ 사고로 규제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면서 또 다른 문제와 규제를 낳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수많은 규제가 양산된 하도급 분야가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민간사업자 간의 사적인 계약관계에 정부가 개입해서 하도급 물량, 금액, 대금지급 등과 관련하여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규제를 양산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도급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보완입법을 한다는 것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게 되면 또 다른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하는 ‘규제 피라미드’ 현상도 여전하다.

건설산업의 현실이나 산업적 특성을 도외시한 규제도 산업안전보건법이나 하도급법 등에 산재해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전문성 부족 탓도 있고, 편향성도 한몫했다. 안전이나 노동전문가라고 해서 모두가 건설산업의 전문가는 아니다. 특히 특정 노조나 이익집단, 혹은 이념적 편향성을 지닌 사람의 주장이 지나치게 반영될 경우 규제의 목표달성도 어렵거니와 더 많은 문제를 양산할 가능성도 크다.

규제개혁을 위한 방법론은 그동안 숱하게 제안되었다. 건설산업의 경우 ‘건설산업통합법’을 제정하여 관련 법령을 통폐합하면서 건설규제를 10분의1로 줄여보자는 제안이 있었다. 과거 김대중 정부에서 집권 초기에 했듯이,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된 규제 건수의 50%를 1년 이내에 폐지하는 제안도 있다. 미국 등 선진국 사례에서처럼 1건의 규제를 신설할 때마다 2건 내지 3건을 폐지하는 방안도 있다. 규제샌드박스의 적용 영역을 확대하는 것도 방법이다. 규제의 운용방식을 열거주의(positive)에서 포괄주의(negative)로 바꾸자는 것도 오래된 제안이다.

이처럼 규제개혁을 위한 방법론은 대단히 많다. 부족한 것은 규제개혁을 확고하게 추진하겠다는 정치권과 정부의 의지다. 정치권이 진정으로 정치 과잉의 시대를 마감하고 민생을 살피겠다면 규제개혁에 앞장서야 한다. 규제개혁을 하겠다는 말잔치가 아니라 실제로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규제 완화와 폐지를 단행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인이 아니라 전문가를 대거 활용해야 한다. 규제 양산과 강화로 역주행하는 규제개혁은 혁신성장을 소리 없이 죽이는 암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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