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후폭풍이 한미동맹을 거세게 흔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실망'을 넘어 '분노'의 감정을 쏟아내면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 중거리 미사일 배치, 남북경협 등 향후 한·미 외교적 현안에서 한국 정부를 더욱 거세게 몰아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27일 외교가에 따르면 지난 22일 한국이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한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반응은 지난 닷새 동안 차츰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미국은 지소미아 종료 결정 직후 '한일간 신속한 이견해소 촉구'라는 입장을 발표했다가 '실망과 우려', '강한 실망'으로 표현을 바꿨다. 이후 지난 25일에는 '지소미아 종료가 한국방어를 복잡하게 하고, 미군 병력에 대한 위험을 증가시킬 것'이라는 혹평을 내놨다.
동맹국의 정책 결정을 미국이 이처럼 강하게 비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국의 의사결정에 실망과 우려를 표현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면서 "특히 '강한 실망', '문재인 정부'라는 수식어를 덧붙인 것은 한미관계의 통상적 입장차이가 아닌 한 차원 높은 불만을 여과 없이 표출한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가에서는 한국이 먼저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을 깨버린 만큼 미국이 현 사태를 '한미동맹'의 위기로 진단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 최근 방한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특별대표 등은 한국에 지소미아 연장을 요청해왔다. 한 외교소식통은 "한국이 미국의 거듭된 요청을 거부한 만큼 미국이 동맹 차원에서 한국을 배려했던 다양한 조치를 유지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부정적 기류가 워싱턴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첫 후폭풍은 오는 9월 중순 개시될 한미방위비 분담금 협상이다. 전문가들은 지소미아 파기로 미국이 동북아 안보전략을 위해 감당할 비용이 증가했다고 판단하고 있는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를 한국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올려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유지에 연간 48억 달러가 소요된다며 분담금 인상을 공공연하게 압박해왔다. 미국은 올해 분담금의 5배에 달하는 6조원가량을 내년 한국의 분담금으로 요구하고 있다.
연말 예정된 한미연합훈련에도 먹구름이 잔뜩 끼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5일 프랑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한미연합훈련) 원한다면 내버려두겠지만 나는 안하는 것을 권고한다"면서 "그건 완전한 돈 낭비"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연말 예고된 한미연합 공중훈련인 '비질런트 에이스는' 대폭 축소되거나 아예 시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 조치로 호르무즈파병 문제와 미국 인도태평양전략의 한국 참여 압박, 전략자산 배치, 남북경협 재개를 위한 대북제재 해제 유지 등의 문턱도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견해다. 한 대미소식통은 "트럼프는 자국 주도의 네트워크에 동맹국들이 기여하길 원한다"며 "앞으로 동맹 안보협력 비용과 중거리 미사일 배치 등 한국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일들을 더욱 직설적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한미동맹 위기론이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주장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재차 밝혔듯 지소미아 결정 전에도, 후에도 미국 각급에서 필요한 소통을 긴밀하게 유지하고 있다"면서 "미국이 표명하고 있는 (한국에 대한 부정적) 입장에 대해서도 양측간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신 센터장은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제일주의 외교의 부작용에서, 한국은 북한중심적 대외정책 추진으로 한미동맹이 후순위로 밀리면서 한미동맹의 유동성이 증폭되고 있다"면서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은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약화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 최악의 외교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은 미국을 향해 한국이 한·미·일 안보협력을 해치고 있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하면서 앞으로 미국을 통해 한국을 강하게 압박하려 할 것"이라며 "반면 중국, 러시아는 한국이 중립적인 위치에 서도록 경제력, 심리전을 활용해 압박할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외교적 고립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