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박양준 부장판사)는 22일 페이스북이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등 처분 취소 소송에서 “피고가 2018년 4월 21일 원고에 대해 부과한 처분을 모두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방통위는 페이스북이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까지 자사 서버 접속경로를 임의로 바꿔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이용자 접속 속도를 떨어뜨렸다고 보고 지난해 3월 과징금 3억9600만원을 부과했다. 근거는 전기통신사업법상 금지된 ‘정당한 사유 없이 전기통신서비스의 이용을 제한하는 행위’였다. 일각에선 SK브로드밴드와 망(網) 사용료 협상 중이던 페이스북이 일부러 속도를 떨어뜨려 압박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이에 페이스북은 두 달 뒤 이용자 불편을 일으킬 의도가 없었다며 과징금 부과에 불복해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페이스북 접속경로 변경이 이용 ‘제한’이 맞는지 ▲접속 지연이 이용자 이익을 해칠 정도였는지 ▲서비스 속도를 높일 책임이 페이스북에 있는지 ▲현행법 해석 적용 범위는 어디까지인지였다.
재판부는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행위는 전기통신서비스의 이용을 지연하거나 이용에 불편을 초래한 행위일 뿐 ‘이용의 제한’은 아니라고 봤다.
방통위의 페이스북 행정 처분 근거가 이용의 제한이 아니라는 근거는 어법이다. 페이스북 이용 자체는 가능하나 이용 지연이나 불편이 초래된 경우는 제한이 아닌 ‘지연’으로 판단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법원은 또한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SP)인 통신사 스스로 국제전용회선과 해외 ISP와의 연동 용량을 늘려 접속 속도를 회복한 점에 주목했다. ISP가 해외 전송망을 충분히 갖췄다면 페이스북 접속 경로 변경으로 이용 불편이 초래되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콘텐츠 제공자(CP)가 ISP로 직접 보내지는 트래픽 양을 조절할 수 있지만 이후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므로 서비스 품질이 어느정도까지 저하될 지 미리 알 수 없다고도 봤다. 페이스북 약관은 서비스가 방해・지연・결함 없는 기능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현행법상 CP가 네트워크 품질을 일정 수준 이상 보장하거나 접속경로 변경시 미리 ISP와 협의할 의무도 없다.
재판부는 페이스북 접속경로 변경이 이용자 이익을 크게 해치는지 판단할 객관적 수치도 부족하다고 봤다. 이에 부합할 근거를 내려면 국제 공인되거나 법령에 나온 객관적 수치를 비교하고, 각종 실증자료도 제시해야 한다. 반면 방통위는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 전 응답속도나 응답속도 변동 평균값, 민원 건수, 트래픽 양 등을 비교해 상대적・주관적・가변적인 처분이 진행됐다는 판단이다.
법원은 국제 기준을 참고하기 위해 국가정보통신서비스 그룹의 SLA(서비스 품질에 대한 이용자・공급자 간 계약)을 살펴봤다. 계약에 따르면 접속 지연이 400ms이 넘으면 통신 요금이 보상된다. 방통위가 2017년 만든 시정조치안에는 국내 ISP 3사가 미국 ISP에 접속할 때의 네트워크 지연속도는 평균 143ms였다고 나온다.
전세계 주요 네트워크 장비를 만든 시스코(Cisco)사는 비디오 서비스 품질 튜토리얼에서 지연시간 150~300ms 이하를 권장한다. 유럽전기통신표준협회(ETSI) 기준을 봐도 300ms가 기준치다.
반면 문제가 된 일평균 응답속도는 약 75ms이고, 최번시(가장 많은 사용 시간대) 평균 응답속도도 105~130ms여서 국제 기준을 초과하지 않았다고 법원은 봤다. 개별 응답속도가 320ms 이상인 경우도 있지만 24시간 중 약 3%에 불과했다는 설명이다.
방통위가 처분 근거로 낸 민원 증가 역시 상대적・주관적 요소여서 처분의 적법성을 뒷받침할 근거가 아니라는 판단이다. 특히 페이스북 접속 경로가 바뀐 2016년 12월 8일 이후 민원이 조금 늘다 줄었고, 이듬해 2월 중순에야 크게 늘어 방통위가 제시한 응답속도 추이와도 맞지 않는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행정처분이 개정된 전기통신사업법을 반영해 소급효 위반이라는 페이스북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방통위가 페이스북의 접속 경로 변경 근거를 ‘정당한 사유 없이 전기통신서비스의 가입・이용을 제한 또는 중단한 채 전기통신사업을 계속 영위하는 경우’로 삼아 기존 법령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시행령 개정 목적이 사업자의 이용자 이익 저해 행위 유형을 구체화하기 위해서지, 이용자 보호만 내세워 ‘이용 제한’ 내용과 방식을 포괄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콘텐츠 제공자의 서비스 품질에 대한 법적 책임에 대해 명확한 규정이 없고, 접속 경로 변경으로 접속 속도가 저하돼 불편을 초래한 행위를 제재하려면 해당 규정이 현행법에 실렸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현재 국회에는 관련 법안이 계류중이다. 자유한국당 유민봉 의원이 3월 대표 발의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정당한 사유 없이 이용자에게 제공되는 전기통신서비스의 품질을 저하시키거나 저하될 우려가 있는 방식으로 전기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재판부는 페이스북이 국내 통신사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 접속 경로를 바꿨다 해도 추가 입법으로 명확한 제재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방통위의 패소는 해외 사업자 제재에 대한 명확한 기준 마련과 객관성 확보라는 숙제를 던졌다. 방통위는 선고 직후 항소 방침을 내놨다. 2심 재판부가 서비스 이용 제한에 대한 사전적 정의와 행정 처분 근거의 명문화에 주목할 경우 방통위 승소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