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는 21일부터 내달 10일까지 신경희 작가 유작전 ‘땅따먹기’를 열고 4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신 작가는 1990년대 활발하게 활동을 하다 2009년 암 진단을 받고 병마에 시달리다 2017년 사망했다.
이번 전시에는 신 작가가 말년에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회화 작품들인 ‘정원도시’ 시리즈가 처음 공개됐다. ‘정원도시’ 시리즈는 그의 이전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실험적인 작품들과는 다른 풍의 회화 작품들로 씨앗, 꽃 등 정원의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작품들이다. 수많은 점과 선들을 캔버스에 그려 완성한 '정원도시' 시리즈는 2006년부터 2009년 사이에 완성한 작품들로 바깥 세상과는 단절돼 작품 활동에만 매진하던 시기에 그렸다. 작업실 앞의 작은 정원에 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고 물을 주면서 느끼는 여러 상념들을 바탕으로 이뤄진 작업이다. 씨가 싹을 틔우기를 기대하는 희망과 꽃을 피울 때의 행복감, 초겨울 잎이 질 때의 허무함 등을 표현했다고 작가는 생전에 밝혔었다.
작가는 2007년 2월 유품노트에서 “지난 겨울 결국 건강에 이상이 왔다. 척추 이상으로 오른쪽 다리와 손이 저리고 힘이 없어졌다”며 “나라는 사람은 하나도 준비된 게 없는데 봄은 덜컥 오려나 보다. 뒤처지는 느낌이 든다··· 지난 겨울 나는 종종 울면서 걸었다. 그 겨울의 들판은 분명 나를 기억해 줄 것이다. 견디는 일조차 쉽지 않았던 그런 나를”이라고 적었다.
신 작가의 언니 신백련(64)씨는 “당시에 동생은 작품에 너무 몰두해 있었다”며 “작품 욕심에 작업에 매진하다가 병에 걸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학고재와 공동 기획한 김복기 아트인컬처 대표도 “정원가든 시리즈 작업 당시에는 이전에 하던 강의 등 외부활동을 접고 작가가 작품에만 온통 몰두했던 시기”라며 “작가의 혼이 담겨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신 작가는 젊은 시기 여러 재료를 활용한 실험적인 작업 등을 선보이면서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혼성적인 작업들을 했었다”며 “이후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대작을 남기겠다는 열정에 회화에 몰두한 듯하다”고 덧붙였다. 이전의 작업에서는 제자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정원가든 시리즈는 작가가 개인적으로 일일이 점과 선을 모두 채워 그렸다.
신 작가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판화를 배우고 돌아와 초기에는 판화 작업을 하다 판화 양식을 차용해 다양한 재료들을 활용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1997년작 ‘화해할 수 없는 난제들-방울방울’은 솜방울을 왁스에 담궜다 꺼낸 재료를 활용했고, 1995년작 ‘화해할 수 없는 난제들 – 기억’은 흰 종이에 낙하산 모양의 실을 붙인 작품이다. 2003년작 ‘퀼트 23’은 작가가 만든 수제 종이에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다양한 이미지를 표현했다. 사진을 복사기에 복사하고 이를 신나에 적셔 수제종이 위에 올려 프레스기로 눌러 찍는 독특한 기법으로 작업한 작품이다. 2003년작 ‘퀼트 28’은 복사기로 복사를 하면서 용지를 빨리 빼내면서 찍히는 독특한 무늬를 활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