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인 15일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등장한 '아무르 강가'는 뜻밖의 지명인데다 다채로운 뉘앙스를 지니고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남북 평화경제와 교량국가론을 예시(例示)하는 구절 중에 들어있는 이 말은, 아무르 강변의 콩농사와 서산의 한우사육이 남북과 러시아의 농부들의 협업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걸 생생하게 설명하기 위해 거론됐다.
서산을 콕 집어 말한 것은 1998년 1001 마리의 소를 이끌고 방북했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서산농장을 상징화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문제의 평화해법을 보여준 사례였다. 아무르 강가는 러시아 콩 재배의 46%를 차지하는 주요 농경지이다.
한 언론은 서산 한우가 러시아 아무르주에서 수입한 콩으로 사육된다고 보도했는데, 서산의 한우개량사업소 관계자는 "주로 국내 농장의 풀을 먹여 키우고 있다"고 밝혔다. 배합사료가 러시아산 콩을 사용했을 가능성은 물론 있지만, 대통령의 언급은 현재의 유통을 고려한 말은 아닌 듯 하다. 서산과 아무르라는 곳을 이런 방식으로 연결시키는 '교량국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할 것이다.
아무르 강가가 거론된 것은 이곳이 북한의 관심지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일은 2012년 서울시 면적의 4배가 되는 광대한 이 지역과 자매결연을 맺고 북-러 농업협력을 해나가기로 했으나, 그 전해 12월에 갑작스럽게 사망함으로써 실현을 하지는 못했다. 자력갱생과 식량자족이 절실한 북한 김정은으로서는 선친의 못다한 이 사업에 대한 의미가 각별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여 아무르 강가의 콩농사를 거론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 지역은 또한 안중근 의사의 동생인 안정근과 안공근이 벼농사로 독립운동 재원을 마련하려 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벼 재배가 시작된 것은 이때부터였다고 하니, 우리나라와의 농사 인연이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이 지역에는 조선의 후예들이 소규모나마 농사를 짓고 있기도 하다. 문대통령은 독립운동의 재원이 된 '한국 농업'에 의미를 부여했을 것이다.
아무르강 일대는 안중근 동생들이 머무른 곳일 뿐 아니라, 조선 독립운동의 상징적 거점으로도 기억되는 곳이다. 이 땅의 시인들에게도 영감을 주어 여러 편의 '아무르 강가' 시를 낳았다. 특히 박정대의 '아무르 강가에서'는 많은 독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작품이다.
"그대 떠난 강가에서/나 노을처럼 한참을 저물었습니다/초저녁별들이 뜨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낮이/밤으로 몸 바꾸는 그 아득한 시간의 경계를/유목민처럼 오래 서성거렸습니다//그리움의 국경 그 허술한 말뚝을 넘어 반성도 없이/민가의 불빛들 또 함부로 일렁이며 돋아나고 발밑으로는/어둠이 조금씩 밀려와 채이고 있었습니다, 발밑의 어둠/내 머리 위의 어둠. 내 늑골에 첩첩이 쌓여 있는 어둠/내 몸에 불을 밝혀 스스로 한 그루 촛불나무로 타오르고 싶었습니다//그대 떠난 강가에서/그렇게 한참을 타오르다 보면 내 안의 돌멩이 하나/뜨겁게 달구어져 끝내는 내가 바라보는 어둠 속에/ 한 떨기 초저녁별로 피어날 것도 같았습니다." 박정대의 '아무르 강가에서' 중에서
헤이룽강(黑龍江)이라고도 불리는 아무르강은 중국과 러시아 국경지대를 흐르는 강이다. 이 강이, 진보진영의 내면을 울리는 상징적인 함의를 지니게 된 것에는, 한국인 최초의 여성 사회주의 독립투사인 김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1885~1918)도 큰 몫을 했다. 당시 고려인 거주지였던 시넬니코보에서 한국인 김두수의 딸로 태어난 그는, 독립운동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갔으나 10살 때 부친을 여읜다. 이후 부친의 러시아인 친구에게 입양된다.
알렉산드라는 새 부친의 아들과 결혼한 뒤 독립운동에 눈을 뜨게 되고, 부부 간의 잦은 이견으로 이혼을 한다. 1916년 그는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에 가입했으며 하보로프스크시 당비서가 되었고, 블라디미르 레닌과 '동지'가 된다. 2년 뒤 알렉산드라는, 독일 스파이로 오해받아 구금되어 있던 이동휘를 구명운동으로 석방시켰고 이후, 이동휘·김립과 함께 한인사회당을 결성한다. 이 정당은 아시아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동휘와 김알렉산드라는 러시아혁명을 이끈 볼셰비키 세력에 합세해, 일제와 투쟁을 벌였다. 이동휘는 1995년, 알렉산드라는 2009년 우리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받는다.
1918년 6월 그는 100여명의 조선인 적위대를 조직해 치열한 항일투쟁을 벌였던 그는 일본군에 체포되어 그해 9월16일에 처형을 당한다. 1919년 3.1운동을 6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그는 죽음에 이르러 이렇게 말했다. "내게 마지막 소원이 있다. 나를 8보(步)만 걷게 해달라." 일본 측이 왜 하필 8보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비록 가보지는 못했지만 우리 아버지 고향이 조선인데 그 나라가 8개의 도(道)로 되어 있어 조선팔도라고 한다. 내 한 발 한 발에 조선인민들과 노동자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새 사회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싶다."
그가 여덟 발짝을 걷도록 해달라고 했던 곳이 아무르 강가였다. 조선의 독립된 미래와 새 사회를 간구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죽음을 향해 걸어갔던 그 기개와 비원(悲願)이 여덟 걸음 뒤에 멈추고 총소리와 함께 스러진 곳이 바로 거기다. 아무르 강가에는 김정일 방문 기념비가 세워져 있지만, '처형의 강'에는 아무런 표지가 없다. 뜨거운 마음을 파묻은 물살이 무심한 듯 흐르고 있을 뿐이다. 문대통령이 말한 아무르강에는, 역사와 미래가 함께 출렁이고 있는 셈이다.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