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수용소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발레 공연장과는 너무도 달랐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처절했다. 어린 아이를 끌어안고 있는 엄마, 가족과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러시아 발레리나 이리나 코레스니코바는 큰 충격을 받았다. 5살짜리 딸이 있는 엄마로서 가슴이 더욱 아팠다.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을 고심한 코레스니코바는 난민 문제를 다룬 발레를 하기로 결심했다.
최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만난 코레스니코바는 “2016년 8월에 영국 런던에서 창작 현대 발레 ‘그녀의 이름은 카르멘’을 공연했다. 공연을 통해 난민 문제를 조금이나마 더 알리고 싶었다. 공연 수익금은 난민들을 돕는데 쓰였다”고 설명했다.
‘그녀의 이름은 카르멘’에는 코레스니코바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들어있다.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특별한 작품이다.
2016년 세계 빈민구호를 위한 국제 NGO단체 ‘옥스팜’을 통해 발칸 지역 난민 수용소를 방문했던 코레스니코바는 “개인적으로 시리아 소녀에게 빨간 색 꽃 반지를 선물 받았다. 너무 소중한 반지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와서도 한참동안 반지를 빼지 못했다. 이후 소녀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봤지만 소식을 듣지는 못했다. 수많은 아이들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어디로 갈 것인지 알 수 없는 곳이 난민 수용소다”고 안타까워했다.
결국 다시 만나지는 못했지만 시리아 소녀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은 발레를 통해 여러 사람들에게 전달됐다. 코레스니코바는 “ ‘그녀의 이름은 카르멘’에는 반지를 주는 장면이 나온다. 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무대다”고 설명했다.
코레스니코바는 1994년 설립 된 러시아 상트 테테르부르크 발레 씨어터를 대표하는 발레리나다. 러시아 발레의 요람인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를 졸업한 코레스니코바는 2001년 21세의 나이에 상트 페테르부르크 발레 씨어터의 프리마 발레리나로 우뚝 섰다.
어린 나이에 오른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코레스니코바는 “공연이 열릴 때마다 내 이름을 보고 관객들이 찾아왔다. 어렸을 때는 심리적인 부담감을 느꼈다. 매일 관객들에게 좋은 컨디션으로 작품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식단 관리 등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 인터뷰 전 하얀 튀튀를 입고 사진을 찍을 때도 주위 상황들을 꼼꼼히 확인했다. 발레 동작 하나하나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발레 씨어터는 오는 8월28일부터 9월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백조의 호수’를 공연한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발레 씨어터는 국가 보조금 및 민간 후원에 의존하지 않는 발레단으로 유명하다. 설립자인 콘스탄틴 타치킨은 “완전히 독립된 씨어터를 만들겠다는 설립 목표를 갖고 있었다. 올해 25주년을 맞이했는데 연간 200회~250회 공연을 한다. 전 세계 순회 공연도 하는데 항상 매진 돼 운영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한국 공연에서 상트 페테르부르크 발레 씨어터는 마리우스 프티파와 레프 이바노프가 창작하고 콘스탄틴 세르게예프가 재안무한 작품을 선보인다. 러시아 클래식 발레의 진수를 눈 앞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1000회 이상 주역인 ‘오데뜨’와 ‘오딜’로 ‘백조의 호주’를 공연한 코레스니코바는 “ ‘백조의 호수’에서는 1인2역을 선보여야 하기 때문에 기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뛰어난 연기가 필요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발레리노가 내가 백조에서 흑조로 바꿨을 때 너무 달라서 몰라봤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관객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고 다짐했다. 풍부한 감정 연기가 일품인 러시아를 대표하는 '백조'가 한국 관객들을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