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18개월 동안 석탄과 섬유 수출 제재를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제 조건은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전면 폐기와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동결할 경우다.
영변 핵시설 폐기는 모든 건물이 폐쇄되고 모든 작업이 중단되는 것을, 핵 프로그램 동결은 핵분열성 물질과 탄두를 더는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14일 북한 사정에 정통한 해외 소식통들은 “미 행정부가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및 제재 완화와 관련해 최근 이러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이 방안이 효과가 있을 경우 다른 시설에 확대 적용하는 것도 고려 중”이라고 전했다.
이는 그동안 북·미가 팽팽히 대립하던 ‘비핵화=제재 완화’ 프로세스를 한 단계 진전시킨 방법으로, 미국이 북·미 실무협상을 앞두고 보다 과감하게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끌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미국은 영변 핵 단지를 넘어서는 추가적인 비핵화 조치를 요구했다. 영변 외의 미사일 시설, 핵탄두 무기 체제 해체, 핵 목록 신고 등 포괄적인 비핵화 ‘빅딜’ 없이는 북한이 요구하는 5개의 대북제재 완화를 해 줄 수 없다는 게 미국 측 주장이었다.
특히 미국은 영변 폐기와 핵 동결에 따른 대북 제재 유예 외에도 사실상의 종전 선언인 ‘평화 선언(peace declaration)’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미군 유해송환 등을 위한 북·미 간 연락사무소 개설 가능성 역시 제기되고 있다. 이는 북·미가 더는 무력 분쟁 상태에 있지 않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한국전쟁의 종식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입장 변화로 이달 재개될 북·미 실무협상이 보다 진전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다만 북한의 핵 동결과 영변 폐기에 대한 검증과 사찰을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할지, 북한이 이행 과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을 경우 어떠한 페널티를 부여할지 등에 대해서는 북·미 상호 간 구체적 합의가 필요하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한·미 간 북한 비핵화의 대상과 방법, 일정표 및 상응조치에 대해 큰 틀에서의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시급하다”면서 “북한이 일방적으로 합의를 위반할 수 없도록 비핵화 프로세스를 중단하거나 역행한다면 제재를 복원하는 ‘스냅백’ 조항을 합의 사항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측의 입장 변화에 대해 확대해석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진아 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은 비핵화 로드맵 이행 방식에서 북·미 양측이 동시에 이행한다는 점을 줄곧 언급해왔기 때문에 ‘동시적·병행적(simultaneous and in parallel)’ 이행은 (북한의) ‘점진적(incremental)’ 이행과 다르다”면서 “정상들 간의 개인적 친밀감과 정책적 원칙을 혼동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