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석에서] ‘부조리한 현실의 맨 끝’ 짚은 한국 창작오페라 ‘텃밭킬러’

2019-07-05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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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6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서 공연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세종 카메라타’의 창작 오페라 ‘텃밭킬러’는 부조리한 현실의 ‘끝’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민낯을 드러낸 막장은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서울시오페라단 오페란 ‘텃밭킬러’가 오는 6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다.

‘세종 카메라타’는 한국 창작오페라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작곡가, 작가, 성악가들이 뜻을 모아 2012년부터 시작한 창작 워크숍이다. 16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예술가 모임인 ‘카메라타’와 한글 창시자 ‘세종’을 결합하여 이름을 붙였다. ‘텃밭킬러’는 ‘달이 물로 걸어오듯’, ‘열여섯 번의 안녕’에 이은 세 번째 작품이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대저택 지하집처럼 ‘텃밭킬러’의 배경은 옥상으로 올라온 구둣방이다. 둘 다 땅에서 발을 딛고 살아가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구둣방에 모여 사는 가족의 재산은 할머니(골륨)가 갖고 있는 금니 세 개가 전부다. 20년간 구두를 닦았지만 지독한 가난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술 만 마시는 폐인이 된 아들(진로)과 손자 두 명(청년, 수음)은 모두 할머니의 금니를 욕심낸다. 청년은 금니를 팔아 결혼하고 싶고 학생인 수음은 친구들이 입는 유명 브랜드의 옷을 사고 싶다. 청년과 함께 사는 아가씨도 금니 쟁탈전에 합류했다. 치킨집에서 일하지만 장사가 잘 되지 않아 월급 대신 치킨을 받는 여성이다. 벼랑 끝에 선 각 세대들을 대표한다. 눈이 먼 이들은 할머니가 가족이 아니라 돈으로 보인다. 무서운 인간의 극단적인 본능과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대중과의 거리를 생각했을 때 한국에서 오페라 그 중에서도 창작 오페라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텃밭킬러’에는 한국형 창작 오페라를 발전시키기 위한 ‘세종 카메라타’의 오랜 고민과 노력이 담겨있다.

이경재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은 “4개의 작품들을 놓고 고민했다. 현실을 투영할 수 있는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 좋겠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작곡가 안효영은 “ ‘텃밭킬러’는 이 시대, 우리 식의 ‘마주 봄’이 되길 바랐다. 마주할 수 있는 오페라, 삶의 문제를 건드리는 마주하고픈 이야기, 그것이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고 작품의 의도를 전했다.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무엇보다 ‘텃밭킬러’는 창작 오페라답게 뻔하지 않았다.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 대상, 제55회 동아연극상 희곡상을 수상한 윤미현 극작가의 대본은 인상적이었다. 통통 튀었다. 비가 내리는 상황에서 구둣방에 앉아 “안주로 비 한 접시”를 외치는 아들 진로의 짧은 외침은 너무도 외로워 보였다.

한국말로 듣는 아리아도 색다르게 다가왔다. 안효영 작곡가는 “한국말로 들리는 오페라를 찾기 힘들다”며 “한국말에 음을 붙였을 때 전달이 되게 하는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어감, 정서들을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배우들 못지않은 성악가들의 연기도 인상적인 작품이다. 골륨(할머니) 역에는 메조소프라노 신민정과 김보혜, 진로 역에는 바리톤 장철, 김재섭, 아가씨 역에 소프라노 이세희, 윤성회, 청년 역에 테너 석정엽, 조철희, 수음 역에 테너 홍종우, 도지훈이 낙점 받았다. 경찰 역으로는 배우 유원준이 출연한다. 정주현이 지휘봉을 잡아 오케스트라 디 피니를 이끈다.

‘텃밭킬러’는 2019년 부조리한 현실의 밑바닥을 보여줬다. 바닥은 자세히 다 봤으니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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