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인] 위정현 “게임 중독? 아이들 쥐어짜는 교육부터 고쳐라”

2019-07-05 11:10
  • 글자크기 설정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했다. “100분토론 때 짧은 시간 쪼개어 게임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했는데, 이후 판교에서 저를 본 중학생이 사인과 사진 촬영을 부탁했어요. 자기들을 이해하는 어른이 반가웠던 것이죠.” [사진=이범종 기자]

[데일리동방] 위정현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연구실 책장에는 ‘근조(謹弔)‘ 리본이 놓여있다. 지난 5월 29일 어느 천덕꾸러기의 장례식장에서 가져온 것이다. 핍박을 견디고 자란 최초의 디지털 자생 산업. 콘솔 위주인 일본 게임산업을 한국이 처음 앞지른 온라인 MMORPG(다중접속 역할수행 게임) 혁명. 한국 게임산업의 발전은 역사·문명사적 사건이었다. 일본 유학시절 ‘바람의 나라’를 즐기는 현지 학생을 보고 게임산업에 눈 뜬 뒤 지난해 한국게임학회장에 오른 이유다. 그러나 최근 WHO(국제보건기구) ‘게임 사용 장애’ 질병분류가 모순된 한국사회 구조와 만나면서 업계의 한숨이 깊어졌다. 그날 상주(喪主)로 나선 위 교수가 게임 문화·산업 장례식을 열고 ‘게임 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배경이다.

◆게임중독 질병코드는 문제 원인 외면 수단

위정현 교수는 “초등학생이 밤 12시에 잠 드는 나라가 정상이냐”고 물었다. “공부의 의미가 근본적으로 달라진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자녀들을 압착기에 넣고 쥐어짜는 대리 출세욕도 중독입니다.“

잠 들기 전 할 수 있는 놀이가 게임뿐인 학생이 ‘엄마의 인형‘이 돼 대학에 들어가는 구조를 외면한 채 게임산업을 천대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있느냐는 물음이다.

“영어시험 만점자가 영어를 못하고, 시험 못 보면 사람 취급 안 하는 곳이 정상적인 사회인가요. 이런 현실에서 위로 받으려고 게임하다 주말에 밤을 새면 중독인가요. 부모가 아이를 괴롭히는 사회구조적 병리현상을 고려하지 않은 WHO는 스스로 권위를 떨어뜨렸습니다. 그들은 이번 결정을 나중에 후회할 겁니다.”

그는 정신의학계의 질병코드 도입 추진 의도와 근거도 뚜렷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질병코드 도입을 내세우는 모 의대 교수가 2014년 “(당시 발의된 게임중독법에서) 마약을 빼서라도 게임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2017년 중독관리 통합지원센터의 운영 실태 분석보고서를 볼 때 알코올 중독(서울 97.1%) 치료가 가장 시급하다는 설명이다.

알코올과 게임을 동일하게 볼 근거도 부족하다고 위 교수는 말했다. “그럼 게임 자체도 19세부터 해야 하죠. 알코올중독 치료로 주류 산업이 발전했다는 논리가 있는데, 업계가 좋은 제품 만들려고 노력해서 발전했지 중독치료 때문인가요. 최근에는 의료계에서 교통사고 얘기도 합니다. 도로교통법 때문에 자동차가 발전했다고(웃음). 그래서 알코올 문제가 심각하고 기타 중독은 미미하다는 의료계 연구를 저희가 공개했지요. 게임 중독에 대한 기준도 누구나 아는 극단적 사례가 아닌 중간지대의 경우 어떻게 분별할까요.”
 

위정현 교수. [사진=이범종 기자]

◆천대·망신주기식 정책에 산업 경쟁력↓

WHO의 게임 이용 장애 기준부터 모호하다.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하는 모습이 12개월간 뚜렷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게임 사용 장애로 볼 수 있다. 한국은 대리만족에 대한 부모의 욕망과 가학적인 교육 환경, 천대와 배척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구조가 게임 중독 논란을 만나 유독 시끄럽다는 진단이다. “중국, 일본, 대만, 태국, 미국, 유럽 어디가 이런 문제로 시끄럽습니까. 이 엄청난 에너지를 들여 의사들이 단결해 코드 도입을 추진하려 드는 곳이 어디 있나요.”

질병코드 도입은 이후 ‘게임 중독세’ 법안 통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위 교수는 내다봤다.

“법안 통과 이후로는 기금 이야기를 꺼내들것입니다. 2013년 게임사 연간 매출액의 1%를 인터넷 게임 중독 치유 부담금으로 부과하는 ‘손인춘 법‘이 발의된 이후 적극적인 반대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학습효과를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위 교수는 어린 시절 목격한 정부의 특정 산업 망신주기식 정책이 되풀이될까 두렵다. 학부모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이 업계를 상대로 한 게임중독세 부과 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콘텐츠의 힘이 간과되고 현업 종사자의 자긍심도 짓밟힐 수 있다. 지난 4월 개봉한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한국 누적 관객 1391만9876명을 기록했다. 1세기 가까이 쌓여온 미국 만화의 역량이 게임과 영화, 각종 캐릭터 산업으로 확장되고 있다. 

반면 1970년대 만화책 불태우기 운동이 벌어진 한국은 특정 산업 천대로 인한 경쟁력 상실을 되풀이 할 위기에 처했다는 진단이다.

“로보트 태권 브이를 아시나요? 당시 정부가 폭력물이라며 극장 상영을 금지한 적이 있습니다. 만일 한국 게임 성장기인 2011년께 질병코드 얘기가 나왔다면 극복할 수 있었겠지만 하강기인 지금은 견딜 저력이 없습니다. 이미 사드 문제 이전부터 중국 내 한국게임 입지는 줄어들었습니다. 게다가 사회적으로 공격 받는 산업은 종사자는 물론 업계 진출을 앞둔 학생들이 긍지를 잃게 됩니다. 게임이 질병을 유발한다는 인상을 주게 되면 학부모는 물론 학생 역시 불안감을 느끼게 되죠.”
 

[사진=이범종 기자]

◆게이머도 잘못된 서비스 보이콧 할 줄 알아야

아직 희망은 있다. 과거 국회의원들이 게임 때리기식 법안을 발의했을 때만 해도 게임업계만 잠시 목소리를 내다 말았지만 이제는 미디어 관련 산업 전반에서 공동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대학 33곳, 학회와 공공기관, 협단체 59곳이 공대위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달 ‘게임 스파르타 300인‘을 모집해 사회 각 분야 종사자가 게임에 대한 편견 해소에 나설 예정이다. “그동안 게임이 보편적인 콘텐츠라고 설득하는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이제는 미디어업계도 게임 자체가 아닌 표현의 자유 억압과 미디어 탄압 문제로 받아들여 함께 목소리 내고 있습니다.”

업계와 게이머 역시 스스로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최근 PC 온라인 결제한도가 폐지돼 게임사 스스로 사행성 자정 능력을 보여줄 시험대에 올랐다. 위 교수는 과몰입 문제와 사행성을 분리해서 보는 한편 게이머들의 적극적인 행동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료 아이템을 구입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격차가 지나친 점은 문제입니다. 사용자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죠. 하지만 이런 문제로 가장 비난 받는 게임이 제일 잘 된다는 점에서 사용자의 이중성이 보입니다. 접속하지 않으면 돼요. 게임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행동이자 실천입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