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택(송강호 분) 가족은 전원 백수다. 전화도, 문자도 싹 끊겨버리고 몰래 훔쳐 쓰던 윗집 와이파이까지 비밀번호가 변경돼 곤욕을 겪는다. 살길이 막막하지만 기택 가족은 똘똘 뭉쳐 피자 박스를 접고, 돈 벌 궁리를 하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러던 중 장남 기우(최우식 분)는 명문대생 친구에게 고액 과외 알바를 소개받는다. 그는 "매일 술만 먹고 노는 대학생보다 4번이나 수능 준비를 한 네가 더 잘 가르칠 것"이라는 그럴싸한 말로 기우를 부추긴다.
결국 기우는 학력을 위조해 글로벌 IT기업 CEO인 박사장(이선균 분)과 연교(조여정 분)를 만나 면접을 치른다. 연교는 비범한 인상의 기우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를 집으로 들인다.
영화 '기생충'은 '살인의 추억' '마더' '설국열차' '옥자' 등으로 전 세계적 영화 팬을 거느린 봉준호 감독의 신작.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최고 영화상인 황금종려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예고편만 보고도 예측했겠지만 '기생충'은 쉽게 장르를 정의할 수 없는 작품이다. 블랙 코미디로 시작해 풍자와 서스펜스를 오가고 스릴러와 드라마 호러를 넘나드는 이 작품은 자유자재로 장르를 갈아치우며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런데도 가장 강렬하고 깊은 자국을 남기는 건 '사회적 계급'에 관한 문제다. 빈곤한 반지하 가족과 선을 넘는 걸 혐오하는 대저택 가족이 한 공간에서 맞닥뜨렸을 때 그려지는 풍경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기묘한 감정을 끌어낸다.
이러한 '기생충'의 정취는 봉 감독의 진화와 더불어 한결 더 선명해진 인장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개인을 통해 사회 문제를 짚는 봉 감독 표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동시에 단편영화 '지리멸렬'부터 최신작 '옥자'에 이르기까지 필모그래피를 환기할만한 요소를 집약해놓은 듯하다. 전작에서 보여준 세계관 혹은 핵심 키워드가 '기생충'으로 완성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등에서 보여줬듯 봉 감독은 한국적 정서와 디테일로 영화를 빈틈없이 채워왔다. '기생충' 역시 마찬가지. "지하면서 지상인 척 하는 반지하"라는 개념부터 '독도는 우리 땅' 멜로디에 맞춰 입을 맞춰보는 아이들, 빈곤한 시절에는 국산 맥주를 구입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며 수입 맥주를 마시게 되는 풍경 등 작고 사소한 틈바구니까지 가득 메꿔놓았다. 한국 관객들이라면 단박에 알아차릴 만한 요소들이 영화 구석구석 차 있어 이를 발견하는 재미 또한 풍성하다.
그러나 '기생충'이 꼭 한국의 현실, 한국사회의 문제점만을 꼬집은 건 아니다.
앞서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한국을 담은 영화지만 동시에 전 지구적으로도 우리의 삶과 연관이 있다"고 영화를 평한 것처럼, 극 중 양극화된 가정과 계급 구조 그리고 시스템은 전 세계에서 공감할 만한 문제다. 그리고 이에 관한 질문과 예리한 포착과 이질적 시선은 관객들에게 공감과 충격 그리고 감정적 여운을 남긴다.
영화 상영 내내 넘실거리는 이상한 기운도 '기생충'의 매력 중 하나. 한국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 밖으로 과장된 캐릭터들과 상징들은 시각적, 상징적으로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 역류하는 구정물, 산수경석, 끝없이 펼쳐진 계단, 인디언 소년 등 의미를 찾고 직접 이미지의 충돌을 겪는 것도 관객에게 남겨진 재미. 한 번보다는 두 번 이상 관람하는 걸 추천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배우들의 연기도 두말할 것 없이 좋다. 봉 감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송강호를 시작으로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이정은, 장혜진 등 연기파 연기는 친숙하고 기이하다. 봉 감독은 이 배우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얼굴을 요구하지 않고 도리어 익숙하고 친숙한 면모를 꺼내고 확인하려고 든다. 이들 역시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면모를 꺼내 완벽히 세공하고 완성해낸 듯하다. 배우들의 명연기는 영화를 보는 내내 감탄할만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에도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 오래도록 눈에 남는다. 오늘(30일) 개봉이며 러닝타임은 131분 관람등급은 15세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