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골 마을, 쌍둥이 자매가 태어난다. 온전치 못한 다리로 태어난 동생 금화(이재인 분)와 모두가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던 언니 '그것'이다. 하지만 모두의 생각은 틀렸다. 금화와 그것은 올해로 16살이 되었고 여전히 살아있다.
한편 신흥 종교 비리를 찾아내는 종교문제연구소 박목사(이정재 분)는 사슴동산이라는 새로운 종교 단체를 발견, 수상한 점 투성인 종교 단체를 파헤치려 한다. 비슷한 시기, 영월 터널에서 여중생이 사체로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쫓던 경찰과 사슴동산에서 맞닥뜨린 박목사는 이 사건이 '연관'되어 있음을 직감한다.
하지만 진실이 밝혀지기 직전 터널 사건의 용의자는 자살하고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정비공 나한(박정민 분)과 16년 전 기이한 쌍둥이들이 '사슴동산'과 얽혀있다는 것을 알게되며 박목사는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죽지 않은 '그것'이 이들을 한 자리에 부르게 된 걸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주인공'의 변화다. 장재현 감독의 영화에서 '주인공'이 변화했다는 건 단순히 '인물'이 변화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장르영화 속 '캐릭터'가 서사를 끌고 나갔던 '검은 사제들'과 달리 '사바하'는 '이야기'가 주인공으로서 인물들을 끌고 나간다는 점이 흥미롭다.
신흥종교인 사슴동산을 파헤치는 관찰자적 시점의 박목사의 이야기와 영화의 장르적 재미, 분위기를 십분 살려내는 금화와 쌍둥이의 이야기 그리고 '사바하'에 얽힌 철학적 사상과 영화적 메시지를 담아낸 나한의 이야기까지 각각 독립된 세 가지 서사가 접점없이 질주하다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한데 모이게 되는 순간은 더할 나위 없는 장르적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이처럼 '이야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은 많은 강점이 있다. 언제나 무드로 대충 후려치거나 버무려질 수도 있는 '미스터리'와 '스릴러'라는 장르를 끝까지 몰입하고 맥이 풀리지 않도록 분투한 것이 영화 말미까지 느껴진다. "피를 토하고 뼈를 깎으며 찍었다"는 장 감독의 말이 허투루 느껴지지 않는 대목이다. 그리고 장 감독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감성, 상상력까지 잃지 않는 점도 경이롭다. 그의 다음 작품 역시 기대할 수밖에 없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다. "장재현 감독이 원하는 대로 말투 하나하나까지 녹음해서 그대로 연기했다"는 이정재는 '관찰자'적인 박목사의 시점을 정직하고 또한 '우리'에 가깝게 표현했다. 편안하고 친근하면서도 낯선 것에 도전하고자 한 그의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나한 역의 박정민은 그 외모에서 느껴지듯 다소 '이상하게' 보이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사바하'에 부합한다. 영화 초반 "못 보여주는 것"이라 여겼던 것이 영화 말미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라는 의도를 깨치게 된다. 강렬한 마지막 장면까지 보고 나면 나한 캐릭터를 깊이 가슴 속에 남기게 된다.
마지막으로 쌍둥이 자매 금화와 그것을 연기한 신예 이재인은 올해 가장 강렬한 '발견'으로 남을 것이다. 장 감독과 박정민이 "무조건 잘 될 것"이라고 자신했던 것이 단박에 수긍될 정도로 예사롭지 않은 등장이다. 2004년생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분위기와 캐릭터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지니고 있다. 이재인이 아니었다면 금화와 그것의 무드가 저렇게 완벽한 완성도를 지녔을지 장담할 수 없다.
영화 '검은 사제들'로 장 감독에게 반한 영화 팬들이라면 '사바하' 역시 기대해도 좋다. '검은 사제들'에서 발견한 '덕후의 감성'을 일깨워 주는 설정들은 '사바하'에서도 여지없이 발견된다. 우연히 지나가는 스님들의 이름, 지나가는 벽화 등도 허투루 보내지 말 것. 영화를 '파는' 재미가 있는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20일 개봉이며 러닝타임은 122분 관람등급은 15세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