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원석 칼럼] 미중 갈등, 조용한 컨틴전시 플랜이 절실하다

2019-05-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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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석 숙명여대 특임교수]


미국의 계관시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가 불현 듯 떠오른다. ‘노란 숲 속에 두 길이 갈라졌지. 나는 두 길을 다 갈 수 없고... 그리고 그 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생략).

세계 2강(G2)인 미국과 중국의 무역 마찰이 기술패권 전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20세기에 발생했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 당시 편이 갈린 것처럼 전 세계가 줄서기를 강요당하고 있다. 일본, 영국, 대만은 미국의 요구에 동조하고 있고 우리에게도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승자와 패자는 어떻게 갈릴 것이며, 과연 우리나라에게 올바른 선택은 무엇인가. 최근 방한한 미국의 통상전문가는 미중 무역협상 과정에서 양국 간 신뢰가 무너지면서 향후 G2경제의 디커플링(decoupling)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이 5G,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은 물론 국방경쟁력에 영향을 주는 활성화기술(enabling technology)에 대해 수출통제력을 더욱 강화하는 게 대표적인 증거라는 설명이다. 미중간의 무역협상 결과물이 어떤 내용이든 2020년에 있을 미국 대선에 민감한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단기적 타결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데 국제통상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아진다.
미중 무역갈등으로 세계 무역량이 급속히 위축되면서 미국과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주는 충격은 상당하다. 5월 현재 수출도 이미 전년동기 대비 11.7%가 줄었고 6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지역별로도 대중수출이 16.9% 크게 감소했으며 대미 수출은 4.4% 줄었다. 우리 경제를 먹여 살리는 수출이 흔들리니 경제 전체에 주름살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국책연구기관인 KDI도 경제성장률 전망을 기존 2.6%에서 2.4%로 또 다시 내려 잡았다.

진짜 문제는 미중 무역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다 하더라도 예전처럼 수출이 회복될 것인지 여부다. 미국 통상전문가는 단호히 불가능하다고 답한다. 미중간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미국은 여전히 중국을 견제할 새로운 시스템을 요구할 것이고 전 세계적인 반 자유무역기조로 인해 세계경제의 부식(corrosion of the global economy)이 이미 진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고 어떤 길을 가야하나? 최근의 미중 무역갈등은 단순히 무역균형이나 지적재산권 제도개선 등의 이슈를 넘는다. 근본적으로 전 세계의 미래 패권에 대한 보이지 않은 헤게모니 경쟁이 깔려있다. 특히 무역과 기술은 곧 국가 안보이고 미래 패권을 결정짓는 핵심 경쟁력인 만큼 안보적 관점과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이 강한 시기마다 한반도는 매우 피곤했다. 한나라 때 한사군이 설치됐고, 당나라 때 고구려가 망했다. 원나라가 강할 때 고려가 힘들었고, 청나라가 일어설 때 병자호란을 겪었다. 중국이 남북조로 갈라질 때, 그리고 원과 명나라 정권 교체기에 우리는 편했다는 사실이다. 근대에 들어와서 중국이 공산화되고 문화대혁명의 내홍을 겪을 당시 우리에게 기회가 왔었다. 대한민국의 경제부흥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 ‘마오쩌둥(중국의 발전을 막았으므로)’이라는 얘기도 있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통해 G2로 부상하면서 우리는 점차 힘들어졌고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사드사태다. 중국의 부상이 마냥 플러스가 아니라는 점을 역사는 가르쳐 준다.

그렇다고 우리 수출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을 멀리하기도 어렵다. 다만 한 가지 유념할 부분은 미국이 중국을 강력히 제재하는 분야인 5G분야에서 우리 기술기업들의 주가가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 미국에서 스마트시티 통신망을 구축하는 미국 바이어가 한국을 찾아와 앞으로 중국산 사용이 불가능하니 한국기업과 파트너를 맺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미중 갈등으로 인해 첨단 기술분야에서는 우리의 경쟁력 여부에 따라 중국을 제치고 미국 시장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변화는 중국 지방정부 인사들이 부쩍 한국을 많이 찾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입장에서는 한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반증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국은 이러한 변화에 대해 민첩하고도 내실있는 다양한 컨틴전시 플랜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플랜에는 첫째, 미국의 대중 견제를 면밀히 분석하여 우리 기업들이 높아지는 리스크에 대응하고 새로운 글로벌 전략을 수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둘째, 현재 중국으로 수출되는 40%이상이 가공무역인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우리 중간재로 중국에서 단순 가공되어 미국 등 제 3국으로 재수출은 점점 경쟁력을 잃고 있다. 따라서 중국 내수시장으로 진입하거나 일부는 한국으로 유턴 또는 베트남 등 제 3국에 새로운 가치사슬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 등 선진시장에서 중국을 대체할 기술과 혁신제품으로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현지화 전략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필자가 꼭 짚어주고 싶은 사실은 미중 기술패권 전쟁이 단순히 경제 문제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안보 차원의 전쟁이며, 동시에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념과 가치 차원의 전쟁이라는 성격도 지닌다.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우리는 누구 편이다’라고 선을 그을 필요는 전혀 없다. 국제 관계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기 때문이다. ‘미중 기술패권 전쟁’에 대해 정부나 기업 차원에서 과도하게 대응하는 것은 국익을 해치는 일이다. 언론도 굳이 어느 한편을 드는 보도를 삼갈 필요가 있다. 내실을 기하는 조용한 정치외교, 경제외교 능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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