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은 23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무역 상대국이 경쟁적으로 통화 평가절하에 나서는 것은 수출을 위한 보조금에 다름없다면서, 이에 대해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상계관세는 수입품이 해당 수출국의 보조금을 지원받음으로써 수입국 산업에 피해를 줬다고 판단될 때 수입국이 수출국에 부과하는 보복성 관세다.
로스 장관은 “외국 정부가 더 이상 미국 노동자와 기업을 불리하게 만드는 환율 정책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무역 상대국의 불공정한 통화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실천하기 위한 한 걸음"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당시부터 중국을 비롯한 국가들이 자국 통화 가치를 낮추는 환율조작을 통해 수출을 늘리며 미국에 피해를 줬다고 주장해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중 무역협상에서도 협정문에 환율조작 금지 조항을 담기 위해 중국을 압박했다.
문제는 이 조치가 중국만 겨냥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스콧 린시컴 국제통상 변호사는 블룸버그통신에 “평가절하된 통화를 보유한 것으로 파악한 어떤 나라로부터 수입한 어떤 제품에라도 추가 관세를 물릴 수 있는 문을 여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미국의 상계관세 부과 대상국에 한국과 일본 등 여러 나라가 포함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의 이 조치가 적성국인 중국뿐 아니라 동맹국까지 조준할 수 있는 전례없는 무역정책의 무기가 될 수 있다"면서, 지난 몇 년 동안 미국 의회가 중국과 한국, 일본, 베트남 등의 통화 평가절하를 비난해왔다고 짚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해 하반기 환율보고서에서 한국, 중국, 일본, 인도, 독일, 스위스 6개국을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목한 바 있다. 올해에는 4월 발표가 예상됐었지만 한 달 넘게 나오지 않았다. 앞서 블룸버그통신은 이달 안에 올해 상반기 환율보고서가 나올 것으로 전망하면서, 한국과 인도가 관찰대상국에서 빠지고 베트남이 ‘환율조작국’에 지정될 가능성을 점쳤다.
미국과 양자무역 협상을 진행 중인 일본도 미국 상무부 발표에 바짝 경계하는 모습이다. 니혼게이자이는 미국 자동차업계가 엔화 하락으로 인한 일본산 수입차 공세를 경계하고 있다면서, "환율 문제는 미국과 중국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에서도 목구멍에 박힌 가시"라고 지적했다.
이어 신문은 미국의 상계관세가 “정부에 의한 통화 평가절하가 대상”이라면서, 일본은행의 금융완화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시장 혼란을 막기 위한 구두개입이 미국 당국의 비판을 살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