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산책] ​보수정당은 경쟁이 두려운 것인가

2019-06-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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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의 광풍이 지나간 듯하다. 한 동안 볼 수 없었던 국회 폭력 사태가 재현되었고 의원 들 사이에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있고 국회의장은 응급실에 실려 갔다. 이 모든 것은 선거법 개정을 포함한 일련의 개혁 입법안을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원래 민주주의는 조금 시끄러울 수 있다. 정치개혁 또는 사법개혁이라는 묵직한 의제가 아무런 논란 없이 진행된다면 그 자체로 기적 같은 일일 것이다. 특히 선거제도는 국가 권력의 향방을 정하는 중요한 문제이고 국민의 의사를 확인하는 방법에 관한 점이라는 점에서 깊은 토론과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선거제 논의를 살펴보면 여러 가지 정치적 쟁점에 묻혀 선거제 자체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현재 제안된 선거제도 개편 방안에 대하여 문제가 있다고 여긴다면 누구라도 이에 대한 목소리를 낼 권리와 의무가 있다. 이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민주주의가 성숙해 가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의 이번 “투쟁”은 이러한 공당의 정책토론활동이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끄러운 수준이다.

무엇보다 자유한국당이 선거제에 반대하는 정확한 논거를 알기 어렵다. 한국당이 선거제 개혁을 반대하는 핵심 구호들은 대체로 “좌파독재 저지”와 같이 정확한 의미를 알기 힘든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결국 선거제 자체에 대한 토론보다는 우리편과 상대편의 대결로 가지고 가려는 모양새다. 심지어 자유한국당 소속 한 의원은 선거제 개편이 연방제 통일의 첫 단계라는 이해하기 힘든 주장까지 한다.

물론 정치권의 선정용 구호는 다소 선정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자유한국당이 선거법 개정을 반대하는 공식적인 이유는 크게 비례대표제의 폐지 필요성(자유한국당의 선거법 개정안은 비례대표제 폐지를 골자로 하고 있다)과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두 가지 공식적인 논거 역시 핵심에서 벗어난 것이거나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는 것으로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제1의 보수정당의 공식적인 입장이라기에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우선 자유한국당은 기본적으로 비례대표제 자체가 세계적으로 희귀한 제도라거나(자유한국당은 유독 이번 선거제 개편안이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국회의원을 내 손으로 뽑지 못하는” 비민주적인 제도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의 선거제도는 나라마다 고유성이 있기 때문에 어떠한 제도가 세계적으로 유래가 있는지 없는지 단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러한 다양한 선거제도들은 대체로 “비례성 강화” 또는 “사표 방지”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언론이 즐겨 인용하는 “OECD 국가”를 기준으로 할 경우 의회를 100% 소선구제에 의하여 선출하는 국가는 미국, 영국, 캐나다 정도에 국한된 세계적으로 소수의견에 해당한다.

반면, OECD 국가 중 압도적 다수인 대부분의 유럽국가들 및 칠레, 터키 이스라엘 등의 경우 의회의석의 100%를 비례대표로 선출하고 있다. 여기에 독일과 뉴질랜드의 경우 지역구 선거를 실시하지만 의석배분은 여전히 100% 정당지지율로 하고 있다(“연동형 비례제”라는 용어가 정착하기 이전에는 “독일식 비례제”라는 표현이 더 일반적이었다). 이들 나라가 모두 “좌파독재” 모두 “좌파 독재” 국가이거나 “국회의원을 내손으로 뽑지 못하는” 비민주적 국가에 해당하는지는 의문이다.

여기에 우리나라와 동일한 병렬식 비례제를 채택한 국가들(일본, 멕시코, 러시아 등)의 경우를 살펴보더라도 비례대표 의석의 비율이 우리나라의 15% 보다 월등히 높아 비례성이 더 높게 보장되고 있다. 또한 비례대표를 채택하지 않은 국가의 경우에도 결선투표제를 체택하거나(프랑스, 호주 하원, 오스트리아), 중선거구제를 체택함으로서(호주 상원, 아일랜드 하원) 사표 문제를 해결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필자는 비례대표제가 세계적 주류이므로 비례대표제를 확대해야한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비례대표제 자체가 세계적으로 희귀하거나 비민주적인 제도라는 식의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일은 정당의 책임 있는 자세라고 보기 어렵다. 자유한국당이 진정으로 비례대표제의 폐지를 주장한다면, 자유한국당이 생각하는 선거 제도에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먼저 설명하고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한편, 비례성 약화와 사표에 대해서는 어떠한 대안이 있는지를 제시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번 선거제 개편안이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좌파독재를 위한 초석”인지 여부는 그 다음에 국민이 판단할 일이다.

두 번째 쟁점은 선거제도와 권력구조(대통령제 또는 의회내각제)의 관계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대통령제는 대통령과 국회를 별도로 구성하여 상호 견제하는 것을 그 취지로 하고 있다. 우리 헌정사에서도 여소야대, 여대야소 등 다양한 국회-대통령 관계가 가능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이는 명백히 별개의 문제이다. 특히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소선거구제를 고수하는 공통점을 가진 미국과 영국은 각 대통령제와 의회내각제의 전형적인 경우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상호간에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자유한국당이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개헌을 제안하는 것은 언제나 환영이고 이에 대하여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개헌을 특정 안건을 반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정당의 책임 있는 자세라고 할 수 없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유한국당의 선거제 개편 반대 논거는 모두 본질에서 벗어나 있는 주장들이다. 그렇다면 자유한국당이 선거제 개편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나경원 원내대표는 수 차례 선거제가 개편이 된다면 자유한국당은 소수정당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앞서 언급한 “좌파독재” 구호 역시 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논의되는 선거제 개편의 방향성은 100%는 아니더라도 정당의 지지율이 상당부분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취지이다. 그렇다면 변경된 선거제 하에서 소수정당이 될 것을 우려한다는 의미는 자신들의 정당 지지율이 높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한다는 의미이다(최근에 여론조사 동향을 보면 이러한 우려조차도 커 보이지는 않지만 어쨌든 자유한국당은 어쨌건 그러한 “우려”에 기반한 반대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당의 지지율이 높지 않다는 것은 정당의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고 경쟁력이 없는 정당은 선거를 통하여 심판받아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원론적으로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청산되어야 하고 경쟁력이 없는 노동자에 대한 정리해고 역시 필요하다는 입장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자유한국당이 소수정당으로 전락할 우려”는 선거제 개편의 반대 논거가 될 수 없음이 자명하다. 자유한국당은 전통의 제1 보수 정당으로서 선거제 문제에 있어서 조금은 더 책임 있는 논의를 하여주시기를 당부드린다.
 

전정환 변호사 [사진=전정환 변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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