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 이상국의 '편집의눈']조용필의 민들레는 왜 일편단심일까

2019-05-13 12:16
  • 글자크기 설정

[조용필 3집]



1981년 가수 조용필이 '일편단심 민들레야'란 노래를 불렀다. 이 가수가 작곡한 트롯 곡은 이 노래가 유일한데 '트롯가수'라는 강한 이미지를 심을만큼 이 노래의 인상은 강렬했다. 그가 이 노래를 부른 이후 '일편단심(一片丹心)'이라는 4자성어와 우리나라 들꽃 민들레란 말은 착 달라붙어 마치 한 몸처럼 된 느낌이 있다. 오늘자(2019.5.13) 신문 송호근(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칼럼은 '일편단심 민들레야'라는 제목으로 문재인정부의 굴하지 않는 뚝심을 냉소적으로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왜 민들레가 일편단심인가. 무슨 근거가 있는 말일까. 왕자 이방원에게 철퇴로 맞아죽은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 시조)에 등장하는 '일편단심'이 불변의 절절한 충심을 대변하는 말이었다면, 민들레의 일편단심은 한 사람으로만 향하는 꼿꼿한 사랑의 이데아를 만들어냈다.

민들레 일편단심론은 몇 가지 설을 거느리고 있다. 첫째는 우리 토종민들레의 독특한 순애보를 꼽는다. 봄날 산과 들에 흔한 야생초인 민들레는 뜻밖에 식물계의 순정파다. 이 꽃은 오직 토종민들레 꽃가루만 받아들인다. 흔한 서양민들레 꽃가루는 아무리 날아다녀도 접수하는 일이 없다. 토종민들레에 발아가 되지 않는 무정란같은 씨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서양민들레는 무엇이든 받아들여 씨를 맺기 때문에 숫자가 너무 늘어서 골치다. 이러다가 민들레의 영토를 잃을 판이다.

둘째 민들레의 근성(根性)이 일편단심이다. 이 꽃은 땅속으로 곧게 뿌리를 내린다. 옆으로 실뿌리가 벋어 있으나 가늘고 빈약하다. 큰 뿌리 하나를 깊게 땅 속으로 박는 까닭은, 꽃이 바람에 흔들려도 쓰러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가늘고 약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깊은 뿌리가 버텨, 존재가 뿌리째 뽑히지 않으니 굳셀 수 밖에 없다.

세째 조용필의 민들레가 일편단심이 된 것은 사연이 있다. 이 노래는 납북된 남편을 그리워해온 이주현이란 72세(1981년 당시) 여성이 가사응모전에 투고한 글을 다듬은 것이라고 한다. 일설에는 조용필이 이주현 자서전 '일편단심 민들레야'를 본 뒤 감동을 받아 가사로 만드는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2018년 11월14일, MBC '서프라이즈') 그 자서전의 사연은 이랬다. 50여년 전 그녀는 동아일보 총무국장이던 남편과 결혼했다. 한국전쟁 때 북한군 포로가 된 남편이 북으로 끌려가는 바람에 홀로 3남매를 키우며 살았다. 노점좌판을 하며 어렵사리 살아온 그녀는 평생 모은 돈을, 남편이 다닌 동아일보에 기부했다. 남편의 이름을 붙인 '수남기금장학금'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1981년 4월28일자 경향신문에 실렸던 기사 '햇빛 본 할머니의 꿈'은, 이주현 여사의 일편단심 스토리를 기록하고 있다. 

<"수남(水南)! 이렇게 불러볼 날도 이제 오래지 않겠지요. 어언 접어든 나이가 고희를 넘겼으니 살 날이 얼마나 되리까. 당신을 잃은지도 30년 성상. 밟혀도 밟혀도 고개 쳐드는 민들레같이 살아온 세월. 몇 번씩이나 지치고 힘에 부쳐 쓰러질 듯 하면서도 그때마다 당신을 생각하며 이겨 나왔습니다." 
  이씨는 노구를 무릅쓰고 1년에 걸쳐 집필한 원고 1천여장 분량의 '일편단심 민들레야'의 첫 머리에 생사를 알 길 없는 남편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아무리 끈질긴 생명력의 민들레라 해도 일편단심 붉은 정열이 내게 없었다면 어린 자식들을 못 키웠을 것이고 지아비에 대한 깊은 그리움의 정이 없었다면 붓대를 들만한 용기도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주현(李柱現)씨가 쓴 노래말은 '님 주신 밤에 씨 뿌렸네/사랑의 눈물로 꽃을 피웠네/그 여름 어인 광풍, 그 여름 어인 광풍/낙엽지듯 가시었나/행복했던 장미인생 비바람에 꺾이니/나는 한떨기 슬픈 민들레야/긴 세월을 하루같이 하늘만 쳐다보니/그이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들을까/일편단심 민들레는 일편단심 민들레는/ 떠나지 않으리라'로, 자전(自傳)의 내용을 다듬은 것이다.>

가사 속에 들어있던 '그 여름의 광풍'은, 1950년 6월25일에 터진 청천벽력같은 전쟁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낙엽지듯 가시었나'는, 그해 가을 무렵 납북된 남편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하늘만 바라보는 것'은, 천국에 간 남편을 바라보며 그리워하는 행위였고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그 목소리는 남편이 떠나면서 "걱정하지마, 잘 다녀올게"라고 말했던 그 목소리였다. 41세의 여인은 그 공황을 이겨냈다. 지난 30년의 절망과 피눈물 속에서도, 그녀가 말했듯 '일편단심 붉은 정열'로 버티며 어린 것들을 키워낸 그 힘. 그녀가 자신을 오롯한 이 땅의 민들레로 여길만한 자부심은 여기에 있다. 2019년 지금 108세가 된 민들레는 그 하늘의 목소리와 해후했을까. 

ps.

지난달 언론재단 합동탐사 취재단은 중국 뤼순감옥에 몰려들었다. 하얼빈 안중근의사기념관의 재개관과 맞물려, 그의 순국의 현장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그가 머물렀던 독방의 좁은 살창 밖에는 민들레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사형판결 앞에서 '더 중한 벌은 없느냐'고 말했던 놀라운 사람 앞에서 일본이 오히려 당황했다. 무력과 계략으로 한 나라를 일시적으로 삼킬 수는 있으나, 그 안에 들어있는 인간의 정신마저 삼킬 수는 없다는 걸 안중근을 통해 느꼈을까. 스산한 감옥에도 봄이 온 것을 알리려는 듯 무수히 피어난 노랑꽃은, 한 사람의 일편단심과 몸이 죽어도 뜻은 더욱 크게 살아나는 민들레정신을 우렁차게 증언하는 듯 했다. 민들레는 이런 꽃이었다.

                                      이상국 논설실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