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019.5.1)는 일본이 레이와(令和) 연호를 사용하는 나루히토 일본왕 시대가 시작된 날입니다. 레이와의 출전(出典)인 일본 시가집 '만엽집'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죠. 만엽집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이죠. 시 4516편이 실려있습니다. 비슷한 시기 신라 향가가 남아있는 것은 14편 뿐입니다. 이에 비하면 만엽집은 놀라운 시집이 아닐 수 없죠.
'만엽집'은 '만개의 잎사귀를 모음'이란 의미입니다. 일본인들은 마음이 자라나 잎을 피우는 것이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만엽집은 수많은 언어의 잎사귀라는 의미입니다. 만엽집의 시 한편으로 영화 한편을 만든 '언어의 정원'(신카이 마코토 감독)에서 보여주는, 빗방울과 햇살 속에서 청초하게 흔들리는 수많은 잎사귀의 영상은 바로 저 만엽집을 이미지화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엽집에 시를 실은 시인은 500명 정도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 한국계는 167명으로 잡습니다. 백제시인이 145명, 고구려시인이 8명, 신라시인이 5명 정도입니다. 이쿠사노 오키미는 백제 의자왕의 왕자인 풍장으로 추정됩니다. 유명한 누카타노 오키미와 야마노우에노 오쿠라 같은 사람도 한국계입니다. 만엽집에선 구슬을 '구시로'로 표현하고, 칼의 날을 '나'로 쓰고 있습니다. 한국어역 만엽집을 낸, 이연숙 동의대 명예교수가 밝힌 내용입니다.
만엽집은 당시의 문화국가 백제의 노래가 흘러들어간 자취이며, 일본은 백제를 지키면서 얻은 그 전율과 슬픔과 희열을 언어의 잎사귀에 새겨 1400년간 그 떨림을 보존해왔습니다. 2019년 5월 이 바람은 무엇일까요. 만엽집을 아로새긴 백제의 문화적 본령이라 할 수 있는 '평화의 화(和)' 글자 하나를, 일본이 찾아내어 시대정신으로 건져올린 아름다운 바람. 우리가 일본에 대해 깊이 지닌 전시대 기억과 악령을 떨쳐내고, 문화적 근본에서의 공감을 다시 새길 수 있는 중요한 미래의 기회를 맞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레이와 '연호를 고안한 나카니시 교수는 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연호의 두 글자 중에서 평화를 뜻하는 '와(和)'는 7세기 쇼토쿠(聖德)태자가 만든 17조의 헌법에 등장한 말입니다. 한반도에서 건너온 백제 출신 지식인들이 태자와 함께 헌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와'는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사상이기도 합니다."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