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많이 본 낯설지 않은 풍경, 기시감이 들었다. 25일 늦은 밤 국회발 뉴스를 보면서 그랬다. 선거제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관련 법률을 접수하고 이 법안들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에 태우려는 정당들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정당 사이에 극한 충돌이 빚어졌다. 25일 저녁 6시 45분께부터 본격화되었다는 이 살벌한 대치는 26일 새벽 4시 30분까지 이어졌다. 제1야당 사람들은 거의 모두 출동한 듯 겹겹이 인간띠를 둘러 법안 제출과 특위 회의를 하러 온 상대편을 물리력으로 저지했다. 33년 만에 발동되었다는 국회의장 경호권도 이 막으려는 자들을 뚫지 못했다.
20대 국회는 동물국회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일까. 여당 주장대로 동물국회를 막고자 제정된 국회선진화법은 무력화된 것일까. 국회 선진화법이 적용되기 전인 제18대 국회(2008년 6월∼2012년 5월)는 동물국회로 악명을 떨쳤다. 국회 의사당을 전쟁터로 만든 대표적 사건은 2008년 12월 18일에 일어났다.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이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실에서 문을 잠근 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상정하려 하자 통합민주당이 쇠망치와 노루발못뽑이, 전기톱(그라인더) 등을 가져와 회의장 문을 부수고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린 것이다. 이때 쇠망치를 휘두른 의원은 국회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2009년 7월에는 미디어3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여야는 물론 관련단체도 국회에 들어와 저지 투쟁을 벌였고 2011년에는 민주노동당 의원이 한·미 FTA 비준안 처리를 반대한다며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리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이런 18대 국회의 반성으로 19대 국회부터 적용된 국회선진화법이 생겼다. 국회 본회의장이나 그 부근에서 폭행·체포·감금·협박 등을 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권한을 줄이고 패스트트랙 제도도 도입했다. 의결정족수를 과반에서 60%로 올린 선진화법 덕분에 19대 국회에서 폭력으로 얼룩진 동물국회는 사라진 듯했다. 하지만 되는 일이 없는 이른바 ‘식물국회’ 현상이 두드러졌다. 단적인 예가 가뜩이나 낮은 법안가결률이다. 18대 국회 16.9%에서 19대 국회에선 15.7%로 떨어졌고 20대 국회에선 11%대로 더 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안이 발의된 뒤 처리되기까지 소요 기간도 한 달가량 길어졌다고 한다. 여야 간 합의가 되지 않으면 어떤 법안도 처리할 수 없으니 ‘끼워팔기’ 방식도 횡행했다. 이런 극도의 비효율과 낮은 생산성이 문제가 되면서 차라리 동물국회가 낫다는 목소리마저 터져나왔다.
국회가 동물국회·식물국회 소리를 듣는 근본 원인은 타협의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사태에서도 선례는 무너졌고 협의는 사라졌다. 21대 총선을 1년여 앞두고 여야는 타협 대신 대결을 선택하고 각자의 정치적 이해를 저울질하며 총선이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막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한 얘기는 귓등으로도 안 들릴 것이다. “정치인은 권력을 책임있게 수행해낼 자질과 역량을 갖췄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왜 정치를 하는가에 대한 신념을 현실에서 실현하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며,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게 진정한 정치인의 모습이다.”
국회가 거친 싸움을 벌이던 25일, 한국은행은 올해 1분기 한국경제가 마이너스 성장(–0.3%)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성적표다. 이런 엄혹한 현실을 접하니 비현실적인 기대라도 요구하고 싶다. 대한민국 국회는 동물도 식물도 아닌 ‘생물(生物)국회’가 되어 달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