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좌의 난'이 일어난 시기는 영조 4년(1728)으로, 조선 후기 소론이었던 이인좌와 정희량이 신임사화를 일으켰던 김일경 등과 영조를 몰아내고 밀풍군 탄을 임금으로 추대하려고 일으킨 난을 말한다.
소론이 주도한 반란으로, 소론은 경종 연간에 왕위 계승을 둘러싼 노론과의 대립에서 일단 승리했다. 하지만 노론이 지지한 영조가 즉위하자 위협을 느끼게 된다. 이에 박필현 등 소론의 과격파는 영조가 숙종의 아들이 아니며 경종의 죽음과 연관됐다고 주장하면서 영조와 노론을 제거하고 밀풍군 탄을 왕으로 추대하고자 한다. 이에 남인들도 일부 가담했다.
청주에 살고 있던 이인좌는 권서봉, 박완원, 이상택 등 반란군과 합세해 1728년 3월 15일 청주성을 함락하기로 하고, 그들을 상여 행렬로 꾸민 다음 병기를 감추고 청주성으로 들어가 장례를 치르는 척하다가 날이 저물자 청주성으로 들이닥친다.
이인좌는 이봉상과 홍림을 죽이고, 영장 남언년에게 항복을 요구하지만 그가 말을 듣지 않자 죽인 후 스스로 대원수라고 지칭한다. 이들은 '경종의 원수를 갚는다'고 선전하며 서울로 북상하고, 신천영은 가짜 병사를 칭하며 북상한다. 그러나 24일 안성과 죽산에서 오명항과 박찬신 등이 거느린 관군에게 격파된다. 청주성에 있던 세력도 창의군에 의해 무너지고, 호남을 책임지기로 한 박필현 등 가담자들은 체포돼 처형된다.
이인좌의 난 진압에는 오명항 등 소론 인물들이 적극 참여했지만, 그 뒤 노론의 권력 장악이 가속화됐다. 결국 소론은 재기 불능 상태가 되고, 정부에서는 지방 세력을 억누르는 정책을 강화해 토착세력에 대한 수령들의 권한을 대폭 증가시킨다.
이 난은 조정뿐 아니라 조선 후기에 일어난 많은 민란에도 영향을 줘 1811년 홍경래의 난까지 이어지게 된다.
한편, 16일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해치'에서는 이인좌(고주원)가 청주성을 함락하면서 '이인좌의 난' 서막을 알렸다.